이 글은 진중권이 진보누리에서 3/30에 올린 글입니다.
에혀, 욕많이 먹고 오래 살랍니다.
편집의 예술
CBS 기자가 현장에 있었는데, 그때 그 발언의 맥락이 이런 것이었다고 합니다. 독립신문인가 뭔가 하는 데서 보도한 거 같은데, 걔들도 편파적인 데가 있어 선뜻 믿기 어려웠지요. 그런데 그 자리에 양심적인 기자가 한 사람 남아 있었네요. 그 분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 발언의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고 합니다. 만약 이 말이 맞다면 MBC는 그 프로그램으로 고약한 대중선동을 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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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우건설 사장이 왜 죽었습니까? 대통령이 온 국민이 보는 TV앞에서 남사장을 모욕하지 않았습니까? '많이 배우신 분이 보잘것 없는 사람앞에서 굽신굽신하는데 그럴 필요 없습니다.'라고 말한 대통령의 발언 문제 있습니다. 이게 바로 언어적 살인입니다. 제가 만약 대통령 영부인의 학력이 고졸도 안된다고 소리치면 이것 또한 언어적 살인입니다.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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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강균 프로는 "제가 만약 대통령 영부인의 학력이 고졸도 안된다고 소리치면 이것 또한 언어적 살인입니다."라는 발언에서 "대통령 영부인의 학력이 고졸도도 안 된다"는 부분만 떼어서 방송으로 때렸다는 얘기가 됩니다. 이 정도의 편집이라면 '파시스트적'이라 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덕분에 발언을 한 사람은 사회적으로 매장이 될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지요. 분명히 말하지만 이것은 인격 살인행위입니다.
송만기씨라고 했던가요? 저는 남사장의 자살의 책임을 노무현에게로 돌리는 그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아울러 탄핵에 찬성하는 그의 입장도 논리적으로 정당화되기 힘들다고 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그에게 그 정도의 발언을 할 수 있는 자유는 허용해야 한다고 봅니다. 인간은 옳은 소리를 할 권리도 있지만, 때로 비난받지 않고 틀린 소리를 할 자유도 가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격앙된 상태에서 그가 심한 소리를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 부분은 저도 몰취향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발언의 맥락 전체를 봐야 합니다. 잘려나간 필름 가지고는 전체적인 맥락이 잡히지 않습니다. 그런 폭력적 발언이라면 명계남은 어떤가요? 그 친구는 툭하면 진중권이 만나면 때려잡겠다고 폭언을 퍼부어대지 않았던가요? 노사모는 어떻구요. "추미애 **년"이라고 연호하지 않았던가요?
총체예술
그후에 벌어진 상황을 봅시다. 네티즌들이 그를 완전히 죽일 놈으로 몰았습니다. 그가 출연하는 방송국, 그가 속한 학사장교 모임에까지 몰려가 난동을 부렸습니다. 어제 뉴스를 들으니 그 모임에서 조사에 들어갔다고 하더군요. 도대체 한 사람의 자연인이 한 발언을 가지고 그의 지장과 그가 속한 동호회까지 쳐들어가, 아예 사회적으로 고립을 시켜버리려 드는 빌어먹을 문화는 어디서 온 걸까요? 이게 바로 왕따 문화 아닌가요? 우리 애들이 왜 잔인한 왕따 놀이를 하겠습니까? 그게 다 자기 애미 애비한테 배운 짓입니다.
또 하나의 해프닝은 이번 사태로 여기저기서 벌어진 신파의 물결입니다.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가니 못 배워서 서러운 아내들의 사연이 줄줄이 올라와 있더군요. 고등학교도 못 나온 자기 아내가 그 얘기를 듣고는 너무나 분개해서 흥분한 끝에 마참내 서러워서 닭똥 같은 눈물을 줄줄 흘렸다는 둥. 정말인지, 꾸며낸 얘긴지는 모르겠지만, 이게 정말이라면 눈물 뚝뚝 흘린 그 아내의 서러움은 뭐가 됩니까? 한 마디로 생 쇼를 한 게 되는 겁니다. 도대체 이게 뭐 하자는 겁니까? 이게 노무현식 정치인가요?
이 잔혹한 코미디는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심지어 MBC 보도를 듣고 청와대에서 반응까지 나왔지요? 유감이라는 둥, 하지만 법적 대응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둥. 이 모든 해프닝이 어디서 비롯된 걸까요? 바로 MBC가 만들어낸 작품입니다. 거대한 예술작품이지요. 네티즌 군단이 움직이고, 대학 못간 여자들이 눈물 짜고, 청와대까지 우정 출연한 바그너식 총체예술입니다. 도대체 이게 뭡니까? 노빠 여러분, 이게 여러분들이 우리에게 약속하는 세상인가요? 기껏 이런 세상 만들려고 그렇게도 노짱을 외쳐댄 겁니까?
MBC와 선전선동
언론이 이런 짓을 하는데 누구 하나 만류하는 사람이 없군요. 저 CBS 기자의 보도가 없었다면, 아마 이 사건은 영원히 영부인 모독사건으로 남았겠지요. 글쎄요. 어느 정신나간 분이 오마이에 "지식인은 조선일보에 이용당하지 않을 의무가 있다"는 얼빠진 소리를 하더군요. 그 얼마나 위험한 생각입니까? 지금 이런 상황에서 만약 CBS 기자의 보도가 조선일보에 인용이 된다면, 그때는 그 기자도 때려잡으실 생각인가요? 자기들이 제멋대로 부과한 그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고?
노무현이 잘못하면 비판받아야 합니다. MBC가 잘못하면 당연히 비판을 받아야 합니다. 노무현과 MBC를 비판하면, 당연히 조선일보는 언제라도 이용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럼 이용당하지 않을 "의무"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노무현의 잘못과 MBC의 왜곡에 침묵해야 할까요? 조선일보에 이용당하지 않으려면, 노무현과 MBC가 잘못을 하지 않으면 되는 일입니다. 그들에게는 잘못을 저지를 '권리'를 주면서, 그거 비판하는 사람의 입에는 침묵할 '의무'를 지우다니, 그게 민주주의 국가에서 상상할 수 있는 일입니까? 이게 바로 노빠 여러분들이 도달해 있는 멘탈리티의 끔찍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이런 쓴 소리하면, 여러분 좋아하는 한겨레는 안 써줍니다. 외려 그게 문제 아닌가요? 이런 쓴소리가 조선일보에나 실리고, 한겨레에는 실릴 수 없다는 거?
MBC의 신강균 프로그램, 저 딱 한 번 봤습니다. 제가 남보다 좀 예민해서 그런지, 처음 보는 순간부터, "이건 아니다" 싶더군요. 그 전에 그 프로를 봤다면, 아마 진작에 비판을 했을 겁니다. 그 프로를 내가 못 본 것이 내게 다행일까요? 아니면 불행일까요? 프로그램 자체가 너무나 노골적으로 정치적 의도를 드러내고 있었고, 심지어 '동원'의 의지까지 엿보였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저는 어떤 '위협'을 느꼈습니다. 제가 독일에 있을 때 우연히 조갑제 글을 처음 접하고 느꼈던 것과 같은 종류의 '위협'을 느꼈습니다.
언론과 지식인
책 팔아 먹으려면 언론사랑 잘 지내면 됩니다. 님들이야 내가 언론사 업고 출세했다고 떠들고 다니지만, 출판사에서는 죽을 맛이래요. 저자가 조선, 중앙, 동아, 한겨레와 오마이, 언론사들과 돌아가면서 쌈질을 해싸대니, 홍보가 쉽겠어요? 언론사들과 잘 지내면 좋지요. 하지만, 내가 조선일보를 비판했을 때 사용했던 그 기준은, 다른 언론사에도 똑같이 적용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안티조선은 선거운동이 되는 겁니다. 안티조선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 조선일보를 비판하던 그 잣대는 다른 매체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이문열씨가 시민단체에 홍위병 딱지를 붙였을 때, 네티즌들이 그의 홈페이지에 몰려가 진을 치고 살면서 난동을 부린 적이 있었습니다. 저 또한 이문열을 신랄하게 비판해 왔지만, 적어도 남의 홈페이지까지 쳐들어가서 무례하고 난동을 부리는 것만은 좌시할 수가 없더군요. 다행히 그때는 그 무리들 사이에서 내 말빨이 아직 통하던 시절이라, 씨발 씨발 불평하면서도 대충 내 만류가 먹혀 들어갔었지요. 근데 지금 그 동네에는 그런 거 만류할 사람이 누가 남아 있나요? 다 님들 잘한다, 잘한다, 부추기는 넘들 뿐이죠?
그 동네 지식인들 봅시다. 강준만 망가졌지요. 유시민은 정치판 들어갔죠. 노혜경 출마했죠. 김정란, 먹은 거 올라오게 용비어천가 시나 쓰죠. 김동민 sbs 사외 이사 갔지요. 누가 남았나요? 남은 것은 청와대 밥 얻어 먹는 서영석 류의 어용 네티즌 대중뿐입니다. 이들은 인터넷과 방송으로 무장한 채 언제라도 온-오프에 동원될 준비가 되어 있지요. 이 상황, 위험합니다. 제3제국의 상황이 딱 그랬습니다. 쓴소리 하던 사람들 다 망명가고, 남은 지식인들은 어용이 되고, 그 이성의 진공 속에서 지도자와 대중이 매체를 통해 하나로 결합되는 체제. 거기에 주책없이 터져나오는 눈물들.... 이벤트 정치....
이제 MBC 신강균 프로그램의 문제점이 눈에 들어오시나요? 한 마디로, 님들은 그 방송 하나로 바보가 된 겁니다. 노짱을 위해서는 바보가 되어도 좋다고 생각하시면 할 수 없는 것이지만, 정치 참여, 굳이 그런 식으로 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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