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여옥, 유시민 때문에 한나라 갔나?
전여옥 발언으로 살펴본 입당 이유
지난 12일 'SBS 이것이 여론이다'에서 보인 유시민 의원과 전여옥의 토론 내용은 국민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는데 토론의 당사자인 전여옥씨도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정당에 입당하여 늘 공격만하던 정치권에 스스로 발을 담그는 행동으로 이어진 것을 보면 그러하다. 실제로 16일 <조선일보>의 해당 기사를 보면 전여옥씨가 토론 때문에 정당에 입당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을 누구보다 강력하게 비판을 하고 대통령을 탄핵한 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전여옥씨가 입당한 당은 탄핵의 주도당인 민주당이 아니라 한나라당이었다는 사실이 눈여겨볼만 했다.
결국 한나라당을 '첩처럼 살기로 작심했나'라고 공격한 바 있고, 박근혜의원에 대해 대표 자격이 없다며 신랄하게 비판한 것은 애정에서 나온 간언이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또한 민주당이 아니라 거대 야당 한나라당에 입당한 것은 스스로 소수의 정치 세력이 아니라 다수의 정치 세력을 지향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문제는 전여옥-유시민의원 사이에 SBS 토론 중 문제가 되었던 발언 '미숙아'에 담긴 전여옥씨의 성향과 그대로 일치하는 점이다.
이제 전여옥씨와 유시민 의원의 논쟁으로 빚어진 뒤 일어난 전여옥씨의 한나라당 입당과 대변인 내정의 이면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전여옥씨의 발언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전여옥씨는 강력한 힝을 기반으로 한 주류 중심 논리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성격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흔히 이러한 성격을 지닌 사람은 변화보다는 안정을, 불완전보다는 완전을, 본질보다는 현상에, 공동체의 가치보다 개인의 능력여부에 집착한다. 이 때문에 강자 중심, 경제논리, 절차, 외양, 격식에 얽매여 권위주의에 치우친다. 전여옥씨는 무엇보다 아도르도 등이 주장하는 자신의 잘못에 대해 공식적으로 지적하는 것에 대해 참지 못하는 권위주의적인 성격을 보인다. 이는 지난 12일의 SBS 토론에서 단초를 드러냈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제 왜 전여옥씨의 입당의 계기가 그의 정치적 앞날을 어둡게 하는지 이야기 해보기로 한다.
전여옥씨의 입당은 분명 12일 토론회가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일보> 16일 인터넷판에는 “정치 생각없어 온갖 사람 욕했는데…”제하의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전 대변인은 “유시민 열린우리당 의원과의 지난 12일 SBS TV 토론이 정치 참여 결심을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됐다”며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노빠’를 자처하는 여당의 핵심 정치인이 토론에서 남을 전혀 받아들일 수 없다는 태도와 닫힌 사고를 보여 답답하기만 했다”고 말했다. 전 대변인은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개헌 저지선도 확보하지 못한 소수라면 항상 거기에 대비하고 신중해야 하는데도 오만한 자세로 일관해왔다”며 “정치권에 참여하는데 95%는 제 결심이었지만 나머지 5%는 토론 등이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조선일보 기사중에서>
당시 토론 내용은 유 의원이 먼저 “제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어떤 분이 평하기를 ‘노 대통령은 시대정신이 낳은 미숙아’라고 했습니다. 시대가 나가야할 바를 체현하고 있는 정치인인데 시대보다 먼저 나와 좀 미숙하기 때문이지요. 전 그렇게 봅니다.' 여기에 대해 전여옥씨가 유시민 의원의 말을 다르게 인용하였다.' 미숙아니까 나오지 말고 인큐베이터에 있어야 한다'고 한 것이다. 여기에 유시민 의원이 '비열한 인용 방식'이라고 응대하면서 격론이 벌어졌다.
전여옥씨의 인큐베이터 말은 겉으로 보면 맞는 이야기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속을 보면 전여옥씨의 정신 구조가 그대로 드러난다.
첫번째, 전여옥씨의 논법은 달을 가리키니 달을 보지 않고 손가락을 보는 것과 같다. 시대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의 고뇌를 지적하니까 그 고뇌와 어려움를 지적하는데 사용한 손가락에 해당하는 '미숙아'라는 단어만 보며 공격했다. 이것은 본질의 호도가 분명한데도 본질의 호도가 맞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걸 틀렸다고 지적한 것에 격분, 자신의 정당화를 위해 한나라당에 입당해버렸다. 이러한 입당은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옹호하려는 기존 정치적 행위와 다를 바 없다.
두번째, 전여옥씨의 정신구조는 위인전 이야기 구조다. 완전성, 완결함만이 세상에 존재해야 하며 이러한 존재들을 중심으로 세상이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완전하지 않으니까 인큐베이터에 있어야 한다는 논의는 출생은 완전한 아이만 나와야 한다는 지적일 뿐이다. 이러한 점은 수많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미숙아를 가진 가족의 고통을 아는가하는 문제와 별도로 완전함의 기준은 무엇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세상은 완전한 사람이나 존재가 등장하여 진보된 적이 거의 없다. 언제나 부족하지만 시대의 변화 방향에 수많은 시행 착오 속에서 이루어졌다. 전여옥씨의 논법은 수십년간의 성취를 한줄에 요약한 위인전 식 정신구조에서 비롯한다.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던 사안에 대해 위인전은 흔히 누구의 주도에 따라 '성공했다'로 간단하게 기술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술에서는 완전한 위인이 등장해 한꺼번에 성공시킨 것으로 인식하게 한계가 있다. 전여옥씨의 인식구조가 이와 같은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지적에 따라 대통령 이야기를 해보자. 이제까지 어느 곳, 어느 나라 대통령이 완전한 적이 있는가? 모호한 완전함의 기준으로 대통령을 내쫓는 것이 어느 곳에 존재했고 존재할 수 있는지 의문인 것이다. 대통령은 완전한 초인이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뜻에 따라 불완전한 보통, 평범한 사람이 하는 것이다. 성공한 대통령은 국민이 만드는 것이지 어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자면 전여옥씨의 정신에서 봉건성까지 엿보게 한다. 실제는 전여옥 씨가 시대 의식에 따라오지 못하는 미숙아인지 모른다.
결국 전여옥씨는 완전한 힘이 있는 초인이 역사를 움직이고 사회를 변화시킬 수있다고 보는 권위주의 성격을 가진 것을 알 수 있다. 아울러 개인의 우월한 능력 여부를 들어 탄핵을 정당화하고 대통령직에서 쫓아 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우월한 능력주의는 비단 이번 만이 아니다.
그가 쓴 '여성이여 테러리스트가 되라'등의 저서가 여성 개인의 능력으로 충분히 맞서면 모두 해결된다는 식의 개인 경쟁성을 강조하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여성이 완전한 능력을 지니면 여성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식의 위인적 식 접근이기 때문이다.
전여옥씨의 발언과 이면의 성격을 분석하는 것은 그의 입당이 정치발전과 민생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기 때문이다. 앞에서 본 측면들은 그가 정치권에 들어가 활동하면서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게 될지 우려스럽게 하기 때문이다. 우려의 한 가지 예를 들면 이렇다. 전여옥씨는 <조선일보> 12일자 인터뷰에서 “경쟁력과 상식을 갖추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여성·어린이 등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보호하는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전여옥씨는 경쟁력과 상식을 강조하고 있다. 경쟁력을 최우선에 두고 있다. 여기에서 상식이 무엇을 기반으로 한 것인지는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경쟁력과에 이에 바탕한 상식을 강조하는 것은 철저하게 개인의 능력에 따라 이루어지는 전근대적인 복지 국가 개념이다. 이는 공동체의 가치와 분배 형평성보다는 경쟁력을 바탕으로 한 부유층과 상류층의 시혜적 복지 개념일 뿐이다. 이는 복지 정책의 후퇴를 예견하게 하며 시대적 미숙이라는 진단을 하게 한다.
전여옥씨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며 그것을 지적하는 것에 격분하던 차에 자신을 정당화한 방편으로 한나라당의 입당을 선택했다. 단지 그것에 머물지 않고 대변인 활동을 통해 자신을 공격한 열린우리당을 여지없이 비난할 태세다. 전여옥씨의 정치적인 선택이야 자유이므로 선택 자체를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전여옥씨의 정신구조를 보자면 힘을 중심으로 강자논리로 이합 집산하면서 기득권을 유지해온 한나라당과 너무나 일치하여 우려스럽다. 따라서 한나라당의 개혁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며 실제로 한나라당의 개혁뿐 아니라 정치 개혁에도 거리가 멀어 민생 활동에도 그늘을 드리운다. 유시민 의원과 벌인 토론 때문에 입당했다는 흥미성 기사의 이면에는 너무나 무서운 이 사회 주류의 정신 구조 속에 숨겨진 칼날이 있음을 전여옥씨의 사례에서 알 수 있어 가슴 씁쓸하다. 전여옥씨가 아집으로 루비콘 강을 건넌 것을 보고 더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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