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탄핵에 대한 울분으로 나라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전국 방방 곡곡에서 촛불의 물결이 밀려오고 국민의 모든 관심은 탄핵과 관련된 것뿐입니다. 평소에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친구들조차 울분을 삼키지 못해 이런 전화들이 걸어옵니다.
"진한아 진짜 이민 가고 싶다."
그런 전화를 받을 때마다 이런 현실에 대해 절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얼마 전이었습니다. 지금도 매일 열리고 있는 촛불 집회에 자원봉사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준비를 해서 종로 교보문구 앞에 도착하니 수많은 사람들이 각종 피켓과 퍼포먼스 장비를 든 채 조용히 집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아주머니(알고 보니 샴 쌍둥이 자매 사랑이, 지혜 가족이었습니다)부터 연세가 많이 드신 어르신(태백산맥의 조정래 선생님도 계셨습니다)까지 모든 사람들이 집회를 기다리며 탄핵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각종 준비를 마치고 7시가 가까워 오자 자원활동가들이 집회 때 맡을 일을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순간 집회 기획을 하는 한 분이 저에게 한 마디 하셨습니다.
" 진한씨는 모금함을 들고 돌면서 모금을 하세요."
" 네. 모금요? "
암담했습니다. 유난히 남들에게 부탁을 잘 못하는 성격이라 모금을 어떻게 할지 답답했습니다. 7시가 지나자 수많은 사람들을 "탄핵반대" "민주수호"를 외치면서 집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제 손에도 모금통이 들려 있었습니다.
" 진한씨는 저 끝에서부터 모금을 해 오세요."
"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네."
인파를 헤치고 모금통을 들고 사람들에게 다가갔습니다. "탄핵 반대를 위한 모금을 하고 있습니다. 많은 동참 부탁드립니다"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차마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등에서 땀은 나고 얼굴은 붉게 상기된 채 멍하니 서 있으니 등 뒤에서 반가운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 여기요! 돈 있어요 모금통 주세요."
" 여기도 있어. 빨리 갖다 줘요."
수많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모금통을 찾고 있었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장면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갑을 열고 돈을 넣고 있었습니다. 모금통을 찾는 소리들이 점점 커져 갔습니다.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돈을 내고 있었습니다. 지갑에 들어있는 돈을 모두 내는 사람, 한국 돈이 없다며 외국돈을 내는 사람, 어린아이들의 동전 등 서로 경쟁을 하듯 성금을 내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뭉클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배에 힘이 들어갔습니다.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탄핵 반대 촛불 행사를 위한 모금을 하고 있습니다. 성금 부탁드립니다."
제가 외치자 모금통에 더 많은 사람들이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인파를 헤치면서 모금을 하고 있는데 순간 뒤에서 사람이 넘어지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돌아보니 학생처럼 보이는 20대 초반쯤 되는 청년이 보였습니다.
" 괜찮으세요? "
" (웃으면서) 모금통 따라 오다 넘어졌어요! 돈을 내고 싶어도 돈을 낼 수가 없네요."
그리고는 만원 짜리 한 장을 모금통에 넣고 절뚝거리며 다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한참을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그의 뒷모습을 지켜 보았습니다. 그 모습에 말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 왔습니다. 이후 모금통은 삽시간에 다 채워졌고, 그렇게 집회가 끝날 때까지 세번이나 모금통을 채울 수 있었습니다. 난생 처음 맛보는 감격스러운 자리였습니다. 국회에 대한 울분이 희망으로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모금통에 속에 쌓인 성금은 국민을 무시한 국회에 대한 분노와 서로의 힘을 확인하며 기뻐하는 국민들의 마음인 것 같았습니다. 처음에 모금통 들기를 머뭇거렸던 내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워졌습니다.
탄핵정국 때문에 술 소비량이 많이 늘었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이런 현실에 격분하며 술을 많이 마신 결과이겠지요. 하지만 촛불 집회에 가보면 그런 우울함이 희망으로 바뀌는 것을 금세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에너지를 탄핵정국을 힘겹게 보내고 있는 이들과 함께 느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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