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검비무게시판에 들어오셨습니다]
Ok
[캐릭터를 만드시겠습니까?]
Ok
[성별을 선택해 주십시오.]
남자
Ok
[직업을 선택해 주십시오.]
검사
Ok
[능력치를 배분해 주십시오.]
완력 13
민첩성 16
건강함 12
지능 10
지혜로움 11
매력 13
Ok
[특기 능력을 선택해 주십시오.]
나려타곤
최음분 살포
죽은척하기
Ok
[병기를 선택해 주십시오.]
협봉검
Ok
[비무장을 선택해 주십시오.]
배틀로얄
Ok
[배틀로얄을 시작합니다.]
Ok
[그럼 즐거운 여행 되시길 바랍니다.]
..........
.....
..
[적을 만났습니다.]
- 전투 개시
- 공격 성공! 적에게 데미지 12 입혔습니다.
- 방어 성공! 그러나 데미지 9 입었습니다.
- 공격 성공! 적에게 데미지 3 입혔습니다.
- 방어 성공! 그러나 데미지 22 입었습니다.
- 공격 성공! 적에게 데미지 17 입혔습니다.
- 방어 성공! 그러나 데미지 11 입었습니다.
[당신은 치명상을 입었습니다.]
게임 오버.
[공격력]
인터넷 게시판이라는 곳은 참 편리한 장소입니다.
자신이 한 말을 '올리기 전까지는' 얼마든지 주워담을 수 있으니까요.
펜으로 쓰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할 말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작성과 수정이 자유롭고 빠르다보니
그 특징을 잘 이용하면 '현실에서의 내 언변' 에 비해 그 생각의 넓이를 좀 더 강력하게 확장시킬 수 있다는 느낌입니다.
한마디로 말빨이 좀 섭니다..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다면 말이지요.
단지 '현실에서의 언쟁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이 다를 뿐입니다.
[방어력]
다른이가 올려놓은 글을 읽어내려가는 나의 '눈'과
그 글을 이해하는 나의 '머리' 역시 좀 더 여유롭습니다.
누군가 엄청나게 위협적인 발언으로 나를 공격했다 해도
그 글을 보며 차분히 생각하고 '좀 더 효과적인 반박'을 위하여 생각을 짜낼 시간이 있지요.
면전에서 그런 소리를 들었을 경우보다 훨씬 신중한 대응을 보일 수 있습니다.
역시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말이지요.
[내구력]
그러나 다른이의 글을 받아들이는 나의 '가슴'은 현실과 전혀 다를 것이 없습니다.
글을 읽고 '충분한 시간을 숙고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 가슴이란 녀석입니다.
읽었다 - 반론을 작성한다 - 돌려보낸다
공격받았다 - 방어했다 - 반격한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공격력과 방어력 뿐입니다.
인터넷 게시판은 이용자의 공격력과 방어력을 현격하게 상승시켜주지만
그 내구력에 있어서는 오히려 현실만 못하다는 느낌입니다.
'더 무책임하고 더 날카롭게 타인을 찌를 수 있는 공격력'
'타인의 논리에 굴하지 않을 수 있게 굳게 닫혀진 방어력'
공격력과 방어력의 향상이 너무나 두드러지다보니
현실과 별다를 것이 없는 내구력은 상대적으로 빈약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말을 통해 더 쉽고 강력하게 싸울 수 있지만
그 덕에 타인이 찌른 상처를 돌아보며 그 의미를 확인할 여유가 줄어들었달까요..?
비현실적인 힘을 얻었다고 신나게 싸우다 보면 어느새 주위 기물이 부서져있고 싸움의 의미 역시 퇴색되어 있기 마련이지요.
온라인의 게시판에서 신나게 싸우다 보면 어느새 나의 가슴 역시 부서져있고 감정은 이미 상할대로 상해 있습니다.
내구력이 부족하니까요...
논리로 공격하고 논리로 방어하는 와중에 정작 저의 가슴을 지키지 못한 탓입니다.
내 논리가 상대의 논리뿐만 아니라 그 가슴까지 찌를 수 있음을 묵과한 때문입니다.
더 강력하고 괴이한 초식, 더 치명적이고 독을 품은 병기, 더 굳게 닫혀있는 갑옷, 철저히 튕겨내는 방패
그러나 저의 가슴만은 여과없이 그 병기에 초식에 찔려버리고 있는 탓입니다.
정작 나 자신은 변한 게 없는데
상대방은 아주 효율적으로 나를 공격하고 있으니 나의 감정이 상합니다.
그러나 내가 상대를 공격하기에도 온라인은 효율적이므로 상대 역시 감정이 상합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내구력 연마에 정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병기에 어떤 깊이로 한칼을 당하던간에
감정을 상하지 않을 수 있는, 흥분해서 덩달아 칼부림을 벌이지 않을 수 있는
그런 내구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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