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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담

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작성자
Lv.23 달디단
작성
16.03.29 11:42
조회
1,351


 고교 2학년 봄이었어요. 우리 학교는 운동장이 학교 건물 뒤편에 있어서, 정문을 지나면 바로 교내로 진입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정문을 지나서 건물로 진입하는 길목에는 화단이 보기 좋게 꾸며져 있는데, 봄이라서 푸른 도화지 위에 밝은 색 물감으로 듬성듬성 찍어 바른 것 마냥 예쁜 꽃들이 만발했었지요. 


 아직은 시원한 바람이 코끝으로 꽃향기를 살짝 가져다 줄 수 있는 좋은 아침이면, 지각한 아이들이 그 화단 주변을 오리걸음으로 걸었어요. 부지런한 젊은 선도부 선생님은 언제나 선도부원들을 데리고 지각한 애들을 잡아서 오리걸음을 시키기도 하고, 아이들의 가방을 급습해서 학생이 갖고 다니기에는 불편한 담배나 라이터 불온서적, 혹은 만화책 같은 걸 압수했습니다. 


 화사한 봄의 정원 풍경과는 조금 이질적인 모습이긴 하지만, 여기저기서 들리는 기합소리와 고함치는 선생님의 호통소리를 들어야 학교에 왔다는 기분이 들던 시절 이야기입니다.



 연애편지는 사실 쉽게 걸릴만한 물건은 아닙니다. 교과서나 노트 사이에 넣어두면 불행하게도 학생주임 선생님에게 불심검문을 당하더라도 빼앗기는 사태를 예방할 수 있었죠. 


 하지만, 그날 아침은 좀 달랐어요. 선생님이 노트를 펼쳐서 페이지를 빠르게 넘기는 검사를 하셨어요. 


 봄이라서 그랬나 봐요. 상당히 많은 연애편지들이 발견되었어요. 선생님과 선도부원들은 몇 봉의 연애편지들을 발견하고서는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전수검사를 실시했습니다. 시간적인 편의상 아무래도 가장 의심스러운 2학년을 중점적으로 검사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체육선생님이셨던 선도부 선생님은 연애편지를 몇 봉 열어서 읽으셨어요. 그리고 그 자리에서 찢어 버리시다가 몇 봉은 찢지 않으시고 꼼꼼히 읽으셨어요. 그러다 너무 많은 양의 연애편지를 압수해서 다 읽으실 수 없으셔서, 나중에는 커다란 봉투에 아이들의 연애편지를 담아 가셨습니다. 



 전 그 시절에 친구들 연애편지를 상당히 많이 대필 해주고 있었어요. 그래서 저에게도 어떤 제재가 가해질까봐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3교시가 끝나고 도시락을 까먹으려는데, 선도부 선생님이 우리 반에 들리셨습니다. 



 “이것들 다 쓴 사람 나와!”


 “...”


 “이거 한사람이 쓴 거잖아. 미영이 효정이 한... 희정이 수민이... 또 어... 누구냐?”



 연애편지를 대필해 줄 때, 불시의 단속에 의한 피해에 대한 감수를 누가 책임지는지에 대한 계약서를 쓰지 않았어요. 선생님은 내가 대필 해준 편지들을 손에 들고 흔들며 그 것들을 쓴 사람을 나오라고 호통 치셨습니다. 시간을 끌 필요가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전 약간 긴장하며 일어나 걸어 나갔습니다. 


 젊은 선도부 선생님은 성격이 불같으셔서, 화가 나시면 상당히 빠른 속도로 학생들의 뺨을 후려치는 버릇이 있었기 때문에 제 턱에는 약간의 긴장감이 일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제 뺨을 후려치시는 대신 손에 든 연애편지들을 까닥까닥 흔들며 저와 편지들을 돌아보셨습니다. 



 “너냐?”


 “네?”


 “이것들 전부 네가 쓴 거야?”


 “예”


 “따라와”



 교복 바지 아래로 체육복을 챙겨 입을 시간을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선도부실에 선도부 선생님과 동행한다는 이야기는 엉덩이 매찜질을 예상하는 게 당연하니까요. 하지만 선생님은 절 곧 바로 따라오시게 하셨습니다. 10대 까지는 견딜 수 있는 자신이 있었지만, 그 이상은 저도 힘든 편이었습니다. 제발 10대가 넘어가질 않기를 간절히 기도했어요. 


 선도부실에 도착한 선생님은 곧바로 바닥에 엎드리려는 제게 앉으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책상위에 편지들을 죽 뿌려 놓으시고는, 책상위에 팔을 괴고 절 잠시 부담스럽게 바라보셨습니다.     



 “편지 잘 쓰네?”


 “예?”


 “딱 읽어보니까 알겠드만, 한사람이 썼다는 걸 말이야”


 “예...”



 무서운 선도부 선생님이 갑자기 귀여운 표정으로 뭔가 고민하고 있다는 것 같은 포즈를 취했어요. 제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느낌은 조금 그랬습니다. 선생님은 몸을 비비 꼬면서 약간의 고민을 하시고 드디어 결정을 하셨는지 다시 입을 여셨습니다. 



 “너 내 편지도 좀 써줘라”


 “예?”


 “연애편지 대필이 너 특기잖아. 내 것도 좀 쓰라고”


 “예?”



 젊은 체육선생님이자 선도부 선생님이신 이 분이 내게 연애편지를 의뢰하셨어요. 우리 학교 바로 앞에는 같은 제단의 초등학교가 있는데, 그 곳의 여선생님에게 연애편지를 써달라고 하셨습니다. 


 그 여선생님이 어떤 분이신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 내 앞의 선도부 선생님 얼굴을 보면서 위로의 묵념시간을 잠시 갖고 싶었어요. 저런 무서운 얼굴로 부끄러운 표정을 지으시다니, 제발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져가”


 “예?”


 “니 껀 가져가라고, 내가 넌 봐줄 테니까. 내 편지 좀 대신 써 줘봐” 


 “제 껀 없는데요.”


 “뭐? 그럼 대필만 한 거야?”


 “네...”


 “...”



 선생님 같은 얼굴의 사람에게 위로받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어요. 그냥 새로운 무보수 고객으로 선생님을 상대하고 싶었습니다. 선생님의 설명만으로 부족해서 그 초등학교의 여선생님을 멀리서 확인도 했습니다. 미인이시더군요. 



 당연히 그 여선생님은 나중에 다른 분과 결혼하셨습니다. 그 체육선생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제가 졸업했으니 알 바 아니고요.  






 끝.




Comment ' 11

  • 작성자
    Lv.12 김백수
    작성일
    16.03.29 11:45
    No. 1

    후후.
    그리고 그 체육선생님은 총각귀신이 되어 나타나......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3 달디단
    작성일
    16.03.29 11:49
    No. 2

    아직 교편을 잡고 계시.......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2 김백수
    작성일
    16.03.29 11:50
    No. 3

    그렇다면 유체이탈로 원한을 갚으러......
    판타지 세계로 차원이동한 바람달빛!
    대서소 말단 직원으로 시작하여
    마왕을 물리치는 용사의 연애편지를 대필하였다고 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3 달디단
    작성일
    16.03.29 11:58
    No. 4

    그는 마왕의 연애편지 대필 의뢰로 이중첩자가 되는데.......
    마왕은 천계의 수호자와 사랑에 빠지고, 천계의 수호자는 용사를 사랑하게 됩니다.
    삼각관계는 천계의 수호자가 남성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비극으로 치닫는데~
    천계와 인간계와 마계를 아우리는 세 남자의 브로맨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2 김백수
    작성일
    16.03.29 12:01
    No. 5

    헉 집필 들어가주시는겁니까.
    로맨스 란에서 뵙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3 달디단
    작성일
    16.03.29 12:02
    No. 6

    ㅋㅋㅋㅋㅋㅋㅋ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二月
    작성일
    16.03.29 11:45
    No. 7

    곧 연애편지 대필 의뢰가 몰려오겠는데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3 달디단
    작성일
    16.03.29 11:48
    No. 8

    소설 연재하기도 바빠요 ㅠ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 이재야
    작성일
    16.03.29 11:54
    No. 9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릴 땐 그저 글 쓰는 게 좋아서.... 빵셔틀도 아니고 글셔틀을 자처해서 했던 기억이 나네요. 심지어 선배들까지 제게 부탁했고... 국어선생님도 아셨으면서도 그냥 그러려니 넘어가시고=_=...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0 고지라가
    작성일
    16.03.29 12:03
    No. 10

    저희도 그런적이 있었어요. 수업시간 소설을 쓰던 여학생이 걸린겁니다.
    그걸 뺏어서 학생들 앞에서 소리내서 읽던 열혈 독신남 수학선생님. 근데 얼굴이 점점 빨개지는 겁니다. 그게 남자랑 남자가 뒹굴어 다니는 내용이었거든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9 ForDest
    작성일
    16.03.29 13:52
    No. 11

    알고보니 체육선생님의 실패는 바람달빛님의 계획이었고.......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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