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에 약해서 무슨 말이 오가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차별에 대해 한말씀 올려보겠습니다.
학창시절에 다들 성악설 성선설 등을 배워보셨겠죠.
우리는 교육을 통해서 삶의 질을 개선시킬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교육은 또한 인간이 갖는 많은 부족한 부분을 사회안에서 채워줄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인간은 불완전하고 이기적이기도 하면서 측은지심도 갖고 있습니다. 이런 인간의 복합적인 면은 교육과 사회시스템 등 인류가 발전시켜온 것들이 메꾸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갈등이 있고 하나를 채우면 하나가 부족해 집니다.
특히 정의를 말할 수 없는 것들이 많죠. 국제간 분쟁이 대표적입니다. 이런 집단간의 이익이 부딪히고 그 단위가 커질 수록 너무나 많은 것들이 얽혀 누가 옳고 그른 것들을 판단하기 어렵게 됩니다.
인간은 늘 보편적 가치를 향해 끈임없이 고민하지만 늘 옳을 수는 없고 실수로 인해 많은 희생이 뒤따르기도 합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국내에서 범죄를 일으키거나 했을 때 우리는 분개 하죠. 미국에서 커다란 재난이 발생했을 때 미디어에서는 흑인들의 약탈장면만 반복해서 내보냅니다.
이민이 활발한 나라는 저임금의 노동력이 필요한 직업부터 시작해서 누군가는 적응을 잘하고 근면성실하여 기존 시스템에 잘 녹아들기도 하지만, 반면에 그렇지 못하고 오랜 세월이 흘러도 겉 돌면서 범죄자들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보편적 가치는 개별적인 사안들에 의해 자꾸만 위협받고 있습니다. 차별은 실재하고 있고, 그 차별을 정당화 하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왜냐면 사회구조에 대한 개선은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고, 그 과정에서 나는 손해보기 싫은 사람들이 늘어날 수록 악순환은 계속 됩니다.
우리나라의 예를 들어 볼까요. 남과 불필요한 비교를 하지 않고 나를 사랑하는 자주적인 사고 방식을 심어 주는 가정 교육, 공교육이 제대로 자리 잡혀 있다면 성형수술이 이렇게까지 심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방송프로에서는 남의 신체적 약점을 대 놓고 비하하는 내용이 한때 유행하기도 했었는데, 이에 대한 반성의 태도를 보인적이 없습니다. 그저 스리슬쩍 줄어들고 있는 정도죠.
재벌이야기는 수많은 변주를 통해 반복되며 양극화 현상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합니다. 왜냐면, 욕하고 거친 언사와 행동을 일삼는 사람과 자주 부딪히면 나는 안그래야지 하면서 닮아가는게 인간입니다. 마찬가지로 재벌이야기를 자주 접하게 되다보면 욕하면서 물질주의에 물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미디어와 교육이 중요합니다.
내 중심을 세우고, 남의 생각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말이죠. 그런데 우리사회에선 양극화가 심해재고 불합리한 일들이 수도 없이 일어나 언론과 발달한 인터넷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집니다. 자기 주관도 약하고 좋지 않은 내용들은 자꾸 들려오고, 그에 영향을 받게 되면 불만이 생기고, 나는 손해보고 싶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납니다. 심지어 이기적인 발언들이 난무하며 지지하는 사람들이 늘어납니다.
사회시스템의 개혁에 있어서는 갈등이 없을 수 없고, 그러자면 적지 않은 희생이 뒤따르게 되는데, 내 곁의 작은 이익은 쫒아도 당장 피부에 와닿지 않는 시스템 개선은 뜬구름 잡는 소리로만 들이게 됩니다. 그렇다고 탓을 할수만은 없습니다. 힘을 가진잗르이 솔선수범을 하지 않고 오히려 시스템을 악용하는데 앞장서고 있으니 일반 소시민들이 자기것을 손해보지 않으려는것을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이렇게 사회구조가 개선되지 않고 점점 악화일로를 걷게 되다 보면, 보통 사람들이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차별을 하게 됩니다. 차별이 위에서 아래로 이어진다는 말입니다.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참 많은 구조적인 문제들이 있습니다. 얼마전 산이 아버지가 미국의 의료보험 시스템 때문에 청소부를 시작했다고 하는 인터뷰를 했더군요. 장점과 단점이 있고, 단점을 보완하려고 하면 굉장히 큰 저항이 따릅니다. 시스템이라는게 그렇습니다.
아무튼 교육을 받지 못하고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범죄의 길로 빠져드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앞서 인종관련 글의 내용이 이런게 아닐까 짐작합니다.영어가 약해서 해석은 못하고 분위기 파악만 그렇게 했습니다.
우리나라도 지역주의가 그런면이 있습니다. 스페인이 영국이 해외에서 땅따먹기 놀이 할때 그 놀이에 희생된 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흔적이 지금도 남아 굉장한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습니다.
불로소득자들은 뒤에서 웃고 앞에서 소시민들끼리 싸웁니다. 현대사회에서 차별은 소시민들 개개인은 저마다 의식이 깨어 있도록 노력하고, 시스템의 개선에 생각이 닿아 있어야 합니다. 뒤에서 이미 기득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이득을 취하고 웃고 있는 줄도 모르고 드러난 작은 이익에 너도나도 달려들이 내것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하니 갈등은 커지고 소모적 논쟁은 계속 됩니다.
공정한 사회시스템을 만들어 나가는 노력이 개별적인 차별을 줄일 수 있다고 봅니다. 아래글의 논쟁이 댓글을 보니 죄와 인종을 엮어 주장하는 것이라 하는데, 그런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봅니다.
왜냐면 인간은 불완전하고 그 가운데 만들어지는 갈등은 개선해야하는 것이지, 탓만해서는 아니되기 때문입니다. 개선의 방법을 내것을 빼앗기지 않고 나와 내편이라 생각한쪽만 살아 남는게 옳다고 여기는 것은 파이를 장악하고 있느 사람들이 즐기며 보고 있을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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