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그 곳에서는 세 가지의 붉음이 있었다. 세인트 아론 교회를 뒤덮은 붉은 노을이 하나, 세인트 아론 교회를 둘러싸고 있는 붉은 깃발의 물결이 둘, 세인트 아론 교회에 숨어있는 신도들의 피가 셋이었다.
교회는 참혹하게 파괴되어 있었다. 마치 피부가 벗겨져 연한 속살을 드러낸 짐승처럼, 부서진 교회 안에 숨어있는 신도들은 곧 다가올 죽음의 고통에 핏물을 흘렸다. 그들이 바라보는 곳에는 제국 유카리아의 군대를 상징하는 붉은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유카리아의 정예부대를 지휘하고 있는 필 스트라본 장군은 파괴된 신전과 신도들을 감정 없이 바라보았다. 믿음이란 칼보다 어리석은 신념인가. 그들의 건물을 부수고, 그들의 육신을 망가뜨려도 신도들의 눈에 담긴 신념은 파괴될 줄을 몰랐다.
“신념을 부술 수 있는 것은 오직 죽음 뿐.”
스트라본이 지시를 내리자, 붉은 대지를 연상시키는 병사의 행렬이 파도처럼 들썩이며 전진하기 시작했다. 수 천이 구르는 발소리를 들으며, 신도들은 마치 손님을 맞이하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선두에 서있던 교주가 신도들을 돌아보며 격려했다.
“우리는 이겨 낼 수 있다. 제국의 개 따위 우리의 성벽을 넘을 수 없을 것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한다!”
세 가지의 붉음이 있었던 그 날의 그곳에서.
세인트 아론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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