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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anSan
작성
07.12.22 12:56
조회
2,292

작가명 : 윤현승

작품명 : 뫼신사냥꾼 上

출판사 : 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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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의 장르소설은 이야기만 있는 것 같다. 작가는 그저 자기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 바빠서, 그 안에 독자의 자리는 없다. 들려주고자 하는 것은 있지만, 그것을 들어줄 독자를 다룰 줄 모른다. 아득히 먼 곳에 있는 종착점을 향해서 작가 혼자 열심히 달려가는 것 같다. 나는, 독자는, 아무 이유 없이 그저 함께 달려주지는 않는다.

뛰어난 작가는 독자와 함께 한다. 저기 멀리 도달해야 할 곳이 있고, 들려주고자 하는 이야기가 있다. 그는 그곳까지 나를 능숙하게 데려간다. 그곳에 무엇이 있을지 궁금해서 어쩔 줄 모르도록, 때로는 미끼를 흔들고 때로는 눈을 가리고 때로는 뒤에서 슬쩍 밀어주면서. 나는 유원지에 아버지와 함께 온 아이처럼 그가 보여주는 세상에 취하고 그 즐거움에 푹 빠져 기뻐할 뿐이다.

이야기는 화자와 청자가 함께 할 때 성립하는 것이다. 혼자 이야기해봐야 독백일 뿐이다. 뛰어난 이야기꾼이라면 청자와 하나가 될 줄 알아야 한다. 화끈하게 눈길을 끌고, 관심을 모으고, 두근두근 기대하게 만들다가, 슬쩍 애태우고, 살짝 복선을 깔고, 안타까운 암시를 던지고, 꽝 터뜨리고, 능숙하게 정리해 내야 한다. 청자를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어제 윤현승님의 '뫼신사냥꾼'을 읽었다. 오랜만에 진짜 이야기꾼을 만난 기분이었다. 최근 장르소설을 읽을 때면 항상 나는 이야기에 완전히 몰입을 할 수가 없었다. 책 속에는 작가의 이야기만이 있을 뿐, 독자의 자리는 없었기에 함께 달려갈 수가 없었다. 그러니 작품과 나 사이의 괴리가 생길 수밖에 없었고 그 갭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뫼신사냥꾼은 그렇지 않았다. 몇 장 넘길 때부터 나의 시선은 책장에서 떨어질 줄 몰랐고, 세 귀신의 슬픈 이야기 경연 부분에서는 이미 책 속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다. 세희와 함께 포효를 터뜨렸고, 서리에게 정을 붙이고 말았고, 솔이에게 여성을 느꼈다. 이야기꾼 윤현승님이 1권 끝이라고 선언한 그 페이지에 다다를 때까지 나는 먹귀였고 세희였으며 이야기를 듣는 아이였고, 또한 이야기꾼과 한몸이었다.

밀고, 당기고, 맺고, 끊으며, 숨기고, 드러내고, 늦추고, 몰아치고... 그는 이야기를 어떻게 하는 줄 알고 있었다. 독자를 다루는 법을 알고 있었다. 나는 뫼신사냥꾼의 세계에 초대받은 아이였다. 오로지 나를 위해 준비된 그 세계에서, 나를 즐겁게 하기 위해 창조된 그 세상에서, 마음껏 뛰놀았고 마음껏 울고 웃었다.

지금은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그 세상에서 빠져 나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찬찬히 되짚어보면 완전무결한 작품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난 완벽하게 그 세계와 하나였다. 그리고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이야기꾼 윤현승님의 덕분이다. 이렇게 오늘 난 또 하나의 세상을 갖게 되었다.

http://blog.naver.com/serpent/110025634186


Comment ' 13

  • 작성자
    SanSan
    작성일
    07.12.22 13:14
    No. 1

    요즘 작가분들께 이야기꾼의 모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어제 읽은 윤현승님의 뫼신사냥꾼에 빗대어 써놨습니다.
    뫼신사냥꾼 감상임과 동시에 최근 장르소설에 대한 비평입니다.
    글 제목도 '뫼신사냥꾼, 그리고 이야기꾼의 자질'입니다...
    이해를 못하셨다면 제 잘못이긴 합니다만.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7 하지은
    작성일
    07.12.22 13:49
    No. 2

    아... 멋있네요. 독자와 함께 달려가는 작가라...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9 둔저
    작성일
    07.12.22 14:48
    No. 3

    아, 그런 뜻이셨군요.
    저는 읽으면서 '음? 좋은 글이지만 왜 여기... 좋았어! 댓글로 산산님께 태클을 거는거야!'라며 흥분 했는데...어흑..OTL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6 월궁사일
    작성일
    07.12.22 15:20
    No. 4

    세 귀신의 이야기 부분은 정말 대단하다는 말 밖에 안나오더군요. 시점 변경도 완벽하고(...) 저는 예전 배추도사 무도사에 대한 추억이 떠올라 감상적인 기분까지 들었습니다. 정말 멋져요-_-b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5 Trouble
    작성일
    07.12.22 15:59
    No. 5

    11000원이 아깝지 않은 글.. 12월에 나온다는 하권은 언제 나올런지;;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금원
    작성일
    07.12.22 19:54
    No. 6

    윤현승님은 하얀늑대들로부터 완전한 자기 스타일을 찾으셨죠. 인제 이름만으로 책을 사게 만드는 분이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 라후라
    작성일
    07.12.22 22:24
    No. 7

    제목보고 낚인 기분이;;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오로지무협
    작성일
    07.12.22 23:08
    No. 8

    판타지는 전혀안보는데 정말 완결까지본 유일한 작품..
    하얀늑대들.. 이것도 봐야겟네요
    나온줄도몰랐는데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SanSan
    작성일
    07.12.23 03:32
    No. 9

    나태한악마님//
    그런 작가분이 많아질수록 독자는 행복해지죠. ^^

    둔저님//
    1번 댓글 단 분이 글을 지우셔서 제 댓글이 뜬금없어졌네요. -_-;
    다른 분이 먼저 '비평이 아니라 감상'이라 하시길래 답변한건데 ^^;;;
    다시 와보니 그분 댓글은 사라져있고 제 댓글만 외로이.... ㅋ

    Her_Hayes님//
    그렇죠!! 순식간에 확 몰입시키는 그 엄청난 필력 >_<

    Trouble님//
    정말 이만원의 가치는 있는 책이더군요. -_-)b
    12월 예정이었던 하권은 여러 작업의 지연으로
    1월로 밀렸답니당. 하뎃님 블로그에 소식이 있죠.^^;;

    금원님//
    전 왜 이제야 이 책을 샀는지 후회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ㅎㅎ

    라후라님//
    낚을 의도는 없었어요;; (믿어주세요 ㅋㅋ)

    오로지무협님//
    꼭 읽어보시길... 하얀늑대들 못지 않은 재미를 줄 겁니다...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7 만득
    작성일
    07.12.23 08:58
    No. 10

    이런..... 출간약속 못 지키는 작가가 제일 싫어요....
    이우형님은 아예 빼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SanSan
    작성일
    07.12.23 10:58
    No. 11

    만득님//
    출판이란 건 작가 혼자 하는 것이 아닌데요. 윤현승님도 '약속'하신 건 아닙니다. 그저 출판사의 '예정'이었던 거죠. 거기에 윤현승님께서 비난받을 이유는 없을 것 같군요.

    특히나 뫼신사냥꾼같은 경우 삽화도 들어간 형식의 양장본이고, 윤현승님의 목표는 오로지 '소장가치가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늦더라도 최고의 퀄리티를 내고자 하고 계십니다. 지금도 삽화작업 때문에 늦어지는 걸로 알고 있고요. 전 빨리 나오는 것보다 제대로 나오는 게 더 가치있는 일이라고 봅니다. 예정(약속이 아닌 '예정')이 조금 틀어진다 하더라도요.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62 천년후에도
    작성일
    07.12.25 00:54
    No. 12

    오..하얀늑대들....윤현승님의 글이 나왔구나..

    엄청 기다렸는데..이분 정말 대단한 필력을 가지고 계신분...

    사봐야겠습니다..내일 당장....^^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7 스티지아
    작성일
    08.01.01 15:17
    No. 13

    이건 상당히 재밌죠. 외면받은 더스크위치도 또한 최고의 작품인데.. 누군가 알아줬으면.. 더스크위치는 하얀늑대들에서도 보듯이 주변인물들의 스토리가 아주 길게 아주 재미있게 나와있지요.. 정도라면 하얀늑대들보다 더 강조되는 정도. 하지만, 요즘 우리나라 작품이 주인공위주라 싫어하는건지.. 하여간 더스크위치도 많이 사랑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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