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강승환
작품명 : 전생기
출판사 : 로크미디어
영화 아바타를 디지틀 3D 화면으로 감상했다. 사모하는 여성과 함께 24일에 보는 아바타는 헐리우드 산 블록버스터에 대한 불신을 한방에 깨뜨릴 만큼 재밌었다. 특수효과는 세 시간에 가까운 러닝 타임이 전혀 지루하지 않을 만큼 만족스러웠고, 포카혼타스의 클리셰구나 싶던 스토리는 금새 그것을 철회할 만큼 신선했다. 다만 감독이 인간을 싫어하나 질문하게 되는 찝찔함은 있었지만 말이다.
아바타를 보고 난 후의 만족감은 블록버스터에 대한 편견을 버리기에 충분했다. 마이너 지향의 나는 프랑스 혹은 남미 등지의 제 3세계 영화를 찾아보는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취향을 가지고 있다. 사실 그 영화들이 딱히 재밌는 것도 아니지만, 메이저 혹은 거대자본에 대한 학습된 혐오 때문이랄까. 그러나 역시 자본과 정성과 실력이 합쳐지면 정말 쓸만한 작품이 나오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한국 무협/판타지 출판시장의 헐리우드 제작사는 아무래도 로크미디어로 견줄 수 있겠다. 사실 이런 비교가 좀 거시기하긴 하다. 세계 출판 시장에서 비주류인 한국, 그 안에서 비주류 중에서도 비주류인 무협/판타지에 헐리우드를 대입시키긴 쪽팔린 것이 사실이다. 그냥 발리우드 정도로 할까. 그래도 로크미디어가 내놓는 무협지들이 타 출판사에 비해 돈 좀 들인 흔적이 엿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만큼 수익을 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그 안에 열왕대전기로 한창 잘나가는 강승환이 있다.
그 강승환이 전생기라는 이름으로 세 권짜리 판타지 소설을 새롭게 펴냈다. 강승환의 이름을 알리게 된 재생과 신왕기를 새롭게 버무린 책이다. 이 책을 보고 난 후의 느낌은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양두구육. 일본의 어느 정치인이 이 말을 사용하며 한국의 비빔밥을 폄하하여 더욱 알려진 고사성어다.
우리는 전생기를 보기 전에 한 가닥 기대를 갖게 된다. 강승환 특유의 폭력, 재생의 마초스러움, 신왕기의 야만, 그리고 여기서 미처 못다한 이야기들을 로크미디어의 탄탄한 지원 아래 비빔밥처럼 맛깔스럽게 맛볼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러나 금새 접하게 되는 전생기는 먹음직스런 양머리를 가졌으되, 그 실체는 역한 냄새가 나는 개고기다. 왜 전생기가 양두구육일까.
첫째, 총 12권 분량의 이야기를 단 3권에 요약해버렸다. 현재 한국의 무협/판타지는 대하소설의 양식을 띠고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군상들이 출연하며 긴 시간 동안 다양한 사건들이 중첩되는 형식이다. 이는 재생이나 신왕기도 마찬가지. 신왕기는 제쳐두고라도, 전생기의 주요 플롯인 재생 또한 6권 분량이다. 이를 3권으로 줄이려니 사건들과 군상들을 제거할 수밖에 없다. 공백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암브로시아, 이글스, 힐테른, 예나 등의 주요인물(처럼 보이는)들이 정말로 중요한 것처럼 등장했다가 막장에서야 나와서 허무하게 스러지는 것은 그 일례다. 이게 정말 뭥미?할 일이다.
둘째, 신왕기가 사라졌다. 전작 재생이 자하르의 일대기에 맞춰져 대하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었다면, 신왕기는 마법검을 중심에 두고 문명 사회와 원시 사회 간 갈등 구조를 흥미롭게 풀어가는 장편소설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소설적 완성도와 그 자체의 재미면에서 강승환이 월등히 나아진 모습을 보였던 신왕기는 재생의 플롯에 편입되면서 거세될 수밖에 없었다. 이는 당연한 일인데, 전생기에서 주인공으로 삼은 재생의 자하르가 작가에 의해 의도된 폭력성을 보인다면, 신왕기의 칼리는 정제되지 않은 야만성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자하르의 개성은 칼리에게 먹힐 수밖에 없다. 또한 자하르의 일대기에 칼리의 부족 사회를 그려내는 것은 배보다 배꼽이 커지게 될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여진다.
셋째, 새롭지 않다. 왜냐하면 전생기는 기본적으로 짜집기이기 때문이다. 이는 대학교 3학년 학생 쯤 되면 습득하게 되는 꽁수와도 비슷하다. 아무래도 전공 수업을 듣다 보면 수업이 그게 그거다. 써야 될 레포트는 늘어나고 쓰기에는 피곤하다. 그런데 레포트 주제는 대충 비슷한 것 같다. 결국 이전에 써놓은 레포트를 보며 얼기설기 조각을 맞추어 새로운 레포트를 만들어 내게 된다! 강승환도 슬슬 지친 것일까? 그러나 작가가 창조하는 능력을 잃게 되면 더 이상 작가라 불릴 수 없다.
뭐 그래도 그럭저럭 재밌게 봤다. 본 바탕이 되는 이야기가 워낙 재밌었으니 읽을만했다. 그리고 난 개고기도 좋아하니까. 그런데 강승환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무협/판타지 작가들이 단편과 장편, 그리고 대하소설의 차이를 깨달았으면 좋겠다. 단 세권으로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가 있고 그렇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 영화 아바타가 재밌는 것은 특수효과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스토리가 세시간이라는 러닝 타임에 걸맞았다는 것이다. 거기에 아바타의 탄생과 부족의 역사, 인물 개개인의 비사 등을 껴맞췄으면 아바타는 그야말로 망작이 되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세권이라는 분량은 느긋하게 한 사람의 인생을 조망하기에는 너무나 짧다. 세권이라는 분량을 어떻게 써야하는지 추천하자면, 좌백의 대도오를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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