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지옥 같은 저승
작가 : 커피애딕
출판사 : 문피아 연재
평론을 쓰기 참 힘들었습니다. 술술 읽히고 배경은 독특하고 주제의식도 있으며 오락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양판소의 느낌이 나지 않은 좋은 소설입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재미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무표정으로 마우스 휠을 획획 돌리는 모습. 이것이 ‘지옥 같은 저승’이 어떤 소설인지 간접적으로 설명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1화를 읽었을 때의 감상은 100점 만점이었습니다. 술술 읽히면서도 매력이 넘치는 문장. 바로 이야기 속으로 끌어당기는 흡입력. 잔뜩 기대하며 글을 읽었습니다. 이야기의 배경도 매력적입니다. 이승에서 한 번 죽었던 사람들이 지옥에서 다시 깨어나게 되고 이곳에서 생존경쟁을 그리고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지옥에 떨어진 주인공은 지옥에서 살아남기 위해 직업을 선택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중 ‘영웅’을 선택하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야기를 읽어보면 직업의 종류는 무한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많고 그중에는 좀비, 드래곤, 에어리언 같은 것들도 존재합니다. 맞습니다. 영화 에어리언에 나오는 그 에어리언을 말하는 겁니다. 이 경우에는 생김새도 변합니다.
이 설정을 보고 처음 생각한 건 유치하다 이었습니다. 게임 판타지의 흔한 설정이고 앞으로 이야기 전개도 이 직업으로 중심으로 풀어 나겠구나 뻔히 예상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예상은 현실로 들어 맞았지요.
이야기의 시작은 ‘직업’ 선택의 아이러니에 관해 말합니다. 많은 사람이 ‘영웅’ 직업을 선택했지만 영웅의 능력이란게 사람을 끌어모으는 재능 말고는 없는지라 전투에선 무용지물인 셈입니다. 주인공인 ‘대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주인공이며 영웅이지만, 이야기 안에서 가장 흐릿한 존재입니다.
이후 등장하여 주인공의 동료가 되는 인물들은 마법사, 성기가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는 일차원적인 캐릭터로 소녀 마법사. 든든한 성기사 이런 이미지가 그들의 성격입니다. 이렇다 보니 인물을 따라가며 이야기를 즐기는 것이 고역입니다. 뻔한 대사와 상황이 앞의 내용을 짐작하게 하고 그것은 사실로 맞아 떨어집니다. 가끔 비극적인 상황에서 주인공이 내뱉은 개똥철학은 중이병에 걸린 사십 대 성인을 보는 것 같이 역겹습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면 ‘직업’이 단순한 소설 속 장치가 아니라 이야기 일부란 것을 알게 되고 ‘직업’ 시스템이 왜 지옥에 차용되었고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이런 것들을 보여주면서 세계관과 주제의식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와장창 거릴 줄만 알았던 소설이었는데 알고 보니 나름의 메시지를 표현하려 것이 느껴졌습니다.
에어리언과 인간 진영이 서로 맞서 싸우고 지친 인간 진영이 쉬는 동안 인간 진영끼리 서로 죽이는 사투가 벌어지며 쉴새 없이 떼죽음이 발생하는데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저 텍스트를 따라 스크롤을 내릴 뿐입니다.
포르노를 보는 기분입니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장면이 즐비하지만, 감정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유를 궁리해봤는데 ‘생존’을 키워드로 잡았음에도 이야기의 진행 방식은 평범한 모험 물과 같은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절박함이나 처절함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았고 캐릭터들 또한 일차원적이라 그들의 행동에 몰입되지 않았습니다. 술술 읽히지만, 만약 어떤 사정 때문에 읽기를 중단한다면 이어서 읽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겁니다.
정리합니다.
보통 제 평론의 마지막은 어떠한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이런 식으로 끝을 맺습니다. 비평=비 추천 글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 때문에 한동안 사용하지 않았지만요.
‘지옥 같은 저승’ 쉽게 권할 수 있는 소설입니다. 그러나 꼭 읽어 보라고 추천할 소설은 아닙니다. 등장인물들이 입체감 있게 표현되고 독자들이 사건을 읽으면서 놀라움이나 처절함을 느낄 수 있게 된다면 모를까 지금의 ‘지옥 같은 저승’은 무미건조하고 독자들을 이야기 속에 잡아 둘 접착력이 부족합니다.
Commen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