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이 좋다 어떤 것이 나쁘다를 떠나 그냥 '독자 입장에서 보면 이러하다고 생각한다.'라는 수준의 글입니다.
또한 글의 여러가지 특성중 해당면에 국한시켜 범위를 줄여 논한 것임을 서두에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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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작품들을 접하다 보면 어떤 글은 쓰윽 보면서 술술 책장이 넘어가고 어떤 글은 드문드문 멈춰서서 곱씹으면서 느릿느릿 책장이 넘어갑니다. 글을 읽는 동안 취해지는 서로 다른 독서의 모습, 어디에서 기인하고 그런 작품 특성의 차이는 어떤 다른 차이를 안게 될까요?
일반적으로 분석이나 학습과 같은 어떤 특수한 목적성을 가지지 않은 독서에 있어 그러한 차이를 가져 오는 것은 크게 보아 한가지로 귀결된다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글의 내용을 쉽게 이미지화 할수 있겠는가 하는 점입니다. 글이 내포하는 것들에 대해 친숙하면 할 수록 쉽게 그 장면 장면을 상상해내고 느낄 수있지만 낯설어 한다면 그런 작업이 더딜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애초에 모르고 듣도 보도 못한 생소한 물건을 단순히 설명만으로 납득하고 쉽게 상상해내기는 어려워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인 셈입니다.
장르소설에 있어 이런 차이를 안겨주는 주된 요소는 세계관의 설정에 있습니다. 많이 쓰여서 일반화된(*주1) 세계관이라면 쉽게 손가는대로 읽히는 것이고, 월드 메이킹을 통한 독창적 세계관이라면 글을 읽는 것과 동시에 그러한 세계를 '공부'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독자의 입장에서 부담이 되고 쉽지 않다라고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즉 글에 대한 독자의 접근성에서 차이가 생겨납니다. 그러한 점을 견디고 꾸준히 볼 수 있는 사람만 보게 됩니다. 얼마나 자연스럽게 그리고 빠르게 독자에게 받아들이게 할 것인가는 '어려운 글'을 쓰는 작가의 필력에 달려 있으며 이러한 페널티는 '어려운 글'의 독자들이 세계관에 익숙해져 받아들이는 속도가 어느정도 선에 이르기 전까지 지속됩니다.
그리고 그선에 이르러 글이 중반부를 달리기 시작하면 두 글은 걸치고 있는 옷이 다를뿐 대동소이한(*주1) 구도와 구성으로 전개되기 시작하고 흡입력을 발휘해서 독자를 상상속에 노닐게 만들어 줍니다. 흔히 독자가 즐거움을 느끼고 매료되기 시작하는 단계로서 후반부에 접어들기 전까지 계속됩니다.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두부류는 다른 길을 가야만 하게 됩니다.
우선 일반적인 설정으로 시작한 글은 계속 해서 일반화된 구도와 구성만으로 끌고 나가 결말을 지으면 그야말로 일반적인 글이 되어 버립니다. 독자적인 정체성을 갖지 못한체 세류속에 묻혀 사라져버리는 것이지요. 이를 바라는 작가는 없다고 봐도 좋습니다. 여기서 쉬운 글 부류의 명암이 갈리고 작가의 필력이 드러나게 됩니다. 매끄럽게 감동적이면서도 개성적인 결말로 이끄느냐, 완전 범작이 되느냐, 이래 저래 고민만 하다가 손도 대보지 못하게 되느냐 하는 결과로서 말이지요.
반면 어렵게 시작한 글은 이부분에 좀더 여유가 있습니다. 이미 글의 설정 자체가 평범치 않으므로 일반적인 구도와 구성으로 결말로 이끌어 가도 매끄럽게 전개만 시킨다면 독자는 '좋은 글이었다'라고 기억하게 됩니다. 여기서 한술 더 떠서 약간의 반전과 같은 어떤 문학적 '장치'들을 시의적절하게 슬그머니 사용해주면 독자들이 흔히 언급하는 '명작'의 반열에 오르는 것도 어렵지만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끝에서 너무 욕심이 과해서 감당하지 못할 억지스런 기교를 부린다거나 이야기를 과도하게 늘여간다면 이러한 기회는 상실되고 글 속의 모멘텀마저 상실한채 이리 저리 방황하는 글이 하나 생겨날 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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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작가는 어떻게 생각하고 기획했더라도 결국 독자가 받아들이기에 그러한.
글의 구조 분석상 그러한.
과거의 문학이나 현재의 문학에서 표현했던 바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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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제목과 상관없는 이야기입니다만 간단히 붙여보겠습니다.
우리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많이 들어온 글의 구조론으로서 발단-전개-절정-(위기)-결말 의 4단계(5단계)론이 있습니다. 아주 정석적인 구조이지요. 얼마전 용대운의 군림천하16권을 보면서 장편에 있어서 이러한 정석적인 구조가 가히 그 힘이 작지 않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작게는 각 권마다, 좁게는 각 부마다, 그리고 넓게는 전체를 아우르며 저러한 정석적 구조가 중첩되고 포진되면서 모든 내용이 정연하게 정리되고 고르게 배치되어 마치 '있어야 할 곳에 있다'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많은 작가들이 장편으로 편을 더할수록 갈길을 잃고 모멘텀을 잃어버리는 예가 적지 않다는 점을 생각하며 구조의 힘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새삼스럽게 다시한번 용대운의 필력이 놀라웠고, 필생의 대작이라는 말이 전혀 헛되지 않구나 하고 생각하였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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