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대신에 살짝 손대 본 숙제입니다.
중딩인데 국사가 조선후기의 소설을 읽고 파악한 시대상을 기반으로 일기를 써 오랬다더군요.
상당히 엽기적인 숙제인데다가 제 동생 스스로도 그 쪽으론 원체 잼병인지라 좀 도와줘야겠다 싶더라고요.
그런데 쓰고보니 뭐랄까 칭찬이든 질책이든 평가를 받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조악한 문장이지만 부디 약간의 시간이나마 할애하시어 비평 해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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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4년 5월 모일
어느 동학 농민군의 일기
선뜻한 기운이 볼을 스치는 바람에 까무룩 까무룩 하던 선잠이 달아나 버리고 말았다. 눈을 뜨니 언제나처럼 푸르스름한 새벽하늘이 보였다. 고부관아를 깨고 이곳 백산에 똬리를 튼 것이 며칠이었던가. 가물가물한 기억을 붙잡고 씨름을 하니 남아있던 잠기운이 가시는게 느껴졌다. 어제 저녁 황가놈이 전주감영서 관군이 출발했다며 방정을 떨던 모습이 떠오르며 어찌하나 싶어 가슴이 묵직해졌다. 그러나 고개를 흔들어 상념을 떨어냈다. 후회는 없다. 아니 없어야 한다. 작년 이맘때 이방이 동생을 욕보인 것에 이를 갈아붙인 것이 얼마인가. 바보 같은 그 아이는 목을 매달았고 나는 복수를 꿈꾸며 반년을 가슴앓이하지 않았던가. 미련한 것, 우리같은 촌 무지렁이한테 정조가 무엇이라고... 이방놈의 그 벌레씹은 얼굴, 살려달라 빌빌대는 꼬라지를 모두 보았으니 당장에 꼬꾸라져 숨이 넘어가도 여한이 있을수가 없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누가 밥먹잡시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돌아보니 아랫집 김영감이었다. 이 영감은 뼛골이 삭아빠질 나이인데도 어쩐일인지 이상하게 기운이 넘쳐나는 영감이었다. 관아에서 몰수해 주인에게 돌려주고 남은 양곡들로 밥을 지어먹고 진지를 정리하니 해가 중천이다. 전날 황산현으로 자리를 옮겨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터벅터벅 거리며 진지를 옮기고 나니 낮참때가 조금 덜 됐다. 점심을 겸해서 먹자니 평소엔 꿈도 꾸지 못하는 호사를 누리는 것만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낮참을 먹고 잠깐 쉬고 있자니 저 멀리 흙먼지가 낮게 이는 것이 보였다. 망 보던 놈이 관군이라며 목이 터져라 소리를 치니 누워서 노닥거리며 놀던 놈들이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우리는 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가 관군 놈들이 거리를 좁히자 화살을 쏘아보냈다. 촌 무지렁이들이 제대로 쏘지도 못하는 화살을 좀 날렸다고 화들짝 놀라 허둥대는 이 당나라 군대만도 못한 오합지졸들이 감영군이라니 지나가던 똥개조차 웃을 일 아닌가. 여하튼 그 틈을 타 우리는 한꺼번에 돌격할 수 있었다. 옆에서 귀를 먹먹하게 하는 함성이 터져나왔다. 나도 혈기가 들끓어 같이 소리질렀다. 그런데 김이 좀 새는 것이, 감영군은 벌써 흐트러지고 있는게 아닌가. 주저앉아 오줌을 지리는 놈 마저 있었다. 흩어지는 놈들을 대나무 쪼개듯 갈라가며 저마다 한 놈씩 붙잡아 싸우기 시작했다. 나한테도 한 놈이 붙었는데 이놈은 창날이 번쩍번쩍하고 수실도 알록달록한 것이 내가 들고 있는 죽창과는 비교도 안되는 물건을 가지고 있었다. 저놈은 내것이다하며 을러 붙었는데 놈의 창날이 몇번 번뜩번뜩하더니 옆구리에서 불에 달군 쇠꼬챙이를 쑤시는 듯한 격통이 골통으로 솟구쳐 올랐다. 다리에 힘이 빠져 주저앉으니 피가 거품처럼 뭉클뭉클 치솟고 있었다. 씨바 멧돼지 엄니에 받치고도 거뜬했던 나다 이 따위에 쓰러질 성 싶은가하며 이를 악물고 몸에 힘을 줬지만 오히려 흙바닥에 털퍽하며 몸을 뉘이고 말았다. 이 소란스런 아수라장에 쓰러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소담스런 뭉게구름이 눈에 박히는 것이 이상스레 평온하다 싶었다. 옆에서 누가 부르는 것 같은 느낌이 왔는데 눈앞에 죽은 여동생이 다가와 있었다. 나는 모르던 것을 깨우친 마냥 아아 그렇구나 싶었다. 감기는 눈을 치떠가며 동생에게 손을 내밀었다. 맞잡아주는 그 아이 얼굴을 바라보며 밀려오는 수마에 몸을 내주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다시 눈을 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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