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상 평어체를 사용합니다.
연재되거나, 출간되는 무협의 상당수에 구대문파가 등장한다. 이 9대문파 각각의 구성은 조금씩 바뀌기도 하지만, (해남이 들어간다던지, 점창이 들어간다던지 등등....) 본질적으로 그들 구성의 대다수는 승, 도의 집단이다.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소림, 무당, 화산, 아미가 이를 대변한다.
살계를 지켜야 할 중요한 계율로 생각하는 승인들, 자연과 대화하며 신선이 되기위해 수양하는 도인들.... 이들은 왜 무공을 익혔을까? 너무 오래되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몸을 건강히 하고 자기수양의 한 방편으로 익히고 있다는 것이 널리 알려진 정설이다. 게다가 임진왜란처럼 나라가 망하고, 모든 백성들이 울부짖는 시기에 승, 도, 속이 왜구를 몰아내는데 하나되었다하니.... 이 부분을 완전히 수긍 못할바는 아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구대문파의 승인이나 도인들이 자기수양의 방편으로 무공을 익힌다는 설정이 현재도 대부분의 작가들이 사용하고 있을까? 그에 대한 대답이 참 애매하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작가들이 이런 점을 고려조차 안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저 구대문파를 자연히 무림에 등장하는 주축배경으로 집어넣고, 무림의 한 문파로만 그리고 있다. 한 마디로 그들의 생각과 행동은 전혀 도인, 승인을 나타내지 못한다. 일반 무림인들과 같은 사고와 행동양식을 취하는 그들은 무인이지 도인, 승인이라고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설정이야 작가의 고유권한인 것을 독자가 지적해서 이리 바꿔라, 저리 바꿔라 하는 것은 나 역시 정도를 넘어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매번 등장하는 구대문파의 승,도의 인물들이 하나같이 명리를 쫓으며, 그 흔한 비인부전의 가르침도 없고, 어린시절부터 자신의 영달과 자파의 명예를 위해 사람죽이는 주먹질과 칼질을 배운다는 설정은.... 너무 쉽게 소재를 가져와 쓰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무림맹이 등장하는 무협은 또 어떠한가? 거기서 서로 자파의 이익을 위해서 갑론을박하는 구대문파의 승인과 도인을 보지못한 무협독자는 없을 것이다. (물론 개중에도 승인과 도인의 모습을 일부분이나마 표현해낸 글도 없지는 않다.) 무림맹이라는 것도 대게 처음 만들어진 취지는 외세의 침략(변방세력이나 마의 집단 정도)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나 대놓고 강호의 이권을 우리끼리 나눠먹자는 것이다. 후자야 말 할 것도 없고, 전자를 설정으로 삼은 글조차 대부분 또다시 명리를 쫓는 승, 도의 인물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런식의 양상을 쓰는 대부분의 무협작가는 무공을 배운 승, 도의 인물들은 모두 무늬만 승인, 도인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구대문파의 설정을 가져오려면 한 번쯤 더 생각해서 자신만의 것으로 가져와 글을 써주십사 하는 것. 구대문파가 언제나 고고한 학처럼 자기수양만 하는 설정을 쓰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태생부터 사람죽이는 주먹질과 칼질을 수양의 방편으로 삼는 인간들인데 그들이 명리를 좇는다고 독자로서 받아들이지 못할것은 없다고 본다.
단지, 그들이 승인이라면 적어도 불경 몇권은 읽었음직한 사고를 하고, 한구절 부처님의 말씀쯤은 읊을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도인이라면 또 도경 몇 권은 읽고 도인다운 생각과 말 그리고 행동을 해야 자연스럽지 않겠는가? 물론 이런 부분을 전혀 공부하지 않은 작가가 도인이나 승인의 생각을 어찌 표현할까? 그렇다면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은 표현하고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은 넘어가는 것이 자연스러울법하다.
하지만, 하나같이 그러한 점을 한 번쯤 생각조차 하지 않고 글을 쓰는 듯한 인상을 받으니, 구대문파를 배경으로 쓰거나, 구대문파가 글에서 일정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는 글을 읽을 때면 매번 입안의 가시처럼 걸리적 거리는 것이 바로 이 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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