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통학이 길다보니, 어찌하여 작년에 드라마화 되어 큰 사랑을 받은 왕좌의 게임 (game of thrones)를 원서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읽다보니까 이래저래 저의 문피아 선작들, 그리고 넓게 본다면 한국 장르문학이랑 비교하게 되더군요. 그리하여 한담이지만 제 생각을 적어보고자 합니다.
1) 작가가 지나치게 불친절하다?
등장인물이나 설정의 소개가 굉장히 간략합니다. 불친절하다고 생각될 정도랄까요. 처음 시작부터 3명의 남자가 나오는데, 그저 이름으로 소개됩니다. 문피아 연재작들에서 흔히 보이는 "물고기가 눈을 잃고, 눈처럼 하얀 피부에, 타는듯한 입술, 매혹적이고 눈을 뗄 수 없는 몸매"따윈 없고, 그저 "키가 크고 마른 여자"로 넘어가더군요.
묘사가 너무 간략해서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머릿속으로 잘 그려지지 않지만, 그 간결함에 전개가 매우 빠릅니다. 그리고 묘사에서 짚고 넘어가는 부분은 꽤나 깊은 뜻이 숨겨져 있습니다. 예를들어 "빼곡한 나무 숲에서 불편하도록 긴 검을 맨"등의 묘사들이 많더군요.
2) 노닥노닥이 없습니다.
노닥노닥, 혹은 쉬어가는 장면들이 없습니다. 연재작들의 경우 이야기의 흐름 조절을 위해 큰 줄거리 사이사이 소소한, 대체적으로 따스하거나 느긋한 이야기가 들어가더군요. 왕좌의 게임엔 그런게 없었습니다. 하지만 긴박한 이야기의 횟수도 적습니다. 조기종결이나 출판의 초반강세를 염두에 두지 않아도 되서 그렇겠지만 대체적으로 천천히 등산을 하는 분위기입니다. 한국의 장르문학 사정상 생길 수 밖에 없는 차이라고 생각하니 입맛이 쓰네요.
3) 같은 단어의 반복을 피한다?
책을 읽으며 참으로 감탄하게 되는 부분인데, 같은 단어의 반복을 일부러 피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등장인물이 홍길동이라 치면, 그의 등장부분마다 "홍길동은" 이라던지 "홍길동이"로 반복해도 전혀 문제가 없음에도 같은 단어를 계속해서 대체하더군요. "이 의로운 도둑은", "낡아빠진 의복을 입은 소년은" 식으로 말이죠. 반복되는 지겨움을 방지할 뿐만 아니라, 자연스레 등장인물들에 관하여, 혹은 설정에 관해서 조금씩 조금씩 알려주게 됩니다. 한번에 누구누구는 이랬다- 라는 서술식으로 작가가 답을 제공하는게 아니라, 조금씩 조금씩 힌트를 줘서 독자 스스로가 답을 구축하게 만든다고 할까요?
읽는 내내 확실한건 참 글을 재밌게 썼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문피아 연재작이나 출판작중에도 이와 비교될, 재밌는작품들이 참 많습니다. 장르문학의 사정이 많이 나아져서, 무협-옛 중국인들의 무공싸움, 판타지-써클 마법사와 기사들의 테두리에서 벗어난 재밌는 작품들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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