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말하겠지만, 제가 오늘 이야기 할 내용은
이사무의 Soft한 해군사( http://grim1980.vsix.net/ )
에서 본 내용을 편집하여 들려드리는 것을 선행해서 밝힙니다.
물에 술 탄 듯... 술에 물 탄 듯...이란 말이 있습니다.
어중간 해서 못마땅하다는 표현인데, 그 기원은 해양의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처음으로 물에 술 타먹은 인간들은 고대 그리스인들이었습니다.
나일의 축복을 받은 이집트 인들이 맥주로 파티를 벌이고 있을 때, 땅그지스런 반도에 살던 고대 그리스인들은 올리브 농사나 포도농사, 지중해의 어업으로 잡아들인 물괴기를 바탕으로 해양 무역에 종사하고 있었습니다.(본토에서 못 살긋다, 나가보자!...라며 만들어 진게 소아시아와 이탈리아 일대에 구축된 '마그나 그라시아'지요.)
하여튼 핏속에 바닷물이 흐른다는 고대 그리스인들은 포도주를 물타먹는 풍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첫번째 이유로 포도주가 아까워서였고, 두번째 이유로 수질이 대략 좋지 않음이었고, 세번째 이유로 항해시 그냥 물은 쉽게 상해서 그냥 먹기 쀍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들로 고대 그리스인들은 포도주를 농축 100% 쳐먹는 인간을 더러 '이런 야만인시키!'라고 박대했으며, 반대로 너무 물을 많이 타서 먹는 인간을 더러 '이런 쪼잔한시키!'라고 했습니다.
아무튼 저것부터 시작해서 유럽에서 술은 생수보다 수분섭취를 위해 많이 애용된 식품이었습니다.(지금도 독일은 생수보다 맥주가 더 싸다고 합니다. 축구경기장에서 맥주 쳐먹다 깽판 부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군요.)
물론 현재 입장에선 '끓여서 먹으면 되지 않냐'라고 하는데, 일일이 끓이는데 참으로 번거롭기도 하거니와, 차문화가 발전하지 못한 상황에서 물을 끓여먹으면 위생상 뭐가 좋은 지도 모르는 시절이었습니다.(이런 점에서 볼때 우리나라는 참 좋았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로마를 거치며 중세에 사람들이 많이 애용한 것은 프랑스등 남부지역은 와인, 독일과 영국은 맥주로 대동단결이었습니다. 참고로 이 시절 흑맥주는 현재와 비교할 수 없는 '독한'놈으로 도수는 그 악명높은 안동소주와 동일할 수준이었다 전해집니다.
문제는 이 독한 늠을 유럽에선 애들도 홀짝홀짝 잘 마셨다는 거죠. 이유는 앞서 밝힌 것과 같습니다. 대략 수질이 나빠서...(그니까 판타지에서 펍에서 술 쳐마시는 용병아저씨들은 대략 불량해서도 쥔공 여친에게 껄떡거리기 위해서도 아니라는 겝니다.)
특히 한국과 일본쪽 판타지에서 드러나는 어처구니 없는 광경은 술먹을 때 안주를 달라 주인에게 징징대는데, 실제 서양에는 안주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술 마실 땐 그냥 술이나 마시죠.
물론 식사할 때도 술을 곁들이는 경우는 있지만, 이것은 단순히 술을 즐기기 위해서가 아닌 '수분 공급'을 위한 이유가 높았습니다. 그리고 맥주같은 종류들은 칼로리도 제법 쎄서 빵을 대체할 이유도 있었다고 하는군요.(대략 우리네 시골 농사지을때 막걸리 먹고 밭가는 거랑 같은 겝니다.)
암튼 간에 이 맥주와 와인은 바다에서 물 대신 음료로서 많이 애용되었습니다. 생각외로 물이 잘 상하니 보관이 오래가는 술을 이용하여 희석해서 마시거나 해서 버티는 것이죠.(썩은 물에 김빠진 맥주를 섞어 마신다라... 곤욕이겠습니다요.)
아무튼 연안항해에서 맥주와 와인이 괜찮았지만, 대양항해를 시작하면 이 것도 맛탱이가 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좀 더! 좀 더! 오래가고 도수가 높은 술을 원하게 되었죠.
그렇게해서 17세기에 등장하여 퍼진 녀석이 '럼'입니다.
이놈은 사탕수수에서 나온 당밀을 발효시켜 만든 술인데, 원래는 노예들을 위한 싸구려 술이었습니다. 근데 악마와 같을 정도로 도수가 높고 독한지라, 대양항해를 주로하는 영국해군에서 주목하게 되었지요. 사실 주목은 했는데 주저하고 있다가 럼 양조장 주인들의 로비에 떨꺽 넘어가서 도입하게 됩니다.
50도나 되는 럼을 물 대신 처먹었으니 이 시절 배는 대략 음주항해를 피할 수 없었고, 술 때문에 자주 소란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이놈을 없앨 수는 없었으니 영국해군에서도 환장하실 노릇이었죠. 수분섭취 뿐만 아니라 고된 항해를 잊게 해줄 마약과 같은 것이 이 술이었던 겁니다.
그러다가 '이 쀍한 상황을 내비둘 수 없다!'는 용감한 분이 계셨으니 '에드워드 버논'이라는 아저씨였습니다.
이 제독님아는 럼을 그냥 선원들에게 주지 말고 물에 탄 다음 설탕과 레몬소다를 섞어서 먹이도록 했습니다. 물론 독한 럼을 싸랑하시는 선원들은 '이런 XX할 그러그 시키!'라며 욕을 했지요.
아, 왜 그러그냐구요? 이 버논 제독이 방수포의 일종인 Grogram를 착용하고 있어서 별명이 되버려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가 시킨 럼에 물타기도 그로그, 럼에 물타는 통도 그로그통이 된거죠.(복싱에서 그로기 상태가 되었다...라는 말은 그로그를 먹고 취해서 비틀거린다...에서 근원한 것이라는 군요.)
아무튼 17세기 이후로 20세기까지 영국해군에선 물에 술타기가 쭈욱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갈수록 물은 더 많이 섞였고 선원들의 알콜농도 선호도도 낮아지게 됩니다.
20세기가 되면 '이거 당최 왜 주심?'이 되버리게 됩니다. 주니까 고맙긴 한데 옛날 만큼 절실하지 않은 거죠. 17세기때 깡술 머시고 버틴 조상님들과 다르게 20세기 수병들은 1:5로 섞은 옅은 그로그에도 비틀거리는 일들이 많아졌습니다.
더구나 '군대서 술을 배급하는게 말이되심?'이라는 원칙주의자들의 목소리가 나날히 높아가고, 기술이 좋아져 술에 물 안타도 양질의 음료를 공급할 수 있게 되면서 그로그의 배급 문제가 도마에 오르게 됩니다.
이미 다른 나라에서는 대부분 사라져 버렸지만, 20세기 중반이 되서도 영연방 해군에서는 그로그보급을 계속했지요. 그러나 결국 그로그 퇴출이 결정되었고 1970년을 마지막으로 역사적인 물에 술탄 그로그 배급은 영원히 사라지게 되었습니다(...라고 했는데 뉴질랜드 해군놈들은 1990년대까지 보급했다는 군요. 독한늠들.)
아무튼 물에 술 탔다... 술에 물 탔다...라는 상황은 꽤나 기원이 올라가는 일이고, 또 그 의미도 나름 씹어볼 만한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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