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제목은 훼이크였습니다.
내용을 감안하여 굳이 제목을 다시 달자면, ‘글 쓸 때 마시면 좋은 최고의 맥주를 찾아서’정도가 좋을 것 같군요.
글을 쓸 때 저는 언제나 마실 거리를 준비해 둡니다. 대개는 보온 컵에 냉수를 따르고 녹차 티백 한두 개를 동동 띄우지만, 가장 좋은 건 누가 뭐래도 차가운 맥주입니다. 하이트를 즐겨 마셨죠. 하이트를 좋아해서라기보다는, 가족들이 모두 하이트만 마셨기 때문에 집에 맥주라고는 하이트 밖에 없었던 탓이 큽니다만.
한 가지 맥주만 줄창 마셔대다 보니, 어쩐지 인생이 따분한 느낌이더군요.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을 포기해버리는 듯한 기분이랄까요. 그래서 지난 9월에 한주 정도를 투자하여 집 근처 편의점에 있는 맥주를 종류별로 마셔 봤습니다. 전에 마신 맥주도 있고, 마셔보지 못한 맥주도 있습니다만, 그냥 ‘무조건, 종류 되는대로, 있는 대로’ 마셨습니다.
아래는 그 결과물, 제 나름대로 적어본 총 7종 맥주의 시음기입니다. ‘시음기’라고 해 봐야 제가 시음을 전문적으로 배운 적도 없고 해서 다분히 주관적인데다가 특정기업․특정상표를 노골적으로 옹호하는 감상평이 될지 모르지만, 그래도 몇 자 두드려 보겠습니다.
1일차: 하이네켄
하이네켄 맥주를 생산하는 ‘하이네켄 브루어리젠 비브이’는 과거 식민지시대에 인도네시아에 진출하여 세계 최초의 다국적 맥주회사가 된, 현재 세계 3위의 맥주회사라고 합니다. 도수는 5%이고, 병에는 이런 문구가 인쇄된 라벨이 붙어 있습니다.
[에메랄드빛 열정. 130년의 열정이 깃든 프리미엄 비어, 하이네켄. 네덜란드 시음 마스터들의 완벽주의 정신은 하이네켄의 최상급 품질을 더욱 빛나게 합니다.]
…뭐, 특정상품 홍보 비슷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군요.
어쨌거나 녹색의 병이 예쁜 맥주입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마시고 싶다’는 느낌이 팍팍 듭니다.
맛은, 쓴맛이 조금 강한 것 같습니다만, 기분이 나쁠 정도는 아닙니다. 목으로 넘어갈 때의 느낌은 쾌청하게까지 느껴집니다. 즐기면서 마실 수 있는 맥주.
…그렇지만 ‘최고’라고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말할 수 없겠군요. 제가 쓴맛을 원체 싫어하는지라, 술을 마실 때도 쓴 맛이 나는 놈은 될 수 있으면 피하려는 편입니다. 솔직히 시음기 쓸 생각이 아니었으면 다시 마실 생각은 안 했을 겁니다.
2일차: MGD
Miller Genuine Draft, 일명 밀러 맥주입니다. 제조사는 밀러 브루잉. 독특한 생산 공정을 거쳐 생산되는 깨끗한 맥주라, 다른 맥주들과는 달리 무색투명한 병에 담겨 나온다고 합니다. 깨끗한 맛 때문에 미국 젊은이들한테 가장 인기 있는 맥주라던가요. 그래서인지 병 생김새도 굉장히 미국적인 느낌을 물씬 풍깁니다.
…제품 설명은 이쯤 하고, ‘아메리칸 테이스트’라는 것을 느껴보자는 기분으로 병뚜껑을 열었습니다. 굉장히 맛있습니다. 꿀꺽꿀꺽, 정말 무섭도록 잘 넘어갑니다. 시원합니다. 근심걱정이 깨끗하게 날아가는 맛이라고 할까요. 두 병을 사와서 한 병은 그냥 마셔버리고 나머지 한 병은 감자칩(포XX칩)과 함께 먹었습니다. 기분 좋은 밤이었습니다.
3일차: 버드와이저
밀러와 함께 국내에 알려진 대표적인 미국 맥주가 아닐까요. 국내 판매는 OB맥주주식회사에서 담당하는데, 미국 본토에서 판매되는 상품과 국내 판매용 상품의 맛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미 본토의 맛’이 무엇인지 느껴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습니다만, 어쩌겠습니까. 그냥 마셔야지.
세 캔을 사왔습니다. 한 캔은 시원하게, 한 캔은 방구석에 한나절 쯤 방치해둔 뒤에 먹었습니다(나머지 한 캔은 밥 먹으면서 반주로). 온도에 따른 맥주 맛 비교라던가 하는 걸 시도해보려던 계획은 아니었습니다. 한 캔은 잠들기 전에 마셨고, 나머지 한 캔은 자고 일어나서 마신 정도의 차이였죠.
확실히 대중적으로 인기있을만한 맛(즉 제가 좋아하는 맛)이었습니다. 다만 밀러에 비해서는 깔끔한 맛이 약간 떨어지는 듯. 밀러가 감자칩 같은 스낵 류 안주와 어울린다면, 버드와이저는 반주 삼아 마시니 좋더군요.
4일차: 코로나
원산지는 멕시코. 와, 대단하기도 하지. 자그마치 지구 반대편에서 건너온 놈이군요. 인터넷에서 코로나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니, 라임을 곁들여 먹으면 좋은 선인장 향이 나는 맥주로 멕시코에서 가장 인기가 좋다고 합니다. 저야 뭐 라임은커녕 라임 류 과일도 집에 없어서 그냥 마실 수밖에 없었지만 말입니다.
맥주 맛은 그다지 특별할 게 없었지만, 독특한 향 같은 게 나더군요. ‘이게 멕시코의 향취인가….’ 하면서 중남미를 여행하는 기분으로 마셨습니다, 솔직히 이국적인 이미지만 빼면 그저 그런 맥주였습니다. 게다가 값은 밀러보다 천원이 더 비싸니, 이거 한 병 마실 바에는 천원 보태서 밀러 두 병 마시는 편이 낫겠습니다.
5일차: 스타우트
하이트맥주주식회사에서 생산하는 국내 유일의 흑맥주입니다. 주류 전문 인터넷 블로그에서 찾아보니 ‘쓴맛을 줄이고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개량한’ 흑맥주라고 하던 녀석인지라, 호기심을 가지고 마셔보았습니다.
…썼습니다. 맛이 썼어요. 흑맥주 특유의 풍미 같은 걸 느껴보고는 싶은데, 쓴맛에 약한 저로서는 마시기가 고역이더군요. 자그마치 두 캔이나 사왔는데. 억지로 한 캔 마시고, 남은 한 캔은 마시고 싶은 기분이 안 나 방구석에 처박았습니다. 그리고 반나절 뒤, ‘어떻게든 이놈을 처리해야 한다’는 투철한 사명감에 불타올라, 실온에 방치되어 미지근해진 나머지 한 캔을 뜯었습니다. 그리고 마셨습니다. 그런데 웬걸, 차게 먹었을 때보다 월등히 맛있군요. 쓴 맛도 덜하고, ‘깊은 맛’이라고 할 만한 것이 느껴집니다. 딱 별미로 마실만한 맥주.
6일차: 카스 레드
도수를 6.9도로 높인 시뻘건 맥주(…). 카스맥주를 마실 때처럼, 아주 시원하게 들이켰습니다. 맛은 평범한 듯한데, 도수가 높아져서인지 성분에 차이가 나서인지 양조법이 달라져서인지 간에 이유는 모르겠지만, 마시고 나서 갈증이 도집니다(혹 제 체질이 이상해서 그런걸지도). 그것만 빼면 마실 만한 맥주입니다만, 저는 맥주를 취하려고 마시는 게 아니라 음료수 삼아 마시는 거니, 나중에 취할 일이 있으면 찾겠다고 다짐하며 패스.
7일차: 카프리
제조사는 OB맥주주식회사. Cafri라고 영문으로 써져있어서 외산 맥주인 줄 알았습니다. 병 라벨에 보면 이런 문구가 인쇄되어 있습니다.
[언제나 부드럽고 상쾌한 맛. 엄선된 유러피안 아로마 호프와 최고급 헤링톤 맥아가 카프리만의 부드럽고 깨끗한 맛을 만들어 냅니다.]
…이것도 졸지에 광고 문구 비슷해져버렸습니다만, 시음 평은 그 문구 그대로입니다.
맛있습니다. 약간 밋밋한 느낌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맛있습니다. 두 병을 샀는데, 한 병은 어떻게 넘어가는지도 모르고 한숨에 다 마셔버렸습니다. 이래선 안 되는데, 싶은 생각 비슷한 것도 안 듭니다. 다음번에도 꼭 마셔봐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맥주.
…자자, 이렇게 맥주를 벗 삼아 계획한 한 주를 보냈습니다. 저의 초보 시음기는 이걸로 끝입니다만, 세상에 맥주가 남아 있는 이상 앞으로도 시음기는 멈추지 않습니다.
연재한담란의 여러분도 시원하게 맥주 한 잔(한 캔도 좋고, 한 병도 좋습니다) 쭉 들이키시고, 즐거운 주말 저녁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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