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고향의 장 날은 4일과 9 일 입니다.
마땅히 살것도 없지만 장날이 되면 마음이 설레고 바쁩니다.
아끼는 청바지를 꺼내 입고 작년에 큰 맘먹고 구입한 유명 패션 야구모자도 쓰고 성조기(이 나라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선물 받은 것이어서 하는 수 없이 입습니다)박힌 티 걸치고 경운기에 시동을 걸었습니다.
요즘은 시골에도 차 없는 집이 없습니다. 심지어는 레저용(승용차)과 농사용(트럭) 두대가 있는 곳이 많습니다.
아는 후배는 축산업을 하는데 밴츠 스포츠카를 타고 다닙니다.
내가 경운기 끌고 가면 묘하게도 이녀석 스포츠카가 지나갑니다.
장터 한곳에 경운기를 세워두고 여기 기웃 저기 기웃 하는데 ‘어이‘ 돌아보니 옆동네 고영감님입니다. 올해 춘추가 여든 하나인데 아직 열시도 되지 않았는데 코가 빨갛데요.
“어르신 안녕하세요!”
“잘 만났네. 따라와.”
“어딜 가게요.”
“오라면 와!”
곧장 막걸리 집으로 데려가더니 술을 주문합니다.
“또 오셨어요!”
조금전까지 마셨던 집인 모양입니다.
하는 수없이 저도 대접 가득 막걸리를 담아 마셨고 한시간도 못되어 무려 세병을 마셨습니다. 서울 막걸리 보다 두 배는 큽니다.
내가 내겠다는데도 기어이 허리춤 들축이더니 술값을 지불하고 ‘이장 출마 한다면서?’ 뜬끔 없는 질문을 하기에 서둘러 여론을 잠재웠죠. 자칫 헛소문 나가면 기존 이장 화낼수 있잖아요. 저보다 무려 열 다섯이나 많은 형님인데 올해 팔년째 장기집권하고 있죠.
아는 동생 만나 한잔, 아줌마 만나 한잔, 시계를 보니 한시지 뭡니까?
그만 가야겠다고 경운기 시동을 걸었는데 글쎄 전봇대가 두개로 보이더군요.
조심스럽게 시동을 걸었습니다.
시동을 조심스럽게 걸었다고 경운기 엔진소리가 어디 작아집니까? 술 귀에 들리는 엔진소리가 어찌나 큰지 애먼 바퀴를 발로 두어번 걷어차고 조심조심 차도로 나갔습니다.
두 눈에 힘을 주고 세상의 모든 물체가 날 향해 돌진해오는 악조건 속에 2단을 놓고 갔죠.
겨우 동네 입구에 도착하여 안도의 한숨을 내 쉬는 순간 꽝 하는 소리와 함께 나동그라졌습니다.
논두렁에 쳐박혔습니다.
다행히 차도가 아니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그대로 놔두고 들어갔습니다. 다음 날 동네 경운기 한대 빌려 끌어 내면 되죠.
그런데.‘썩을 놈 얼마나 술을 쳐먹었기에 경운기가 남의 논에 쳐박혀 있다냐? 니 애비 술 먹은 것도 몸서리 나는데!’
잠결에 어머니의 잔소리가 들리더군요.
“형님 술먹고 경운기 운전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줄 아십니까. 안전띠가 없기 때문에 사고 났다하면 황천입니다.”
밴츠스포츠카 문이 열리고 개자식이 웃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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