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연재한담의 글을 읽으면 한 가지 의문이 생겨요. ‘좋은 글’을 말하면서 지나치게 소설의 외향적인 면만을 거론하시더라고요.
맞춤법과 문장의 배열 등 소설의 외향적 면을 끌어올리면 좋은 글이 나온다? 그리고 그에 관해 토론하는 글들이 간혹 보였어요. 물론 옳은 말이에요. 소설은 그림과 같다고 생각해요. 잘 다듬어진 그림이 보기 좋듯, 잘 쓰인 ‘모양’의 소설이 좋은 소설로 보이는 것은 옳은 말이지요. 하지만 이것은, 외향적인 면보다 소설에 좀 더 ‘주’가 되어야 할 부분을 잊게 하는 사고가 아닐까 싶네요.
보통 장르문학은 순수문학(굳이 왜 장르와 순수로 문학을 나누는지도 솔직히 이해가 안 돼요)보다 급이 떨어진다고들 하죠. 그러한 이유가 바로 문체 등의 조잡함에서 나온다고들 생각들 하시나 봐요. 하나, 저는 그보다 내향적인 면의 부족이 더 큰 원인이라고 생각해요.
솔직히 장르문학이라 불리는 문학은 순수문학보다는 고정독자층이 확실히 정해져 있죠. 10~20대, 좀 더 나아가면 30대 초반쯤이 그 고정에 속하는 독자층이 아닐까 짐작해요. 이러한 독자층은 ‘3초 세대’에 속하죠.
3초 세대는 조급한 세대라고 배웠어요. 예를 들자면 인터넷에 게시된 글을 읽을 때 대각선으로 읽어내려가듯 빠르게 읽어내려가는 세대를 가리키는 말이죠.(솔직히 이 말은 교수님이 강의하면서 늘 하신 말씀이긴 한데, 널리 통용되는 표현인지 확실치는 않네요) 그리고 장르문학은 이러한 세대에 특화된 문체 등으로- 즉 가독성을 크게 부각한 문학이라고 생각해요.
분명 소설이니, 소설의 기본적인 문체 배열 등은 따라야 하는 건 옳아요. 하지만 그 외향적인 면 전체를 순수문학화 시킬 필요는 없다고 봐요. 외향적인 면은 딱 ‘소설의 기본’만 지켜내고 장르문학 고유의 특성은 굳이 버리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물론 외향적인 면에 대해 더욱더 깊이 있게 파고들고, 글을 쓰면 좋기야 하죠.(저도 이쪽이 좀 더 수월하게 읽히고, 좋게 받아들여지기는 해요) 하지만 그 때문에 좀 더 주가 되어야 할 내향적인 면을 신경 쓰지 않는다면 그것은 질을 높이는데 악영향만 주는 행위라고 생각해요. 더군다나 소설의 기본공부에서도 이 외향보다는 내향적인 부분- 주제의식, 즉 철학을 우위에 두고 있어요.
잘된 소설은 작가 자신의 철학을 얼마나 깊이 있게, 그것을 독자에게 얼마나 잘 전달하느냐가 가르는 거로 생각해요. 외향적인 면이 주는 화려함이 결정하는 것이 아닌 거죠. 순수문학이 장르문학보다 뛰어난 문학이라 보이는 것은, 상대적으로 그 철학을 잘 살린 작품이 많기 때문이라고 봐요. 하지만 장르문학- 이곳 문피아에서 연재되는 글들을 읽고 있노라면 그렇게 중요한 철학을 깊이 있게 사고한 글들의 수가 너무 적은 거 같아 아쉬워요.
물론 철학이 아주 없지는 않죠.
제가 많은 장르문학을 접해보진 못했지만(사실 완결까지 접한 작품은 정말 적어요) 게임판타지를 보면 그 큰 틀은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이, 마왕 등 세계적인 악의에 대적하는 작품은 니체의 힘에의 의지와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등이 큰 틀을 차지하지요. 합리적으로 생각하며 윤리 등조차 초월하는 악당형 주인공이 활약하는 소설은 데카르트의 방법서설- 아니 좀 더 크게 나가보면 장르문학이라는 것 자체가 들뢰즈나, 플라톤, 비트겐슈타인의 후반기 그림이론과 밀접한 관련이 있지요.
이처럼 작가 자신이 굳이 철학적 고찰을 하며 쓴 글이 아니더라도- 조금만 거창하게 생각해도 갖가지 철학들이 떠오르는 이유는 철학이란 학문 그 자체가 그렇게 어려운 학문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누구나 생각하는 거, 그게 철학이니까요. 다만 그 누구나 생각하는 것을 세련되게, 그리고 질서 있게 다듬어 놓은 것이 철학서이고, 그것을 해낸 사람이 철학자일 뿐이죠.
작가와 철학자는 같은 선상에 있다고 봐요.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써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질서 있게 다듬어 독자에게 보여야 하는 것이 작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작가는 결코 무의식적으로(이걸 해내는 사람들이 간혹 있긴 하지만) 철학을 담아내면 안 된다고 봐요. 흡사 철학자처럼 확고한 자기의 의지로, 자신의 소설 속에 철학을 담아내야지요.(다만 다른 것이라면, 굳이 자기 자신만의 철학이 아닌, ‘남의 철학’이더라도 많은 공부 속에 자신의 것인 냥 펼쳐낼 수 있는 범용성을 작가는 가지고 있죠)
하지만 이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죠. 사실 문체, 문장의 배열 등을 일정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보다 더욱 힘든 일이라고 봐요. 그런데 그런 힘든 일을 배제하고 오로지 외향에 집중된 글쓰기를(혹은 연습) 계속한다면 작가로서의 발전은 있을 수 없지 않을까 싶네요? 소설을 쓰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한 번쯤 이 같은 생각을 해봐야 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 제 개인적인 생각이에요.
장르문학은 철학을 담아내기에 순수문학보다 더 자유롭고 쉬운 문학이라고 생각해요. 이는 흡사 비슷해 보이나 다른 희극과 시나리오의 가장 큰 차이와도 맥을 함께 하는 경우죠. 희극과 시나리오의 가장 큰 차이는, 배경으로 삼는 시공간의 크기가 다르다는 것이죠. 장르문학과 순수문학도 마찬가지예요. 세계관이라는 말을 자주 하시던데, 장르문학은 순수문학보다 더욱 넓은 세계관을 표현하고 이를 활용할 수 있죠. 이 활용을 자기 철학을 담아내는 용도로 쓴다면 순수문학보다 더욱더 눈부신 철학(=주제의식)을 담아낼 수 있는 문학이, 바로 장르문학이라고 생각해요.(이러한 활용은 시와 비견된다고 생각해요. 시는 자신의 철학을 담아내며, 그것이 문법적으로 어긋나는 표현이더라도 ‘시적 허용’이라는 말로 넘길 수 있죠. 하지만 왜 장르문학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지 이해가 안되네요)
그저, 너무 외향적인 면만 눈여겨보지 마시고, 내향적인 면도 함께 보면(공부하면) 더 좋은 글이 되지 않을까요? 라는 간단한 말이 너무 길게 늘어졌네요.
(제가 조리 있게 말을 못해서 항상 이래요. 일하다가 갑자기 떠오른 거 급하게 쓰느라 더욱 그렇네요)
장르문학이라는 것이 구태여 순수문학과 나뉘고(같은 소설인데) 유치하고 질 낮은 소설 취급받는 것이 안타까운 마음에 이렇게 글 남깁니다.
ps. 철학을 거론했지만, 사실 저도 철학은 잘 몰라요.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을 뿐이고, 부전공으로 철학을 공부했을 뿐이라. 그냥 헛소리를 길게 늘어놓은 경우가 된듯하네요. 제 말이 불쾌하게 받아들여지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혹여나 그런 분이 계신다면, 죄송합니다.(__)
Comment '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