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이그니시스
작품명 : 리셋 라이프Reset Life
출판사 : 뿔미디어
SF소설에 간혹 등장하는 평행다차원의 이야기가 나온다. 처음 시작만 해도 그냥 그저그런 회귀물인줄 알았는데, 앞서 나왔던 수많은 복선들이 모이고 모여 9권에서 뻥 터지는 게 참... 뭐랄까, 내 취향이었다.
개인적으로 9권의 반전은 내가 좋아하는 종류의 것인데다가 예상 외였던지라 신선했다. 반전 나오기 10페이지쯤 전에 예상이 가긴 했는데, 막상 나오니 뒤통수를 뭐로 한대 맞은 느낌이랄까....
레비디안과의 사랑 이야기도 풋풋한게 즐거웠고, 친구들과의 말장난도 즐거웠다. 아쉬운 점을 꼽자면, 제이나 올드맨이 후반에 가서 비중이 확 낮아진것과... 형님이다. 아니, 이렇게 태도가 확 바뀔 수 있는거야 형님?! 오만하지만 능력있던 형님이 아버지가 리셀을 인정하자, 180도 돌변해 살가운 형님이 되어주신다. 나중에 황제 자리도 가타부타 말없이 넘겨주고... 제일 마음에 안 들었던 점으로 꼽을 수 있겠다.
여러가지로 생각할 바를 많이 주기도 했는데, 진지해야 될 데서도 말장난이 퍽퍽 튀어나와 솔직히 좀 당혹스러웠다. 아무리 위트나 유머가 필요했다지만, 적당한 완급조절은 필요하다고 본다. 아니면 좀 제대로 된 언어유희를 즐겨주시던가(...) 보고 있자면 어린 학생들이나 보고 즐거워할 씬(scene)들이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루시가 주접을 떤다.
주변인물중 하나가 태클을 건다.
루시가 상처받았다며 호들갑을 떤다.
레비디안이 검을 뽑는다.
금새 소란스러워지고 리셀은 그저 허허 웃는다
.. 뭐 이런 식-_-;
그 외에도 여러부분에서 작가의 필력 부족이 눈에 띄었는데, 그리 거슬릴 정도는 아니다.
간결하고 패기 넘치는 전투씬이라던가, 괜찮은 반전과 여운깊은 에필로그 등이 괜찮았다. 주인공이 약간 어설프지만 체스 플레이어라는 점도 좋았고. 리셀의 라이프 크라이Life Cry가 잘 와닿아서 즐거웠다. 9권의 반전 외에도 「Arts Haver, Reset Life」의 반전도 좋았다. 그래 이런 언어유희를 바랐어, 난. 아쉬운 점이 많았지만 그만큼 장점도 많은 소설이다. 내가 돈만 많았다면 소장목록에 들어갔을텐데...크흑.
<리셋 라이프>는 완성된 소설이다. 작가의 평행다차원에 대한 지식도 깊었고 마법이나 근원에 대한 바도 적당히 서술되어 있다. 달리 말하자면, 작가의 배경지식이 부족하지 않았으며 글의 내적 완성도가 높았다. 몰입도 또한 뛰어났다. 앞서 말한 '깨는 위트'를 제외하면 리셀(그리고 작가)의 목소리가 잘 와닿았다. 호소력이 높았다 해도 틀리지 않겠다. '과거회귀물'은 <리셋 라이프>가 출판된 시절에만 해도 굉장히 드물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므로 독창성 또한 높으며, 작가의 필력이 절대 부족한 편이 아니므로 기본기 또한 뛰어나다.
판타지가 8권을 넘어가면 흔히 말하는 '용두사미'가 되기 쉽다. 그러나 <리셋 라이프>는 그런 게 없이, 작가가 처음부터 말하고자 했던 바를 끈기 있게 잘 풀어냈다. 그런 점을 볼 때 이 작품은 점수를 높게 받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작가 '이그니시스'가 새로이 쓰는 소설은 <더 레드>로, 설정이 마음에 안 들어서 보류하고 있다. 평을 살짝 보니 위트 넘치는 문체는 그대로라던데, <리셋 라이프>의 장점을 버리고 유치한 말장난만을 가져간 소설이 아닐까 심히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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