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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추천에 관련된 감상을 쓰는 곳입니다.



작성자
Lv.16 Zinn
작성
06.11.21 12:29
조회
1,963

작가명 : 카이첼 님

작품명 : 클라우스 학원 이야기

출판사 : 자음과 모음(+문피아 연재)

올해 2월 즈음 해서 이 곳을 알게 되었고, 연재한담에서 어떤 분이 올리셨던 추천글 덕택에 카이첼 님의 클라우스 학원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가볍게 볼 수 있는 학원물을 바랐었기에 학원물의 분류로 추천된 클라우스 역시도 읽기 전에는 막연하게 단순한 학원물이 아닌가하고 선입견을 가졌던 적도 있습니다. 물론 지금 와서 보면 전혀 아니지만 말이죠.

여하튼, 처음 클라우스 학원 이야기를 읽을 때에는 심경도 약간 복잡했었고, 머리를 싸매고 무언가에 집중하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았기에 대충대충 넘겨가며 보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렇게 끝까지 보고 말았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 카이첼 님의 새로운 글들을 접하고 제 나름대로의 심경의 정리도 끝나자 갑자기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분명 단순한 글의 외연적 흐름만 따라가기에는 클라우스 학원 이야기라는 글은 너무 아까웠으니까요. 제가 이끌어내지 못한 글의 의식이 너무나도 많다고 느끼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두번째 본 수능을 마친 뒤 며칠 후에 다시 클라우스 학원 이야기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이 글을 접한 것 이상으로 흥분하고 감동받으며 오늘까지 3 일만에 어찌 되었든 두번째의 읽기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간신히 한 줄기의 의식을 제 나름대로는 잡아낸 것 같습니다.

네, 그건 바로 인간의 실존이 아닐까 합니다.

실존. 키에르케고르나 사르트르, 하이데거를 떠올릴 필요도 없습니다. 단지 인간이 자신의 오롯한 두 다리로 땅을 디디고 걸어가며, 고개를 들어 스스로의 지평 너머를 바라보고, 찬연하도록 아름다운 물자체 세계 속에서 '자신'임을 잃지 않는다는 말로도 충분할 테니까요.

현실의 서구 역사에 비견해 본다면 클라우스의 세계는 아마도 시민 혁명 이후 산업 혁명이 일어나고, 그와 함께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의 양분화가 일어나던 시기와 유사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회 계약설과, 계몽주의, 자연법 사상을 기반으로 한 시민 혁명 이후 제임스 와트의 증기 기관을 시원으로 급속한 생산력의 확충을 이루어낸 산업 혁명은 인류에게 보다 많은 물질적 풍요를 약속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본의 유무를 기준으로 계급을 나누어 그 고착을 심화시켰으며,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한낱 생산 요소로 국한시켰으며, 더 나아가 헤게모니를 소유한 부르주아지 층의 주장을 옹호할 - 지금의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과학은 인류의 이상향을 건설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  허망한 환영을 서구 세계 전반에 만연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결국 첫번째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야 지식인들은 과학과 기술에 의해 대량으로 학살된 무구한 사람들의 비극을 발견합니다. 그들의 보금자리는 폭격에 무너졌으며, 부모를 잃은 고아는 배고픔에 거리에서 울부짖었으며, 자식과 형제자매, 친우를 잃은 사람들 역시 비통함에 울부짖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성이, 인간의 실존함이 근대적인 합리주의와 과학주의에 의해 거세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논제는 알렉과 부르크하르트의 대화에서 발견됩니다. 신은 이미 존재하지 않습니다. 스스로가 죽인 신의 유해 위에서 유동하는 불안정한 토지. 인류는 그런 기반 위에서 언젠가 혼돈을 맞이할 것입니다. 오늘의 선은 내일의 악이 되고, 오늘의 악이 내일의 선이 되어버리는 혼돈의 향연 속에서 인류는 더 이상 중세 시절에서 그리하였던것처럼 신에게 스스로를 투신할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인류는 스스로의 내면의 심연과 마주하여야 합니다. 진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스스로의 실존함을 깨우쳐야 합니다.

여기서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인 고학생 데일의 이야기가 엮어집니다. 데일은 장학금을 받아야만 학원 생활을 유지해나갈 수 있는 빈곤층입니다. 실로 알렉의 컨닝 사건 때문에 장학금을 획득하지 못해 일 년 가깝게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마련하기도 하구요.

그런 데일에게는 아마 실존이나 자유란 것은 알렉이 말했듯이 배부른 자들의 불평일 뿐이었을 겁니다. 삶의 제 조건, 특히 목숨을 연명해나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식량의 안정적 확보가 전제되지 않은 개인의 삶은 지금 저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훨씬 비참할테니까요. 과거의 데일을 비롯한 빈곤층은 계급의 부조리함에 분노하면서도 비굴하게나마 스스로의 삶을 유지할 수 밖에는 없었겠지요.

하지만 데일에게 있어서 하늘은 아름다웠습니다. 자신의 비참한 처지와 대조되도록 잔인하게도 하늘은 언제나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그랬기 때문에 데일은 아직도 희망이 존재함을 깨달았습니다. 정의가 힘이라는 올곧은 생각을 이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비참하든 그렇지 않든 하늘이, 자신을 둘러싼 물자체 세계가 아름다울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그 희망을 향해 자신의 두 다리로, 자신의 올곧은 의지로 굳게 걸어갈 수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데일이 주인공인 것 아닐까요? 선이 보답받지 못하고 악이 처벌되지 못하는 이 부조리한 세상에, 모든 가치가 역전되고 무너지는 듯한 현실 속에서 절망하여서 자신의 심연을 오롯이 바라보지 못한 부르크하르트를 마지막에야 수긍시킨 데일이야말로 진정한 실존자가 아니었을까요? 계급과 배고픔과 굴종에 슬퍼했지만 결국에는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았던 데일이 바로 카이첼 님이 말하고자 하셨던 숭고미의 발현이 아닐까요?

물론, 제가 아직 많이 배우지 못해서 주어진 것들을 올바로 해석하기에는 많이 부족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처음 읽었을 때나 지금 다시 읽었을 때나 변하지 않았던 느낌 중 하나는 바로 데일이 아름다워보였다는 점입니다. 시지프와도 같이 존재와 가치의 무의미성 속에서 부조리에 내던져졌음에도 불구하고 이 비극적인 운명에도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그 부조리함에 비탄하고 저항합니다. 그래서 그 실존함 속에서 데일은 정말로 아름다워 보입니다.

결국, 제가 생각하기에 클라우스 학원 이야기는 데일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었나 합니다. 물론 알렉도 중요하지만 알렉이 변화한 원인이 데일이었다는 점을 상기해본다면 데일이 있었기에 이 이야기가 저에게 큰 의미를 가졌던 게 아닐까 합니다. 데일이 걸어가는 뒷모습이 장엄하도록 숭고해보였기 때문에 이 글을 읽으면서 제가 이렇게나 감명을 받았던 게 아닐까 합니다.

그럼,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족. 카이첼 님께는 비루한 감상문을 보여드리게 되어서 정말 죄송할 따름입니다. 틀린 곳이 있더라도 부디 제 식견의 낮음을 용서해 주세요.


Comment ' 7

  • 작성자
    Lv.5 KOREA진
    작성일
    06.11.21 16:52
    No. 1

    읽다가 중간에 포기한 작품인데 다시한번 도전해 봐야겠네요.ㅎ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4 카이첼
    작성일
    06.11.21 16:59
    No. 2

    후덜덜;; 좋은 감상 감사. 후덜덜;;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하이원
    작성일
    06.11.21 21:49
    No. 3

    학원물엔 관시밍 없엇으나 감상문을 보고 한번...^^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8 10억조회수
    작성일
    06.11.22 00:30
    No. 4

    우와 길다 -ㅅ-;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다시보기
    작성일
    06.11.25 11:28
    No. 5

    대단하군요.. 저랑 같은 나이인듯 싶은데 -ㅁ- 언젠가 클라우스에 대해 써봐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선수를 ㅋㅋ

    카이첼님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르문학 작가이구요..

    혹자는 잘난체 한다고 말하지만, 쓸데없는 잘난척과 필요에 의한 어려움은 구별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철학가들이 잘난척하려고 어려운 말 쓰는게 아니잖아요? 진짜 어려워서 어려울뿐.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1 서설
    작성일
    06.11.25 18:50
    No. 6

    전 여자는 무섭다는걸 알았.. -_-;;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0 隱遁者
    작성일
    07.02.02 01:49
    No. 7

    정말 재밌게 잘읽은 작품~!
    저에겐 정말 최고엿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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