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이라크에 퍼부어 대는 폭탄에서 치솟아 오르는 불기둥을 봅니다.
그 폭탄의 파편에 맞아 머리가 으깨진 아이를 보았습니다. 불이 붙어 땅에 뒹구는 병사들의 비명소리를 들었습니다. 부모를 찾는 아이의 순진무구한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보았습니다. 그것들에서 약한 자의 절망을 느꼈습니다.
그 약한 자의 절망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닙니다.
저는 한 때, 그들과 똑 같은 비극이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났었고 아직까지도 그 아물지 않은 상처는 곳곳에 남아 있음을 압니다.
그 때, 단발머리 여고생의 유방을 잘라버리던 그 대검을, 장발에 도끼 빗을 꽂고 다니던 청년의 머리를 으깼던 그 개머리판을 기억합니다.
무차별로 내려 찍혔던 그 곤봉과 군화 발을 기억합니다.
한 줄로 누워있던 그 많은 시체들을 기억합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제가 우리나라의 역사를 배우면서 최초로 의문을 가졌던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부터 그런 비극들은 우리 민족에게 유전처럼 전해진지도 모릅니다.
스스로 약해진 자의 구차한 논리가 오직 지배층의 기득권만을 위해서 왜곡되고 강요되었던 우리나라의 역사를 저는 이번 이라크 사태로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됩니다.
사람들은 묻습니다.
그 때, 그들이 그렇게 갇힌 채, 죽어 나갈 때. 무협은 과연 어디에 있었느냐고. 이 땅의 순문학들이 모두 들고일어나 그 일의 비극을 말할 때, 장르문학의 첨병이라는, 그래서 가장 많은 독자를 거느리고, 가장 많이 책을 찍어낸다는 무협은 과연 어디에 머리를 두고 있었느냐고.
오로지 말초적인 재미만을 위하여, 더불어 작가와 출판사의 이문만을 위하여 라면을 찍어내듯 공장무협을 생산하고 포로노 무협만을 양산했지 않았느냐고.
그것도 유치할 정도로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설정과 전개, 황당무계한 무공, 주인공과 조연의 이름을 바꾸고 여기저기 짜깁기를 해서 한 작가가 한 달에 기본 6권 이상 내는 방식이 아니었느냐고.
저는 그들의 물음을 인정합니다.
모든 무협이 다 그러한 것은 아니었다는 논리로 맞서기에는 그들의 물음이 매우 정확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저는 그렇지 않으셨던 분과 그 분의 한 작품을 떠올립니다.
그 비극으로 자신을 잃고 실의에 빠져 있던 우리나라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 쓰여진 역사 무협소설.
그 소설은 바로 [발해의 혼]입니다.
저에게 무협도 이렇게 강한 주제와 메시지를 전달할 수가 있구나, 하는 새 지평을 열어준 소설입니다.
이라크 사태가 우리를 슬프게 하고 북한의 핵문제가 우리의 목줄을 쥐고 있는 요즘입니다.
물론 그 뒤에는 자국의 이익만이 정의(正義)라는 강대국인 미국이 있습니다.
저는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은 무협의 일 순위로 이 [발해의 혼]을 기억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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