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대장정
작품명 : 반왕
출판사 : 영상노트
제가 대장정님의 반론글에 사과글을 올렸는데도 불구하고,그것이 충분하지 않다고 여기시는 듯 해서 다시 한번 사과의 말씀을 올립니다.
대장정님의 논제의 핵심은 "내 글이 표절 판정을 받은 것에 대해 심히 불쾌하다." 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의 논제의 핵심은 대장정님의 글이 표절이다 아니다가 아닌 작품의 독창성(Originality란 단어 또한 불쾌하다고 하시는 분이 있어서) 여부 였습니다. 전 대장정님의 글에 표절이다 아니다라고 판정할 수 있을 만한 자격도 위치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의혹을 제기할 수 있을 정도일 뿐이죠. 그것도 제 글을 읽어주시는 아주 소수의 사람들에게 말입니다.
논의의 핵심이었던 몇몇 문제등을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우선 문학에 있어서의 표절과 독창성에 관해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서양문학사에 있어 최고의 위치에 놓여있습니다. 돈키호테가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당시 유행했던 저급의 기사문학과 악당문학의 범람에 있었습니다. 당시 스페인이 소유하고 있던 식민지로 부터 대량의 은이 유입되면서, 스페인은 때 아닌 황금기를 맞이 하게 됩니다. 시민 혹은 국민들의 문화와 예술에 대한 욕구가 강해지고, 향락문화가 판을 치게 됩니다. 문학에도 그런 사회적 풍조가 만연해 있어서 소비를 위한 생산, 즉 대중의 감각적 쾌락만을 만족시켜주기 위한 저급의 기사문학과 악당문학이 문학 전체를 지배하게 되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아무런 창작에 대한 고민없이 마구잡이로 찍어내는, 그런 저급의 기사문학, 악당문학은 얼마되지 않아 곧 대중의 외면을 받게 되고, 문학 전체에 대한 관심조차 싸늘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라는 정신이 다소 이상한 기사를 등장시켜 기사문학과 악당문학의 전형을 파괴하면서, 당시의 시대상을 풍자하는 소설을 창작하게 됩니다. 그래서 돈키호테는 풍자문학에 속합니다. 일종의 패러디 문학이지요. 돈키호테라는 소설이 발매되자 대중은 기존의 소설이 갖고있던 전형성을 무참하게 파괴하는데서 오는 문학적 쾌락에 풍자소설이라는 장르자체에 흠뻑 빠지게 됩니다.
하지만 이 돈키호테라는 희대의 텍스트는 또다른 소설의 전형이 되어버리고 수많은 아류작을 낳게 됩니다. 이에 분개한 세르반테스는 다시 집필을 시작, 2부에서 돈키호테를 아예 죽여버리지요. 한마디로 아류작의 원천이 될 수 있는 근원 자체를 파괴해버리는 겁니다.
이른바 대여점 문학이라 일컬어지는 장르문학, 국한해서 말하자면 판타지와 무협소설이 되겠지요.(모든 소설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오해를 하실까 미리 말씀드립니다.)
작가의 편의에 의해 아무런 설명없이 마구잡이로 설정된 배경, 전혀 개연성이 없는 전개, 눈에 보이는 결말 등은 책을 구매하거나 혹은 빌려보거나에 상관없이 독자를 실망시킵니다. 단지 소비되기 위해 양산되는 소설은 결국 식상해 질 수 밖에 없고, 그것은 필연적으로 장르 전체의 질적 저하를 가져오게 됩니다. 그리고는 대중의 외면을 받게 되겠지요. 비록 그 틀을 깨는 몇몇의 우수한 작품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이미 그 소설은 대중의 관심 밖에 있게 됩니다.
제가 대장정님의 반왕을 굳이 문제 삼은 것은 그것이 문제를 삼을만큼 심각하게 저급한 소설이 아니라, 꽤나 잘 쓰여졌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아쉬운 점이 눈에 띄였기 때문입니다.
대장정님께서 소설의 배경이 될 수 있는 여러 설정등을 설명하시면서 작가 자신께서 로마시대를 좋아했기 떄문에 군대의 조직이나 편성 등은 로마의 군 편성을 참조했고, 판타지 소설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중세시대를 조금 가미해 소설의 배경을 창조해 내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고대사와 중세사를 구분짓는 것은 그것이 단순한 시간의 흐름에 의해 편의상 구분해 놓은 것이 아닙니다. 정치, 경제, 사회 등 여러분야에서 전 시대와 구분지을 수 있는 변혁 내지는 혁신이 있었기 때문에 고대와 중세, 근대, 현대를 구분짓는 겁니다. 군사적 편제는 고대 로마사와 유사한데 정치나 경제, 사회 등 군사 외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중세시대라는 설정은 왠지 저에게는 기괴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이런 지적은 딱 꼬집어서 대장정님의 글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밝힙니다.
대장정님은 녹스요새는 만리장성과 리메스를 모델로 하였고, 만시족이 헬베티 족과 유사하다고 한다면 그것은 흉노족에게도 마찬가지의 기준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소설에서 프란츠 제국의 설정을 보면 중앙바다를 중심으로 세개의 대륙에 걸쳐져 있으며 중앙바다를 우리들의 바다라고 부른다라고 써 놓으셨습니다. 로마인이 지중해를 우리들의 바다라고 부른다는 것은 로마사에 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졌던 분들은 이미 아실 내용이라 봅니다. 그런 설정상의 유사성으로 인해 녹스요새와 마시족은 만리장성과 흉노족이 아닌 갈리아인과 게르마니아 방벽 혹은 하드리아누스 방벽을 자연히 연상시키게 되었고, 레미 앙쥬가 7000명의 병력으로 대규모 병력의 마시족과 맞서는 상황에서는 카이사르가 7000명이라는 숫적으로 불리한 열세에도 불구하고 빠른 기동성이라는 잇점을 활용하여 급속 진군하여 갈리아의 여러부족들을 각개격파하는 부분이 자연스레 연상되었습니다. 우연의 일치일지도 모릅니다만 거기에다 4권의 초입에서 나오는 아드리안강의 설정까지... 제가 반왕을 읽으며 자연스레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쟁기와 내전기를 떠올리는 것이 이상하게 들리십니까? 그것이 문제라면 기억하지 않아도 될 부분까지 기억하고 있는 제가 이상한 놈이겠지요.
그리고 아직 완결이 되지 않았으니 결말을 보고 평가해 달라라고 말씀하셨는데, 장르소설은 일반 여타의 저작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다른 저작들은 일단 완성본으로 발매되지만, 장르소설은 시장의 흐름, 판도를 보고 발매 여부를 결정합니다. 즉 다른 여타의 저작들을 영화에 비유한다면 장르소설은 드라마 인 셈입니다. 영화는 일단 완성본이 되어 발매되면 작가의 손을 떠나지만, 드라마는 작가가 끊임없이 시청자의 피드백을 받습니다. 이렇게 해달라, 이런 점은 미흡하다, 이런 방식으로 전개해 나가면 더 좋겠다 등등의 요구로 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말입니다.
심하게 말하자면 대장정님께서 저의 비평을 보고 글의 전개를 완전히 바꾸어 버리는 것도 장르소설에서는 충분히 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저로서는 이미 구입해서 사 본 1,2권만을 보고 감상을 쓸 수 밖에 없었고, 그것이 대장정님과 저의 근본적 차이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전 독자이고 전 대장정님이 쓰신 텍스트만을 볼 수 있을 따름이니까요.
그리고 작가와 독자와의 관계 그리고 비평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작가와 독자는 구분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작가는 언제든 다른 작가의 글을 읽을 수 있는 "수신인" 즉 독자가 되며, 책을 읽을 수 있는 독자는 언제든 "발신인" 즉 작가가 될 수 있습니다.
수없이 많은 저작들 대부분이 작가의 자발적인 의사에 의해 쓰여졌습니다. 독자의 강요에 의해 쓰여진 저작들은 쉽사리 찾아보기 힘듭니다. 흔히들 작가가 독자(비평가도 독자입니다.)의 혹독한 비평에 절필하겠다고 선언합니다. 하지만 그런 절필 선언으로 비평의 논점을 피하고 애독자를 볼모로 삼는 짓이 옳바른 것일까요?
아무도 작가에게 이런 저런 글을 쓰라고 요구하거나 강요하지 않습니다. 작가는 어떤 동기에서든 자발적인 의사에 의해 글을 쓰게 됩니다. 그리고 독자는 자발적인 의사에 의해 비용을 지불하고 그 작가의 글을 구매합니다. 하지만 문학의 특성상 다른 상품과는 달리 구매 후 비용의 지불의사가 비자발적입니다. 즉 상품의 품질이 떨어진다고 해서 비용을 환불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의류, 공산품, 혹은 식료품과 같이 구매한 이후 자신의 생각하고 있는 품질에 미치지 못할 때 비용을 다시 환급할 수 없는 비탄력성을 문학은 가지고 있습니다.(그것은 문학,영화,애니매이션,게임 모두 그러합니다만) 그런 비 탄력성은 소비자의 의사를 정확히 추적하여 객관적으로 판단내릴 수 있는 기준의 미흡성으로 인한 것이지, 그런 시스템 자체가 아무런 문제가 없다라는 것은 아닙니다. 시스템 상의 문제만 해결된다면, 문학과 같은 소프트웨어 상품도 다른 하드웨어 상품과 마찬가지의 기준이 적용되어야 공정할 것입니다.
다른 상품들도 상품을 구매하기 이전에 상품평을 미리 읽어보는 게 합리적인 소비라 말할 수 있습니다. 문학 또한 경제적 상품이고 책을 사서 보는 독자건, 대여점에서 빌려보는 독자건 간에 일단 작가에게 비용을 지불한 셈입니다. 그런데 작가의 심사에 뒤틀리는 비평은 전혀 발전적이지 못하므로 삼가하라고 한다면, 도대체 독자가 이미 지불한 정당한 비용에 대한 권익은 어디에서 찾아야 합니까? 현실에서 작가가 독자들이 구입하거나 대여한 비용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있습니까? 독자는 비용이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자신이 구입한 상품이 그만한 가치를 갖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보다 합리적인 비용지출을 위해 합리적인 구매의사결정방식을 따릅니다.
따라서 독자는 책의 상품평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비평에 주목하게 되는 것이고, 그것은 독자의 당연한 권리이며 요구라고 봅니다.
작가분들께서 도대체 장르소설따위에서 뭐 어떤 걸 원하는 거야? 다 그렇고 그런거 아냐? 그렇게 따질거면 "고상한" 순수 문학이나 읽으라구 라고 하신다면 더이상 반론도 항의도 하지 않겠습니다.
표절문제에 대해선 제가 분명히 사과드립니다. 표현이 다소 격했습니다. 하지만 전 표절과 유사한 행위라고 말했지, 결코 표절이다라고 단정한 적은 없음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본의 아니게 논란의 중심이 되어버린 철부지 독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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