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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뿌2호님의 작품에 대한 비평

작성자
Personacon 가디록™
작성
15.03.20 04:33
조회
2,173

제목 : 리치와 요한

작가 : 호뿌2호

출판사 : 문피아



마침 정담에서 비평 관련 글을 보고 작품을 읽던 중에, 비평요청글이 올라와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인 시간이 부족하여 ‘낯선 이들’까지밖에 못 보았습니다만, 비평을 해보고 싶은 마음에 섣불리 글을 써 봅니다.


저는 글을 체계적으로 배워본 적도 없고 소설을 오래, 많이 써본 사람도 아니며 읽는 눈도 쓰는 재주도 미천한 일개 글쟁이입니다. 그래서 저는 나라면 어떻게 썼을까, 라는 분석적인 시각보단 ‘리치와 요한’이라는 작품을 읽은 한 명의 독자로서 평하고자 하는 바를 글로 옮겨보고자 합니다.



먼저 리치와 요한(이하 작품)은 매우 간만에 보는 정통 판타지입니다. 판타지면 판타지이지 정통은 뭐냐, 그런 애매한 개념이 있긴 한 것이냐고 혹자들은 반문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가 소싯적에 익히 봐오던 중세 서양 느낌의 판타지라고 설명드리면 이해가 빠르지 않나 싶습니다.


제가 읽은 부분까지의 스토리는 매우 무난하게, 걸리적 거리는 포인트 없이 잘 흘러가는 편입니다. 자극적이고 파격적인 소재가 아니라, 고전 판타지의 폼을 차용한 소설이기에 독자가 부담없이 접해서 읽을 수 있는 친화력이 있습니다. 독자에게 강렬한 뭔가를 던져서 집중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배경과 소재를 바탕으로 조용조용 이야기 하는 듯한 스타일의 글입니다.


그러나 마냥 이게 장점일 수만도 없는 것이, 이미 중세 배경의 판타지는 온갖 매체가 아주 오래전에서부터 지금까지 신명나게 우려먹고 있고, 또 그걸 접한 대중들은 익숙함을 넘어 식상함마저도 느끼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소설은 호불호가 갈리기 쉬운 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좋아하고 혐오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옛 것의 향수를 원하는 사람은 좋아하겠지만 무향무취인 소설을 안 좋아하시는 분은 안 끌려한다, 그런 의미의 호불호입니다.


스토리 또한 무난하게 무난합니다.

주인공인 요한은 어릴 적 전쟁통에 일가친척을 모조리 잃어버리고 리치인 셀레누스에게 구조 받습니다. 셀레누스가 왜 요한을 구했는지에 대해서 확실하게 언급이 되면 좋겠지만, 작품 후반에 반전의 요소로 쓰이거나 혹은 차후에 얼마든지 진행할 수 있는 사항이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보여집니다.


세월이 흘러 요한은 장성하게 되고 셀레누스와 여행을 하던 도중 셀린이란 소녀를 돕게 됩니다. 요한과 셀레누스는 세린의 가족을 도와주고 괴롭혀 오던 도적들을 일망타진 시켜주는데...역시 무난하게, 별 탈 없이 전개되는 부분이지만 첫 에피소드 내도록 작품만의 ‘특징’이나 ‘컬러’가 없다는 것은 아무래도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고 판단됩니다.


그리고 개연성 문제인데...이 작품의 가장 아쉬운 점이었습니다.

도적들이 빚을 갚으라며 빚쟁이인 셀린의 오빠를 빈사 상태로 만들고 떠나버린 것에 대해서, 제가 아니라 다른 독자분도 지적하신 바 있습니다. 저도 그 지적을 전적으로 찬동하는 편입니다. 뿐만 아니라 셀레누스가 모종의 사연, 혹은 단순한 마음의 변심으로 주인공을 구했을진 모르겠지만, 요한이 셀린을 구하는 것에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굳이 이유를 꼽자면 핍박받는 약자를 좌시하지 못하는 정의로운 성격이었겠지요.



무난한 세계관, 무난한 스토리, 무난한 캐릭터들. 무난한 행동 원리. 리치와 요한이란 작품은 아주 큰 실수가 저질러져 있는 글이라던가, 필력이 형편없어서 못봐주겠다던가 하는 글이 아닙니다. 정말 스무스하게 부담없이, 탄산 마시다가 생수 마시는 것처럼 자극없이 부드럽게 읽히는 그런 글입니다.

 문제는 물처럼 순수하다 못해 무색무미무취무향이라는 것. 즉, 차별화가 없습니다.



주인공인 요한은 약육강식의 논리를 따라 움직이지만, 사실 선한 자에겐 약하고 악한 자에겐 강하게 대응하는 캐릭터입니다. 모순된 인물이라고 작중에 표현되어 있지만, 그런 모순점 같은 건 그다지 신선하거나 특별하게 와닿는 포인트는 아니었습니다. 모순됐다 하더라도 결국 정의를 실현하는 캐릭터로 비춰졌으니까요. 게다가 별의 별 캐릭터가 창조된 현재로선 이런 모순점마저도 싱겁게 느껴질 정도로 자극이 약합니다.


다만 독자의 흥미를 강하게 불러 일으켜야 하는 첫 에피소드에서, 셀레누스라는 캐릭터를 좀 더 입체적으로 표현하여 독자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습니다. 일개 독자로서 가장 관심이 가는 캐릭터는 바로 셀레누스였거든요. 요한이나 셀린이나, 초반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다 전형적이고 흔한 성격의 소유자들이지만 셀레누스는 ‘리치’ 주제에 소년을 살린데다 그 소년이 장성할 때까지 잘 데리고 다닌다는 점이 굉장히 신선했거든요. 주인공도 무난하고, 스토리나 전개도 무난한 가운데 셀베누스만이 독특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품의 유일한 신선함이지요.  보통 리치라 함은 영원한 목숨을 얻기 위해 흑마법사가 스스로 언데드화 한다는 개념이고, 혹은 반드시 이뤄야 할 사명이나 목표가 있어서 죽어선 안 될 때 리치가 된다는 설정도 있습니다. 그런데 셀베누스는 리치가 된 이후 요한을 거둬서 장성할 때까지 잘 데리고 다녀 줍니다. 우리가 상상하는 리치는 던전 한 켠을 차지하는 중간 보스 그런 느낌이지만요.


게다가 낯선 이들의 마지막 편에선 셀레누스의 궁극적인 목표가 ‘자신의 죽음’이라고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핵심을 꿰뚫는 그런 말인 것으로 보여지네요. 요한을 키우는 것도 자신의 죽음에 이바지하게 하기 위해서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혹은 사실 셀베누스는 타의에 의해서 리치가 되어 자신을 망친 숙적을 요한의 힘으로 물리치려는건가 하는 생각도 들고. 아무튼 독자들에게 다양한 생각의 여지를 준다는 점에서, 셀베누스만은 득점 포인트를 올린 느낌입니다.


하지만 그뿐, 셀베누스란 캐릭터조차 독자를 잡아 이끄는 강렬한 흡입력을 지녔다고 보기엔 어려움이 있습니다. 첫 에피소드의 마지막 화가 아니더라도, 스토리가 진행되는 틈틈이 다양한 메시지가 배치되어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굳이 거창한 메시지가 아니더라도, ‘앞으로 이렇게 전개될 수도 있을걸?’ 하고 슬쩍 작가님이 구상한 패의 일부분을 보여주거나 혹은 ‘이 캐릭터가 사실은 이런 캐릭터라면 어떨 것 같아?’ 하고 독자들에게 생각의 여지, 추론의 여지를 준다거나 했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고요. 이 작품의 첫 에피소드를 읽고 난 후의 감상과 지적은 여기까지입니다.



총평은 못 내리겠습니다. 소설 전체가 이러저러하다, 문장력이 어떠하고 플롯의 구성이나 전개가 어떠하다고 감히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만한 실력도 없고 그럴 위치도 아닙니다. 다만, 호뿌2호님의 ‘리치와 요한’이라는 소설을 일부 읽어보고 느낀 단 하나의 감상은 ‘싱겁지만 부담이 없는 글’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밥만 먹는 것 같은 느낌이라 할까요. 


담백한 재미가 있고 어린 시절 익히 들어왔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조금은 지루하지만, 이런 이야기만 낼 수 있는 특유의 풍미가 느껴지는 그런 글입니다. 밥도 계속 씹다보면 은은히 단맛이 나는 것처럼 말이지요. 맵고 짠 음식은 인기가 많지만 아무래도 해롭거나 부담이 많이 가는 게 사실입니다. 가끔은 싱숭생숭하더라도 싱겁게 먹는 것이 색다른 즐거움이 될 수도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 즐거움을 느꼈다는 점에서, 저는 ‘리치와 요한’이라는 작품을 재미있게 잘 읽었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개인적으로 개성 있고 좋은 소재를 잡아낸다면 더 사랑받는 글을 쓰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은 쉽게 잘 읽히고 어렵지 않게 직관적으로 쓰여진 글이 대세라고 합니다. 딱 호뿌2호님의 문장력이 그런 느낌입니다. 어렵지 않고, 직관적인 글 말이지요.

 소재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서, 호뿌2호님은 훨씬 더 크게 도약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여집니다.


부족함이 많은 제가 이래저래 말을 길게 늘어놓았지만, 걸러 들으실 건 걸러 들으시고 혹여라도 뭔가 득을 보신다면 그 나름대로 저로선 보람찬 일일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호뿌2호님의 건필을 기원하며 글을 줄입니다.



https://blog.munpia.com/ansghtm/novel/28412






Comment ' 5

  • 작성자
    Lv.28 호뿌2호
    작성일
    15.03.20 08:42
    No. 1

    비평 감사합니다.
    제 괴작을 읽어주기고 평가까지 해주시다니 정말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진심입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6 묘한인연
    작성일
    15.03.20 13:32
    No. 2

    비평글을 읽으니 한 번 읽어 보고 싶어지네요.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5 아라나린
    작성일
    15.03.20 16:39
    No. 3

    가디록.님께 이런 면이! ㅎㅎㅎ
    정말 독자의 입장에서 쓰셔서 비평보단 추천을 받은 느낌이네요. ^^ 보통 비평을 읽으면 보고 싶은 마음이 안 드는데 조금만 고치면 좋은 글 같아서 기다려지네요.
    ...지금 보러 갈까? 살짝 맛만 보고 올까?
    ...무지 고민되네요... 음...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6 묘한인연
    작성일
    15.03.22 07:16
    No. 4

    비평글이 마음에 들어서 읽어 보았습니다.
    전 4편을 넘어서기가 힘이 들더군요.몇몇 오타나 비문은 그럭저럭 넘기겠던데
    저한텐 많은 부분이 걸리적 거려서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늦은 밤 리치를 만나고 무서워 집에 가겠다던 여자애는 곧이어 밤이라 돌아갈 방법이 없다고 하더군요.엄마 치료비가 없어서 맹수가 사는 산에 약초를 캐러 다니는 집에
    도둑이 엄마를 납치하고 돈을 요구하는 부분은 당황스러웠습니다.
    생활비가 은화 1닢인데 10닢을 어찌 구하겠으며, 그 은화를 구해야할 오빠를
    리치가 아니었으면 죽었을 정도로 패다니요.거기다가 치료후 오빠가 어찌될지
    기다려 보는 수밖에 없다더니 그 말과 동시에 오빠 눈을 뜹니다.
    개연성이라는 것이 사람마다 다름 법이긴 합니다만 저는 읽기가 너무 힘겹더군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7 놀아주시요
    작성일
    15.04.01 23:25
    No. 5

    일단 한번 볼게요 비평이 맘에 드네요 ㅎㅎ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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