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Inferior Struggle.
작가 : 요개
출판사 : 문피아 일반연재
이전 글은 작가 분이 요청한 비평항목입니다. 죄송하지만 요청하신 것을 넘어서 조금만 더 나아갈게요. 작가님이 원하는 대로만 비평을 해줄 것이라면, 그건 별 의미가 없을 테니까요. 작품에 감상이나 비평을 얼마든지 환영한다는 말을 믿고 적겠습니다. 애초에 비평이란 건 추천이나 광고 목적의 글이 아니란 걸 염두해 두세요. 혹시나 상처입으신다면, 죄송하다는 말씀밖에 드릴 수가 없겠네요.
1. 들어가며
회귀 전. 좋았습니다.
하지만, 환생 후 이세계에서의 진행과 묘사가 완전히 무너지는 기분입니다.
앞부분의 섬세한 묘사는 거의 삭제되듯이 없어져버리고 주인공의 마음은 직접 서술로서만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그것도 새로운 세계에 대해 별다른 고민이 없었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갑자기 작가 분이 다른 사람으로 바뀐 게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로요. 아마 아래 요소들에 대한 몇 가지 고찰이 부족했지 않나 추측해봅니다.
2. 작품의 재미 요소에 대해
첫 번째. <회귀 구조>
왜 우리는 회귀 구조에 환호하는가? 누구나 과거로 돌아가서 자신의 과오를 고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요개님의 글은 자신의 과오를 고칠 여지가 없게 되죠. 왜냐하면 판타지 세계로 넘어가면서 무협 세계는 훌훌 털어버려 저 멀리 날아가버렸으니까요.
그리고 회귀란 것은 그 자체로 치트키가 됩니다. 미래의 일을 알게 되니까요. 하지만, 이상한 동네로 나가떨어지면서 치트키를 못 쓰게 됩니다. 그 지식들도 의미가 없어질 테고요.
주인공이 암 걸리는 상황에 처해 있지만, 그걸 해결할 상황이 천의경뿐이죠. 그러니 별로 기대감이 없죠. 회귀 구조가 별 의미가 없어진 겁니다.
두 번째. <신세계>
주인공은 기존 세계의 모든 것들을 썩혀 버리고 새로운 세계로 갔습니다. 신세계란 당연히 새로운 멘탈리티를 필요로 합니다. 우리의 정신은 외부 작용에 의해 끊임없이 영향 받고 대응하니까요.
그럼에도 기존 무협세계의 멘탈리티가 계속 문제됩니다. 그래서 이젠 눈 앞에 존재하지도 않는 자들과의 갈등이 되어 버렸습니다. 머릿속에 있는 내 자신과의 싸움, 즉 자기 성찰이 되죠. 그게 나쁜 건 아니지만, 표현해내기 무척 어렵습니다. 독자가 그걸 잡아내기엔 위 작품에서는 주인공의 감정 변화가 너무 밋밋합니다.
인간의 정신은 주변 사물과 장소 기타 환경, 타인과의 관계 등으로 이루어집니다. 도 공자가 이세계의 멜빈이 되는 순간, 과거의 자아 정체성을 계속 유지하는 건 별로 의미가 없어지고 맙니다. 더 이상 천의문도 없고 약혼녀도 없는데 뭐하러 도 공자의 껍질을 쓰고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 탈피의 과정은 사이코패스가 아닌 이상 당연히 쉽지 않겠죠. 그래서 보통의 인간은 먼 외국에 나가 떨어지면 고향에 대한 엄청난 그리움-향수에 빠지게 됩니다.
하지만, 작품에 그런 모습들 보단 과거의 열등감을 극복하는 쪽으로 그려지는데요. 초점을 그렇게 맞추는 건 나쁘지 않습니다만, 새로운 세계에 와서 기존 멜빈의 기억도 얻고 수많은 낯선 시간을 경험해도 그런 인간적인 면모들 없이 오로지 열등감 하나만 쥐고 있다는 게 좀 이해가 안 됩니다. 그래서 공감이 잘 안됩니다. 독자는 세계가 없어진 걸 뻔히 아는데 작중 인물만 혼자 옛 감정의 찌꺼기로 고민합니다.
열등감이란 것도 어떤 욕망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내가 잘하고 싶은 욕망, 칭찬받고 싶은 욕망. 하지만, 더 잘 할 세상도, 칭찬해줄 사람들도 다 떨어졌습니다. 왜 아직까지 열등감이 문제가 되어야 할까요?
게다가 그 모든 성찰적 요소들이 깨달음-천의경 하나로 다 설명되어 버리니. 그리고 그렇게 깨달음을 얻었는데도 주인공은 여전히 세속적인 면모에 집착을 하는 등. 열등감 따위는 유체이탈로 자기 시체를 본 사람이 할 법한 생각들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혼돈(자아를 잃을 위험)-혼돈의 사신(자아를 잃은 자)-천의경(자아를 지켜주는 등대)의 상징성이라 한다면, 주인공의 자아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더 들어가야 설득력이 있을 겁니다. 아무런 논의 없이 나는 나다가 되어 버렸으니까요.
세 번째. <신선함 혹은 당혹감 그 우아한 냉혹>
신선함은 중요합니다. 우린 너무나도 많은 회귀물들을 봐 왔죠.
분명히 무협 세계의 부적응자를 낯선 판타지로 떨어트려 버리는 것. 그건 신선함을 줄 수 있는 급진적인 전개입니다. 하지만, 그런 재미 요소들에 대한 심도 깊은 고찰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당혹감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입니다.
위의 요소들을 고려해보면 작가 분이 그런 것들을 알고 요리 재료로 사용하는 게 아니라 설정을 짜다 보니 그렇게 된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합니다. 그럴 것이면 애초에 왜 이 작품에 굳이 무림이 들어갔어야 했느냐는 거죠.
"갑자기 왠 판타지 세계?"
독자들이 가장 많이 느낄 감정이라 생각합니다.
독자들이 환호하는 건 주인공이 강해져서 백윤을 뛰어넘는 기연을 얻고 답답함을 쓸어버릴 것을 원하는 것이죠. 아주 나중에 혼돈의 사신을 쓸어 담는 질서의 사신이나 중용의 사신이 되어 무협으로 다시 넘어가 백윤과 대립하는 그런 구도를 생각하신다면 모를까. 도대체 그 무협 시기의 주인공 아내나 대적자나 가족들, 숫한 장치들이 다 어디 쓰일지 감도 안 잡히거든요. 그대로 버려질 것이라면, 안 보여주는 게 낫지 않을까요?
넷째. <리얼리티&개연성-독자가 속아 넘어가느냐?>
처음엔 저는 별로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프롤로그가 굉장히 좋았거든요. 일단 요개님이 만든 세상을 전 믿고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주인공이 말하는 방식 등에 대해 최대한 개연적인 독자의 해석을 붙이게 되죠. 그 예를 볼까요? 아래는 제 감상입니다.
[독자가 신뢰할 때] 초반 부분의 주인공은 인간은 결코 달에 이를 수 없다는 말을 합니다. 주인공은 분명 사물에 대한 인식이 (우리가 보기에) 상당한 수준에 이르러 있습니다. 그건 우리가 보기에 그럴 테고 당대의 달에 대한 해석과 상당히 다를 테니... '당대 사람들이 보기엔 멍청해 보이겠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단월이라는 비유적 표현을 간단하게 이해하지 못 하는 걸로 보아 본질 자체에 대한 더 큰 깨달음을 얻기 위해 멈춰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중세인들에게 달은 생각보다 가까운 거리에 있을 터이며 무공으로 높이 날아오를 수 있는 자라면 능히 달 정도는 베지 않을까?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달이 우주에 떠 있는 거대한 돌 덩어리란 인식을 몰랐을 테니까요. 그래서 오늘날 우리에겐 달을 벤다는 게 얼마나 허무한지 충분히 납득이 가죠. 물론 그렇다면 주인공의 과학적 인식에 대한 개연적 설명이 붙여져야겠죠. 다음화에 나오던지. (하지만, 안 나오더군요.)
여하튼, 달에 대한 과학적 인식-달은 멀고 닿지 못한다-이 있을 테니 그렇게 멀리 있는 달에 어떻게 닿을까가 문제가 될 것이고 자연의 미메시스라는 말도 안 되는 것들에 대해 더 큰 고민을 안게 되겠죠. 곰을 흉내내고 사마귀를 흉내내도 우린 결코 곰이나 사마귀가 되지 못한다는 것. 곰의 그런 모양이 나오는 건 곰의 엄청난 근육에 의한 것이지 곰의 앞발 휘둘러치기를 백날 흉내 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 그런 문제의식 때문일 가능성이 있겠죠. 단순한 설정 상의 오류가 아닐 거라 기대했습니다.
큰 그릇은 늦게 차듯이. 여하튼, 그러한 이성적 사고 때문에 '흉내내기' 에 대한 본질적인 회의에 빠졌다는 늬양스가 느껴졌었죠.
//초반 부분입니다. 최대한 호의적인 해석이 이루어지는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개연성이 무너지기 시작할 때] 그런데, 그 대단한 잠재력을 지닌 대가문의 소공자가 굶어 죽었습니다. 놀랍죠. 아무리 무가 중요시 되는 무가라 해도요. 전개 자체가 점점 이상해집니다. 그렇게 보니 앞의 부분도 이상해요. 갑자기 위 장로는 왜 엄청난 비급과 한철주괴 등의 보물을 꺼낼까요? 주인공을 엿 먹이기 위해서? 무공 수준을 숨기고 있다는 말이 적혀 있지만, 별로 공감이 되는 내용은 아니죠. 주인공 가문의 재력을 과시하고 싶었다면, 그런 재물이 가지는 힘과 권력으로 다른 일을 할 수 있는데 그걸 하지 못하는 상황이 이해가 안 됩니다.
게다가 소가주가 저토록 재능이 없다면, 수제자를 가주로 뽑던가 사촌을 데려오던가 뭔 수를 써서라도 쓰지 저렇게 무턱대고 방임해두진 않을 거란 생각이 자꾸 드네요. 씨받이를 고용한다던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저렇게 암이 되어 썩어가도록 방치하진 않을 겁니다. 문주가 정말 멍청하다면 몰라도요.
// 점점 의심이 들기 시작하면서 작품의 전개를 따라가기 보단 나라면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개연성이 완전히 무너졌을 때] 아주 좋은 소재, 신선함, 간결하고 잘 읽히는 문체를 갖추었는데 자꾸 턱턱 막힙니다. 진짜 저렇게 행동했을까? 저 사람들은 죄다 바본가? 주인공은 왜 저렇게 행동하지? 스스로 포기하고 싶어 안달이 난 것처럼. 게다가 주인공이 그토록 멍청하다면서 주인공의 생각하는 수준은 굉장히 뛰어나죠. 너무 똑똑해서 인간들의 심리나 현상의 구조를 꿰뚫어 볼 줄도 압니다. 그리고 놀라운 수준의 자기 인식, 현실 파악 능력까지도요.
백윤이란 멍청한 인물이 나타나죠. 작중 인물들은 그를 천재라고 추켜 세우지만 독자가 보기엔 전형적인 바보입니다. 악의 상징처럼 거들먹거리고 자기 음모를 주인공에게 순순히 고백하기 까지 합니다. 문주의 아들인 주인공에게 폭행을 가하고 앞으로 너희 가문을 뺏어먹겠다고 음모를 말해주죠. 문주인 아버지의 손가락 한 번에 날려갈 그런 위태로운 입지의 인물임에도요. 천재라지만 오만해서 자기 상황도 모르는 모양입니다. 그런 인물이 천재로 불릴 정도면, 딱히 주인공의 주변 인물들이 대단한 사람들이 아니란 건 쉽게 알 수 있죠.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더군요. 심지어 그런 멍청이에게 자기 인식 능력이 완벽한 주인공이 대항도 못 해보고 쫓겨나 굶어 죽고 맙니다.
// 의심이 든 것을 작가분이 해결해주지 않고 넘어가면 독자의 세계는 깨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드는 생각은 ‘어설프다’라는 감정만 남게 되고 작중 인물의 세계에 몰입했던 연결된 마음도 깨어져 버리죠. 그러면 할 말은 하나뿐입니다. 답답합니다.
위 전개가 타당성을 지니려면, 주인공이 더 바보스러워야 합니다. 뭣도 모르고 흥청망청하고 권세를 부리다가 백윤에게 서서히 입지를 빼앗겨가며 발악하다가 한번에 훅 가는 그런 전개였다면 좋았을 텐데요.
그리고 운 좋게 이상한 놈을 만나 혼돈의 사도가 되도록 종용되며... 그리고 혼돈이란 놈이 굉장히 질서적이며 자아를 가지고 스스로 혼돈이라 말하는 상황까지 음... 제가 주인공의 마음에 강하게 감정이입되어 있거나 작가가 설명하는 세계에 충분히 설득되어 있다면, 그 부분이 우주와 인간에 대한 새로운 통찰로서 읽힐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껏 제 의문들은 수없이 좌초되었고 아무런 설명 없이 다음으로 넘어가버렸죠. 그렇게 되면 ‘혼돈’이란 놈 자체도 등장부터 의문 부호가 따라붙게 됩니다.
아래는 판타지 세계에서의 개연성 의문 내용입니다.
1) 국립 중,고등학교가 있다.(공교육은 근대적 사상입니다. 언제 어느 때나 인재는 부족하지 않습니다. 뛰어난 사람은 넘쳐나지만, 나를 위해 일해줄 사람이 부족할 뿐이죠. 국립 학교를 세울 바에 차라리 돈으로 뛰어난 자들을 고용해올 것입니다. 학교를 설립, 유지, 운영하는 덴 엄청난 인프라가 필요하니까요.)
2) 몬스터가 범람한다.(일반인들도 쉽게 때려잡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면, 모든 마을들이 고립될 것이고 세금이 막히겠죠. 국가가 운영되기 힘들 겁니다.)
3) 고아원의 선생님이 친절하고(일반적으로 친절하기 쉽지 않습니다. 오늘날처럼 누가 폰으로 찍어서 올릴 거도 아니고. 고아원 원장에 대한 아무런 보상도 글에서 설명되어 있지 않죠. 게다가 고아원 및 학교를 운용한다? 일반적인 중세 왕국이? 이런 상상은 그에 합당한 설명이 없다면 비개연적이 됩니다.)
4) 왕립 기사단의 존재.(엄청나게 돈이 많이 드는 겁니다. 상비군이란 건, 특히 기사라면 더 하죠. 정복왕 윌리엄도 기사 1천 명을 유지하지 못해서 국고가 거덜나버립니다. 그런데 그런 왕립 기사단의 기사가 동네 학교까지 와서 개인의 노력이니 어쩌니 하는 설명을 한다는 건...이미 신분제가 형혜화되었다는 얘기겠죠. 곧 대국민적 반란이 일어나야 할 겁니다.)
5) 학교를 유지 보수 운영할 정도의 행정력이 있는데 귀족이나 기사란 형태의 신분이 남아 있는 것도 이상합니다. 아마 중앙집권화된 왕국 체계가 될 것이지만, 그렇게 함으로서 귀족들의 힘이 억제되어야 할 것입니다. 평민의 구분이 없어지게 되었고 이는 곧 신분제를 흔드는 요인이 되겠죠.
6) 기타 고아원인데 배고파하는 적도 없는 것, 천재에 대한 인식(능력주의-혈통 위주의 중세 귀족 사회에서 말도 안되는 개념입니다.) 등등... 따지고 들자면 끝이 없을 거 같아 그만두겠습니다.
3. 미안해요.
혹평을 해버렸군요. 그것도 다 읽지 못하고 비평을 드립니다. 결코 요개님의 글에 독자가 느낄 수 있는 재미가 아예 없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다만 제 취향과 맞지 않기 때문임을 다시 한 번 밝혀둡니다. 글은 아주 쉽고 재미있게 구성되어 있으며 읽을 만 합니다. 그러니 많은 독자분들이 선작을 해주셨겠죠.
완벽한 글은 없으며, 타자님의 눈마새나 드래곤 라자 또한 개연성의 눈으로 보면 턱턱 막히고 말도 안되고 그냥 답답할 뿐입니다. 룬의 아이들이나 기타 유명한 작품들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그분들의 글은 무척 재미있죠. 개연성 따위 다 씹어먹을만큼 후치의 말은 다음 장을 넘기게 만드는 매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인물들의 행동들은 하나하나가 재미를 위해 구상된 것이란 겁니다.
개연성 vs 재미. 그것이 선택의 요소가 되기 위해선 일단 먼저 작가가 그걸 다 알아야겠죠. 독자들이 어떤 의문을 가질 것인지를요. 드래곤 라자가 개연성을 많이 희생하긴 했지만, 작가가 그걸 충분히 알면서도 그렇게 했다는 게 독자 입장에서도 느껴집니다.
하지만, 요개님의 글은 둘 중 하나의 선택이라기 보단 개연성 쪽에 대한 고찰이 부족해 보입니다. (물론 메이저 작가분과 비교하는 게 부당하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지만, 그렇다면 비평 해주세요란 글은 안 쓰시는 게 나을 겁니다. )
저는 전문가 따위가 아니고 그냥 책 읽기를 즐기는 평범한 독자에 불과합니다. 그것도 웹소설은 최근에 접했을 뿐이고 비전문적 지식으로 아는 체하기를 즐기며 좁은 식견을 함부로 유포하는 흔한 인터넷 떠돌이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크게 괘념치 마시고 요개님의 글을 선택해준 많은 독자를 위해 건필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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