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올해 11월 수능을 대비하기 시작한 고 3입니다. 초딩~중딩 때 반지의제왕, 해리포터를 접하고 판타지작가의 꿈을 꾸었었죠. 다른 책도 많이 읽고 글도 쓸 때가 있어 부모님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상상력이 많다. 작가가 되려나보다.'란 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들어온 후로, 그 꿈은 많이 퇴색되었습니다. 고 1 때는 생전 처음 겪어보는 빡센 공부법에 머리를 싸매고 소설을 쓰기는커녕 약간의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아니 해선 안 되는 때였습니다. 고 2 때는 성적에 따라 대학진로를 결정하고 그에 맞춰 생활기록부를 쓴다던지 스펙을 쌓는다던지 내신형, 수능형 중 하나를 결정할 시기였지요.
고 3이 된 지금, 전 다른 사람에게 '소설가가 꿈입니다.'란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부모님의 기대와 저 자신의 다짐으로 성적을 유지하느라 글을 쓸 시간은 전혀 없었고, 자투리 시간에 쓰고 써도 여러 번의 시행착오로 쓰고 지우는 걸 반복하느라 축적 분량도 없었죠. 즉 누구에게 자랑할 만한 글도 없단 얘기죠.
또한 사람들에게 소설가는 굶어죽기 좋은 직업이라 생각되고, 실제로도 그러하며, 성공한 소설가들의 수필에서도 그런 고난은 반드시 거치죠.
전, 현재 지망학과를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로 적었습니다.
소설창작과, 국어국문학과,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완전 정반대죠. 굶어죽기 싫으니까 제 마음을 억누르고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제 속도 모르고 잘 선택했다고 칭찬할때는 감사하다고 답합니다. 어떤 사람들이 제 속을 알아주고 그래도 네가 가고 싶은 학과로 가라고 하면 오히려 소설가의 굶어죽음을 역설하며 화를 냅니다.
우울해집니다. 그저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쓰고 싶은 건데, 나 자신이 먹고 사는 문제들이 달려있고, 가장 원하는 걸 부정하고 원하는지 적성에 맞는지도 알 수 없는 곳을 향해 가야 합니다. 학교, 선생님, 부모님, 그리고 저 자신의 내면에서도 그걸 강요합니다.
전 지금 삭막해져 있습니다. 거의 정신병에 가깝죠. 원래 유전적인 질병 탓이 있긴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로서, 저의 상상력이 바닥났기 때문입니다. 소설에서 벌어질 해프닝을 생각하고, 남주인공과 여주인공을 연출시켜 그 대화를 상상하고, 명대사를 지어내기 위해 뜸을 들이며 상상 속에 비를 내린다던지 번개를 내려친다던지, 그렇게 스스로도 무척 순수하다고 생각한 상상력이 이젠 없습니다.
그저 부정적이고 혐오스럽고 생각하지 싫은 것들만 생각납니다. 눈물을 흘리며 도피하고 싶어지기도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고 이를 악물고 다시 일어서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 기다립니다.
인격이 형성되는 청소년기를 전부 스트레스 속에서 보낸 결과입니다. 지금이라도 상상력을 자기 짜내기 위해 여러 책을 뒤져보고 글을 써보기도 하지만 무척이나 어렵습니다. 어떤 식으로 소설을 써야할지도 다 까먹었어요. 머릿속이 혼란스럽고 알던 것도 잊어버리고 감각조차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냥 다 포기하고 싶습니다.
공부를 할까, 소설을 쓸까, 생각을 할까,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고 있어요. 요컨대, 열정이 없어졌습니다. 그 누구도 기대하지 않고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는 길이 있는데, 전 반드시 그 길로 가고 싶지만 다른 모든 것이 그걸 방해합니다.
전 사람들이 판타지를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아니라, 가장 원초적인 문제로 '작가, 소설가'를 어떻게 바라보는 지가 더 궁금합니다. 이번에 고인이 되신 최고은님이 판타지를 쓰다 굶어죽은 건 아니었죠.
그냥 베스트셀러 간판을 달기 전까진 소설가란 직업 자체가 모두 고난이며 인식 역시 안 좋은 것 같습니다.
...그냥 우울한 수능생의 헛소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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