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서시(曙詩)
작품명 : 시공의 마도사
출판사 : 뿔 미디어
*그 어떤 의도 없이, 순수한 감상입니다.
편의상 평어로 풀어 놓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서시(曙詩)의 시공의 마도사를 보았다.
한때 문피아에서 인어는 가을에 죽다로 당당히 필력 있는 작가로서 독자들에게 기억된지라, 그의 첫번째 출판작은 실로 기대 속에 기다림의 미학을 음미한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시공의 마도사는 인기리에 연재되었고, 출판하였다.
전작(인어는 가을에 죽다)을 기억하는 이들은 새로이 연재된 시공의 마도사를 읽으며 적지 않은 실망감을 느꼈었으리라 생각된다. 하여 출판된 시공의 마도사 또한 선뜻 손을 내밀기가 힘들었을 것도.
하지만, 그것은 서시라는 작가의 능력을 너무 얕본 것이 아니었을까?
정작 책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시공의 마도사는 그런 모든 우려를 깡그리 해소시킬 만치 알찼다.
아마도 서시 작가는 연재작과 출판작의 차이를 과히 인지했을 뿐만 아니라, 적절히 보는 이의 조바심을 이끌 수 있는 고른 호흡을 가지고 있었으리라.
시공의 마도사는 전작과 다르다. 혹은, 비슷하다.
이건가? 했을 때, 아닌데? 하며 읽는 이의 뒤통수를 시원하게 올려치는 전작 특유의 '반전'은 여전하다. 더불어 중간중간 긴장감으로 뭉친 근육을 저도 모르게 '픽' 하는 실소와 함께 이완시키게 하는 개그요소로 읽는 내내 피곤함을 느끼지 못했다.
전작과 달리 좀 더 다채로운 연령대를 노릴 수 있는, 전연령이 즐길 수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출판하기 위해 수정된 시공의 마도사 극초반부가 연재되었을 때 우려되는 것은 다름이 아니었다.
'익숙하지만 낯선' 세계관.
사대세가와 제가회의. 그리고 삼국시대 신라의 골품제도를 도입하여 여타 판타지 소설과는 전혀 다른 신분제를 베이스에 깔아놓았다.
익숙한 것은 정보를 받아들일 때 별다른 여과처리를 거치지 않아도 손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이익이 있다. 하지만 시공의 마도사는 언뜻 익숙하지만 낯설기도 한 신분제로 인해 그것이 조금 우려되었던 것이 필자의 생각이'었었다'.
여기서 필자가 굳이 과거형으로 서술한 것은 정말로 그것이 과거의 생각이어서이다. 다시 말해, 전혀 우려하지 않아도 될 문제를 골똘히 고민했었단 것이다.
국사책만 봐도 알 수 있고, 서시라는 작가가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 놓았기에 이해하는 데 애로사항이 없었다. 즉, 학생 신분인 분들은 모를 수 없는 것이기도 하고, 현재 드라마만 제대로 챙겨 보았다면 '저런 이기적인 놈들!' 하며 작품을 읽는 동안 주인공과 같이 욕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좌우지간 서시 작가의 노림수는 매끄럽게 다가왔고, 그보다 앞서 프롤로그의 반전과 도입부의 주인공 '나길'의 숨 가쁜 추격전에 이미 반쯤 퐁당 빠져 책에서 손을 놓지 못했을 것이다.
힘찬 흡입력으로 읽는 이의 정신을 앗아, 늪과 같은 몰입도 속에서 자연스레 세계관을 이해케 하는 필력은 실로 감탄을 금할 길이 없었다.
더욱이 움와루켈레 박사(오징어 박사)의 등장과, 우습고도 황당한 죽음은 이 작품의 분위기가, 결코 진지함만을 지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쉬이 짐작케 한다.
굳이 수치로 표현하자면, 8:2라 하겠다.
현재 판타지나 무협이나 식상한 부분은 굉장히 많다.
일정한 틀을 만들어 놓고, 그것이 정형화된 것이다. 하지만 시공의 마도사는 그 정형화와 그밖을 폴짝폴짝 뛰어 줄넘기하듯 넘나든다. 그 작품만의 색깔이 선명하다 못해 짙다.
좀 더 읽는 이의 시각에서 자유롭게 자신만의 길을 닦을 수 있는 다시없을 기회를, 서시 작가는 보란듯이 휘어잡았다.
그리고 물고기 몰듯 읽는 이를 한곳으로 빠르게 몰아간다.
읽는 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주인공 '나길'의 뒤꽁무니를 겨냥하고 전력으로 질주하는 것이다.
나길이 걷는 길, 나길이 보는 세상, 나길이 만나는 여러 사람들.
사람.
그리고 사람 사는 곳.
시공의 마도사는 '인간'의 이야기를, 삶을 보여준다.
루나, 미하엘, 크세놉스, 도쿠도 삼형제…… 등등.
각자 다른 군상들의 개성은 물론이고, 그들의 심적 갈등과 변화, 귀족과 평민의 갈등.
서시 작가는 '생각없이' 읽고, '생각하게' 만드는 능력이 탁월하다. 읽을 때는 그저 나길과 하나가 되어 좌충우돌, 기분 나쁜 놈들에 일침을 가하며 통쾌하게 깨부수는 것에 집중한다. 그러나 읽은 뒤 다시 한번 돌이켜 보면, 그가 전달하는 메세지를 떠올릴 수 있다.
'인간평등.'
'용기를 내어 상황에 부딪치면 훗날 후회의 무게를 줄일 수도 있다.'
'주어진 시간에 충실하라.'
어쩌면 그것은 서시라는 작가가 보고, 느끼며, 깨달았던 세상을 읽는 이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자신감을 가지고 노력한다면 각박한 세상 속에서 충분히 좀 더 즐겁고, 먼 훗날 삶을 돌이키며 얼굴의 그늘 없이 한 가닥 만족스런 미소를 지을 수 있노라고…….
그것을 '나길'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필자는 생각한다.
아니더라도, 그저 받아들인 대로 여기리라고.
이 각박한 세상.
좀 더 자신에게 충실할 수 있는 힘을 나눠주는 작품이리라고.
그렇게 시공의 마도사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천천히 곱씹은 단상을 여기에 풀어놓는다.
- 범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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