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검비무란에서 만난 서릿발같은 필명이다.
또한 어찌어찌 퇴출되었다는 소리도 있고 연중을 한다는 둥
궁금한 것도 많아 '차갑겠지?'하며 슬쩍 집어들 듯 읽어보게 된 글이다.
눈내린 산길 밤나무 몇 그루 낙엽 밟고 돌아가선
텃밭 가운데 싸리로 피워놓은 모닥불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고구마랑 밤이랑을 구워 하얀 입김으로 호호 불어먹던 시절...
이 글에서 그러한 추억과 서정이 읽혀지는 것은 겨울이라서일까?
한 구절 한 구절 시인듯 수필인듯
곰살스럽게 그려진 고개짓, 이마짓 하나하나가 맛깔스럽다.
맑디맑은 수채화집을 한 장 한 장 넘겨보는 듯하니
어찌 이리 시린듯 구수한듯 아름다운 무협이 있을까?
잔잔하게 풀어가는 작은 산골마을의 이야기...
얼핏 '소나기'나 '메밀꽃 필 무렵'이 떠오르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펼쳐지는 농경(農景)은 서정적인 작가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글에는 없는 누런 송아지가 논둑에서라도 뛰어놀듯 눈앞에 다가온다.
무협소설보다는 전원일기를 보는 듯한 몹시도 서정적인 앞쪽 글에서는
주고받는 말 속에서나 등로의 예쁜 눈망울에서도 계절마저 느낄 수 있다.
서러운듯 오열을 참는 다부진 아이의 마음을 그림에도
작가의 부드럽고 다스한 낱말들이 포근하게 보듬고 있음이 느껴진다.
열 살의 나이로는 너무 많이 삶에 대해 알아버렸을 탓인지
'소우'의 말투는 노회한 철학가의 그것을 닮았다.
서출임에도 장군아버지를 업은 '산월'의 독설 또한 순수한 아이의 그것만은 아닌 듯하다.
작가가 비추어보는 삶의 모양새가 아이들의 그것을 찾기에는 훌쩍 깊어진 듯 한 대목이었다.
잠깐이기는 하지만 총명한 아이들을 그린 것을 짐짓 다르게 읽었는가 보다.
[문곡정의 꼬마들 이야기]에서는....
염쟁이인 아비와 또한 그 아들의 한을 글을 배움으로서 풀어가려다
계집아이의 영악한 반발에 슬쩍 길을 바꿔 딛고
그 과정에서 소우의 운명으로 드리워진 '등로'와는
영락없는 아이만의 모습으로 거듭나 짙은 여운을 남긴다.
[고씨네 육간의 아기 백정들 이야기]에서는...
제남의 토양이 영웅을 품는 상이며 천하의 인물이 모이는곳임을 은근하게
들먹이는 작가의 풍수지리적 식견에도 짐짓 놀라는데 한자가 틀렸다며 일일히 짚어주는
금강님이나 백곰님의 지적이 고맙게 다가온다.
고명경과의 만남에서 슬그머니 숭산 소림사로 넘어와서
명교말살의 대계가 논의되어 또한 시대를 말해주고...
여기까지는 산수화요 말끔한 그림이었는데...
잔잔한 선율의 클래식 Prelude가 잦아들더니
갑자기 색채가 없어지고 굵은 선들이 튀어나와선
만화스러운 장면들로 변하고 설명도 건조해진 듯하다.
높은 산자락 구름속에서 시장속으로 급히 내려온다고나 할까?
무대가 산골과 숭산에서 역수 저자거리로 바뀐 것이 작가의 의도이고 보면
말로는 겸손한 척 해도 '이게 복선이다'라고 들이미는 작가는 사뭇 치밀한 성품인 듯 하다.
파발이 달리고 없어진 두 가지 보물을 찾아 홍무제가 광분을 한다.
애꿎은 천리무영이 달아나다 명교에 잡히고,
소우는 고명경 패거리들(?)과의 동거를 시작하고...
사라진 서정이 아쉽지만...얼핏 여기서부터가 진짜 속내인 듯이 보여진다.
과거의 이야기라 작가가 강하게 개입하겠다는 댓글을 보고서도
표지와 내지가 다름이 느껴지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용비, 애각구려, 애각구충이 풀어놓는 소잡고 다듬는 얘기는
엄청난 전문적 식견이 담겨있다.
거기다가 밧줄위에서 잠을 자고 철환을 달고 산다.
백정오계가 나오니 문득 장중한 문파와 다름이 없다...
세상의 뼈와 살을 제대로 발골할 줄 아는 백정...
서서히 무공빛깔이 잔잔하게 피어오르고
저멀리서 횃불바라보는 듯 인연은 싹을 틔운다.
...
소우...
반말만 하지만 순수한 아이...
무엇에도 구속되지 않는 사내를 그리겠다는 작가의 의지를
등로의 입을 빌어 살짝 내뱉는다.
끝까지 읽으려다 혹시나 인연고리에 얽혀 시작되는 몰입에서 빠져나올까 겁이 난다.
이후로는 질펀한 사람냄새 물씬나는 재미에 빠져 허우적대며 기뻐하는 나의 모습을 그리며 감상을 줄여본다.
소우의 시원스러운 강호행을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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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체가 난무하는 인터넷상에서 귀감이 될 구수한 표현들은 어린(?) 사람들한테
다소 어려울 수는 있겠지만 글속에 그림이 있음을 배울 수 있는 좋은 본보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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