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모리미 도미히코
작품명 : 태양의 탑
출판사 : 문학수첩
제15회 일본 판타지노벨대상 수상작
끝도 없이 치닫는 기상천외한 포복절도 청춘소설.
위태위태한 망상과 순수함이 빚어내는 이중주. 단숨에 읽어내리게 만드는 신기하고 수상한 소설.
자의식 초과잉의 '사천왕'이 무한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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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탑은 태양의 탑인데, 전민희 작가님의 유명한 판타지 소설 '태양의 탑'은 아니고, 일본의 소설가 모리미 도미히코의 데뷔작인 '태양의 탑'입니다.
모리미라고 하면 '노이타미나'브랜드의 애니메이션이 제작되어 유명한 '다다미 넉장 반 세계일주'라거나, 대표작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등이 유명합니다.
다다미는 애니로, 밤은 짧아는 소설로 읽었지요. 시종일관 이어지는 화자의 화려한 독백과 문체, 사건들이 유쾌하면서도 판타스틱한 멋진 작품들이었어요.
그런 가운데 집에 굴러다니던 이 소설. 도대체 언제 사 뒀는지 도무지 알 수도 없고, 심지어 발견하고도 저도 깜짝. '다다미~'도 '밤은 짧아~'도 알지 못하던 시절에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책을 사 뒀을까요? 지금 인터넷 서점에 둘러보니 '품절'이 떠 있는데...
하여간 좋다구나 하고 읽기 시작. 다다미나 밤은 짧아 둘 다 마음에 들었던 작품이니.
그런데,
데뷔작이란 것이 지나치게 잘 들어나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하겠습니다.
...
문체라던가, 구성이라던가, 캐릭터의 조형이라던가 하는 그런 '작가적 역량' 자체는 이미 여기에서 완성되어 있다고 봐도 되요. 후기 작품으로 이어지는 유머러스하고도 장황한 문체는 이 '태양의 탑' 시절부터 빛을 발합니다.
그런데,
무지 우울해. OTL
주인공은 자의식과잉기가 넘처나나 실은 별거 없고, 어긋난 방향으로 열의가 폭주해버린 교토 대학 휴학중인 5학년.
'다다미'의 주인공은 자의식과잉기가 넘처나나 실은 별거 없고, 어긋난 방향으로 열의가 폭주해버린 교토 대학 2학년생(정확히는 신입생~대학2학년생),
'밤은 짧아' 또한 남자 주인공의 경우 자의식과잉기가 넘처나나 실은 별거 없고, 어긋난 방향으로 열의가 폭주해버린 교토 대학생(2학년이었던가, 3학년이었던가).
이런 식의 반복되는 캐릭터 조형은 이 작품들이 기본적으로 작가 자신이 반영된 사소설에 가까운 풍모이기 때문이겠지요.
다만, '다다미~'는 '동아리 활동'이라는 적극적인 활동에 목숨거는 유쾌한 이야기가 반복되고, '아카시'라는 청량제가 있었으며,
'밤은 짧아~'는 주인공이 연모하는 너무나도 귀엽고 발랄한 '검은 머리 아가씨'의 시점이 반복적으로 서술되며, 작 내의 환상적이고도 유쾌한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면,
이 '태양의 탑'은 진짜 완전히 어긋나버린 남학생이, 자기와 비슷비슷한 친구들과 함께 끝없이 땅 파는 이야기. 게다가 등장하는 여자라고는 '사안'이라는 별명으로 주인공 일행을 흘겨보는 것 만으로 침몰시키는 우에무라 양과, 한때 주인공과 사귀었으나 일방적인 이별 통보를 해 온 '미즈오 씨' 뿐...
'미즈오 씨'는 '다다미~'의 '아카시'나, '밤은 짧아~'의 '검은 머리 아가씨'와 비슷한 '상대역' 포지션이긴 한데, 어디까지나 주인공의 독백과 회상, 관찰에만 주로 등장할 뿐, 직접적으로 진행 화면 상에 잡히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도 주인공의 행보는 이 '미즈오 씨'라는 옛 연인을 둘러싸고 진행되니 그야말로 통탄할 노릇.
여자라고는 인연 없이 이성의 탐구자를 자처하며 망상의 성을 쌓아가는 남자 대학생들이 하숙방에 쳐박혀 땅을 파다가, 이윽고 네온이 휘몰아치는 크리스마스 이브의 거리로 나가 "에에자나이카(좋지 아니한가, 괜찮지 아니한가 정도의 의미)!"를 연호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뭐가 괜찮다는 거야. 괜찮을 리가 없잖아.'라고 울부짖고... '다다미'가 명확한 교훈으로 무장한 청춘소설, '밤은 짧아'가 로맨스 소설이었다면, 이 '태양의 탑'은 확고부동한 사소설.
'다다미~'나 '밤은 짧아~'를 읽고, 이 책의 소개글을 보고 이 책도 유쾌한 엔터테이먼트 소설일 거라고 지래짐작했다가, 그리고 읽기 시작한 초기에 주인공의 스토커 행위 등과 그를 표현하는 유머러스한 문체를 보고 얕봤다가, 그야말로 피 봤습니다.
읽다보면 진짜 우울해요. 아, 젠장. 그들의 모습을 그냥 웃어넘길수 없다는 게 더 우울하다. 사천왕 무리들에게 "니네들은 진짜 멋있어!"라고 외쳐주고 싶은데, "멋있을 리가 없잖아!"라고 오히려 그쪽에서 불같이 화낼 것 같아서 무섭다. 작품을 둘러싼 '유쾌함'은 '자학의 유쾌함'입니다! 그런데 그 자학이 날 찌른다! 으악!
닮은 소설을 찾으라면 작가의 다른 작품 보다는 오히려 "NHK에 어서오세요"같은 치학계 소설을 들겠습니다. 아아, 아프다. 씁쓸하다. 그런데 사랑스럽구나!
시카마, 가라사대.
"여기 푸른목장이 있다고 상상해 보라. 주위를 빙 둘러친 울짱 안에는 수많은 양들이 있다. 아무 생각 없이 태평스럽게 풀을 뜯고 데굴데굴 뒹굴며 나름대로 꽤 행복해하는 녀석도 있다. 난 정말 양일까, 양이 아닌 건 아닐까, 양이 아닌 나는 무엇일까 불안해져서 멍해 있는 녀석도 있다. 울짱 밖에 아주 잠깐나갔다 돌아와서는 '나 말이야, 실은 밖에 나간 적이 있어'라며 의기 양양하게 나발을 부는 녀석도 있다. 그 말을 감탄하며 듣고 있는 녀석도 있다. 울짱 밖으로 나가 어딘가로 영영 떠나 버리는 녀석도 있다. 그 많은 양들 중에 외따로 덩그러니 서 있는 녀석도 있다. 그 녀석은 자신이 양이라는 걸 알고 있으며, 실은 겁쟁이라 울짱 밖으로 나갈 생각도 못하고,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행복하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언뜻 보기에는 그 녀석이 다른 양들과 그다지 달라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자세히 관찰해보면 그 녀석은 줄곧 입을 다물고, 몹시 응고된 형태의 똥을 싸고 있다. 그것은 분명 단순한 똥이다. 그렇지만 심하게 응고된 형태다. 그래 본들, 그저 똥일 뿐이다. 그리고 그 양은 나다." - 본문 83~84p 中
절정에 이른 부분에서 단칼에 결말을 끊어버리는 부분은 이후 작품과도 닮은 부분. 다만, 이후 작품들에 비해 오락성과는 거의 연도 없는 작품이기 때문에 그 느낌도 상당히 다릅니다. 다른 작품들은 적어도 주변에 '행복의 아우라'가 가득 찬 형태로 끝을 맺었다면, 이 책은 어둠속으로 끝없이 가라앉다가 무언가 하나의 '밧줄'을 다잡는 그 부근에서 심리적 반전과 함께 끊어버리지요. 주인공의 단단한 '갑옷'이 허물어지는 단 두 줄의 묘사가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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