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임영기
작품명 : 구중천, 독보군림
출판사 : 청어람
추석 연휴를 활용하여 뉴욕 출장을 다녀왔다. 그때, 우연히 손에 잡힌 소설이 임영기 작가의 구중천이었다. 그 전까지는 그런 작가가 있는지 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다. 뉴욕까지 날아가는 동안 3권까지 읽고 감탄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런 작가가 지금도 있다니...
나는 임영기 작가가 누군지 모른다. 몇살인지도 모르고 어떤 배경을 지닌 인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져갔던 다섯 권의 소설을 읽고나서 - 더 읽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지만 - 과연 이 작가가 어떤 사람일까 무척 궁금해졌다. 그래서 조심스레 추리를 시작했다.
1. 임영기 작가는 한자로 된 사자성어에 무척 밝다.
나도 만 네살이 될 때부터 천자문, 동몽선습, 소학을 배우며 자랐기 때문에 웬만한 한자숙어에는 달통했다고 생각했지만 이 작가에는 족탈불급이다. 사자성어 관점에서 볼 때 두 가지 추측이 가능하다.
첫째, 한자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다.
둘째, 임영기 작가의 소설은 본인의 창작이 아니라 '고룡' 혹은 '양우생' 작품의 번안 형태의 소설이다.
소설 속에 물각유주(物各有主)라는 귀절이 나오는데 우리는 흔히 물유각주(物有各主)로 알고있지만 한문적 표현으로는 물각유주가 더 정확하다. 이 점에서 번안소설이 아닐까 의심하기도 했다.
2. 우리말 어법 구사가 정확하고 문장이 정치(精緻)하다.
상당한 글쓰기 훈련을 받지 않고서는 이렇게 정확하고 정치한 문장을 구사하기 어렵다. 바꿔 말하자면 임영기 작가는 장기간에 걸친 글쓰기 훈련을 받은 사람이다.
3. 단어 구사력이 뛰어나다.
5권 초반에 쌍쾌를 일러 "그래도 쌍쾌가 누군가? 이지렁스럽기로는 북경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운 부라퀴가 아닌가."라고 표현하고 있다. 부끄럽지만 '이지렁스럽다.'에 이르러 국어사전을 찾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십오년 만에 처음으로 국어사전을 찾았다. 놀라웠다.
4. 인물의 캐릭터가 살아있고 그들의 생각과 행동에 상당한 개연성이 있다.
이상의 관점에서 과연 임영기 작가는 어떤 사람일까 추측해 보았더니 다음과 같은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다.
양우생, 고룡의 작품을 번안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번안 소설이 가지는 어법상의 혼란, 우리말 단어 선택의 억지스러움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한문 실력은 뛰어나고 문장 구성에 유장함이 배어있으며 놀라운 우리말 단어 실력을 자랑한다.
임영기 작가의 나이는 40대-50대 정도. 대학에서는 한문을 제대로 배울 수 있는 전공. 예를 들면 동양사학과, 한문학과, 동양철학과 등을 나왔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고, 글쓰기 훈련이 상당한 수준으로 되어있는 것으로 볼 때, 무협계에 등단하기 전에는 번역가, 수필가, 일반 소설가, 혹은 드라마 작가 등으로 활동하던 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추측은 다 부질없는 짓이다. 하지만 몰입해서 읽을 수 있는 소설, 삼족오, 쾌검왕, 일부당천, 구중천, 독보군림 등이 있다는 사실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Comment '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