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항상
작품명 : 고교 평정화
출판사 : 로크미디어
1
수많은 장르 글들이 나왔다 곧 잊혀진다.
어떤 글들은 나오자마자 묻히기도 하고, 어떤 글들은 그 가치를 채 인정받지도 못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그 수많은 글들 중 독자는 무엇을 읽을까 항상 망설인다.
장르 글의 출판수 만큼 다종다양한 정보는 인터넷 연재란을 항상 주시하는 독자가 아니면 알기 어렵다. 그런 독자들마저도 자신이 읽지 않은 글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 수가 없다.
영화나 음악 등 타 장르에 비해 열악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평가시스템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웹진이 출범하면 뭔가 달라지리라 간절히 기대하고 있다.)
고무판 감상란에는 하루에 보통 10여 개 정도의 감상 내지 추천글이 올라온다. 하지만 감상란의 정보는 대부분 글 올린 분들의 주관적 선택에 머물 뿐이다. 그나마 해당 작품에 대한 정보량이 부족하면 어떤 글인지 직접 보기 전에는 알 도리가 없다.
4권 출판이 준비 중인 “고교 평정화”에 대한 감상글은 이제까지 딱 세 번 올라왔다. 그나마 감상글 하나는 올리신 분이 지워버렸다.
이글을 정말 재미있게 읽은 사람 중 하나로서 안타깝기 짝이 없다.
2
“고교 평정화”는 고무판의 작가연재란에서 ‘그자리’란 닉으로 연재하시는 항상님의 다섯 번째 작품이다.
데뷔작인 "닥터(그자리/자음과모음/2003)"는 판타지이고, “도살도법(그자리/자음과모음/2004)”과 “무당전설(항상/로크미디어/2004-2005)”, “강호는 아름다워(항상/랜덤하우스중앙/2005)”는 무협이다.
장르를 넘나들며 글을 쓰는 작가는 그리 많지 않다.
장르간 거리가 현저히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진입장벽은 존재하기 때문이다. 장르에서 요구하는 바가 조금씩 다르다고 할까? 무협이 강한 남자들의 힘을 보기를 원한다면 판타지는 자유로운 상상력을 기저에서 원한다. 그 차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글을 쓰는 건 생각처럼 쉬운 건 아니다.
현대물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세상이 배경이 되기 때문에 용어나 설정을 쓰는데 훨씬 자유롭다.
대신, 독자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세계를 배경으로 다루면서도 신선함을 주어야 하기 때문에 의외로 까다로운 장르라 할 수 있다.
“고교 평정화”를 읽으며 장르 작가로서 네 편의 글을 다뤄 본 항상님의 솜씨가 빛을 발한다 느꼈다.
장르의 기본 - 만고 내 생각이다. 장르 작가는 책을 든 독자들을 첫 장면에서 신비감에 빠뜨려야 한다. 현실과는 뭔가 다른, 그래서 뭔가 재밌는 일이 벌어질 것 같은 기대감을 솔솔 주어야 한다. -을 잘 지키면서도 현실감 넘치는 이야기를 만들었다.
3
주인공 동빈은 나이는 10대지만 어릴 때부터 국가에 의해 키워진 살인병기, 특전사 출신의 제대군인이다. 비밀 코드 770으로 분류되던 뼛속까지 군인정신으로 물든 이 친구가 학교폭력에 아들을 잃은 장군의 양아들이 되어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다. 물론, 장군은 동빈으로 하여금 학교폭력을 응징할 내심을 갖고 있다.
장르는 결국 재미있는 이야기라야 빛을 발한다. 그렇기 때문에 얼마나 재미있는 이야기가 이어질 것인가하는 기대감을 초반에 주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이 점에서 “고교 평정화”는 탁월하다.
이야기를 이끄는 주인공 동빈은 살인병기로 키워지긴 했지만 비정한 살인자는 아니다. 민간인과 군인을 대할 때의 자세가 거의 세뇌수준으로 철저하게 구분된 진짜 군인이다. 이것이 이 글에 묘한 리얼리티를 준다.
주인공 캐릭터를 이와 같이 설정함으로써 독자는 주인공에 대해 아무 거부감 없이 글에 몰입할 수 있다. 비정한 살인자의 고교 일진 닥치는 대로 죽이기를 상상한 독자라면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1권 내내 동빈은 학교폭력을 징치하는 해결사가 아니라 별 볼 일 없는 학교로 치부되는 명성고등학교의 얼치기 짱 정한수에게 매일 쫓기게 된다. 학생에게는 주먹을 휘두를 수 없다고 장군이 엄명을 내렸기 때문에.
이 장치가 슬슬 답답해질 때쯤 동빈의 활약이 시작된다.
상대는 조폭.
학생이 아니라 맘껏 활극을 펼친다. 시원하기도 하지. 바로 여기서 1권이 끝난다.
스포일러가 심할 수 있기 때문에 스토리에 대해서는 더 말할 수 없지만 이 글은 권 배분이 정말 잘 이루어진 글이다.
특히 3권의 마무리에 감탄한다.
3권을 읽은 사람은 여자 친구를 위해 폭발하는 동빈을 보고 싶어 4권을 읽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감초처럼 등장하는 중학생 캐릭들이 너무 귀엽다. 이글을 맛깔 나게 하는 일등공신들. 동빈을 짝사랑하는 선아를 제외하곤 아직 이름들도 없지만.
“고교 평정화”를 읽은 사람은 안다.
‘졸라 빠른 고딩’이 얼마나 웃긴 말이 되는지.
4
장르는 재미있는 이야기이면 뭐든 잘 팔릴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독자 대중은 익숙하지 않은 이야기엔 손이 잘 가지 않아 무협, 판타지, 게임 등과 같이 정착된 장르가 아니면 잘 읽지 않는다.
스토리나 설정 자체에도 그런 암초들은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현대 배경’이다.
다행히도 “고교 평정화”는 현대 배경이긴 하지만 주무대가 학교, 즉 학원물이다.
하지만 이 또한 하나의 장벽으로 작용한다. 성인독자들은 학원물이라면 대부분 외면하기 때문에.
이 감상글은 바로 그런 성인들을 위해 쓰고 있다 할 수 있다.
진정 “고교 평정화”를 즐기기 위해선 군대에 대해 잘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군필자와 미필자의 차이.
물론 생각처럼 심하지는 않다.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분도 군대에 대해서는 웬만큼 안다. 한국 사회는 학교 교육에서 이미 군대문화를 배우기 시작하기 때문에.
조회시간이나 체육시간에 제식훈련 하듯 줄 맞춰 서고 번호로 수 세기, 복명복창, 얼차려 등 대부분의 군대문화를 고등학생 정도면 거의 겪어보게 된다.
하지만 그래도 모르는 게 있기 마련이다.
군대에 다녀온 사람만이 아는 그런 부분. 같은 경험을 공유한 자만이 마주 보며 염화미소를 지을 수 있는 그런 게 어디나 꼭 있기 마련이다.
전술했다시피 “고교 평정화”의 주인공 동빈은 군인이다.
민간인 신분이 되어 고등학생인 주제에 동원훈련도 뛰지만 그의 정신세계는 아직까지 군인의 그것이다. (3권에서 조금씩 민간인으로의 변화 기미가 보인다. 이게 또 재미있다.)
군기 빡 들어 있을 때의 이등병 시절, 휴가를 나오게 되면 그 사람은 모든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어디에서 군대 버릇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자칫 실수하면 사람들의 왁자한 웃음거리가 되어 버린다.
휴가 가 있을 때 보다 내무반에 돌아왔을 때가 더 편한 그런 기억들이 군필자라면 다들 한 조각씩 있을 것이다.
그런 기억의 파편들을 되살려 주어 낄낄거리게 되는 단편들이 “고교 평정화”에는 잔뜩 있다.
이글을 보는 진짜 재미 중 하나랄까?
그래서 감히 군필자들께 “고교평정화”를 추천한다.
군대에 다녀오신 분들은 이 글을 학생 독자들 보다 훨씬 더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 것이다.
정말 오랜만에 긴 감상글을 쓰고 싶은 맘이 들만큼 “고교 평정화”는 짱 재미있었다.
아직 못 보신 분들은 꼭들 보시길!
덧) 고교 평정화의 표지다.
꼭 쥔공 같은 포쓰를 풍기는 대머리 소년이 쥔공 동빈이라 착각하진 마시길.
글에 따르면 동빈은 나름대로(?) 미소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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