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다른 사람들과 같이 나누고 같이 좋아하고 싶은 작품이 있을겁니다. 제겐 바로 이재일님의 쟁선계가 그런 작품입니다. 하이텔에서 처음 쟁선계를 보기 시작했을 때부터 쟁선계는 이미 이전의 나온 어떤 작품보다도 뛰어난, 또한 앞으로 나올 어떤 작품보다도 더 뛰어날 작품으로 제게 자리매겨졌습니다.
쟁선계가 3권까지 출판이 되었습니다. 하이텔에서 전개된 얘기의 반 정도를 따라잡은 것 같군요. 이미 써놓은 이야기인데도 출판속도는 극악하다고 말을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출판된 쟁선계를 보면 극악한 출판속도가 이해가 갑니다. 이 사람이 이 짓 하느라 그만큼 시간을 잡아먹었구나 하구요. 큰 뼈대는 바뀌지 않았지만 각 사건의 이야기들은 상당히 바뀌었습니다. 왜 바꾸었을까? 그냥 그대로도 이미 훌륭한데 라는 아쉬움이 들 만도 합니다. 처음에 읽었던, 그리고 그동안 수없이 컴퓨터에 저장된 쟁선계를 다시 읽어면서 친숙했던 사건, 이야기들이 하루 아침에 바뀌었으니 사실 아쉬웠습니다. 마치 첫사랑의 여인이 얼굴 확 바꾸고 나타난 것 같은 배신감일 지도 모릅니다. ^^ 하지만 바뀐 얼굴도 충분히 이쁩니다. 다시 여러 번 찬찬히 읽어보면서 새로 정을 붙이고 있는 중입니다. 흘러간 과거가 그리우면 다시 컴퓨터 내의 파일을 불러내서 읽어보기도 하구요.
그냥 단순히 이야기가 바뀐 것 뿐만이 아니라 연재본에서 약간 이상했던 부분들 -처음 읽을 땐 전혀 이상한 줄 몰랐지만 수없이 반복해서 읽으면서 깨달은 부분들 -이 많이 보강되었습니다. 각 인물들의 성격들이 더욱 더 정교해지고 현실적이 되었습니다. 개방방주 우근이나 신무전의 대제자 도정의 성격이 그런 경우에 해당될 테죠.
아직 연재본을 접해보지 못하신 분들에게 제가 느낀 쟁선계의 장점을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첫째는 모든 부분들이 살아있다는 겁니다. 많은 무협소설들이 줄거리 중심의 이야기로 진행이 됩니다. 그래서 형편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특성들이 그렇다는 이야깁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이런 소설들은 따라 읽으면서 다음 부분이 궁금해지고 전체적인 줄거리내에서 각 이야기들이 힘을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쟁선계의 경우는 조금 다르게 됩니다. 각 이야기들이 전체 설정이나 줄거리와 상관없이 그 자체만으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보고 싶을 땐 처음부터 다시 읽을 필요가 없이 중간의 아무 내용이나 잡아서 읽어봐도 즐거울 수 있는 소설이 바로 쟁선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미덕을 갖추고 있는 소설들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단연코 쟁선계 이전의 무협소설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미덕입니다.
둘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줄거리들과 각 장면들이 꽉 짜여져 있다는 겁니다. 각각의 장면들에 너무 치중하다보면 너무 장황해지거나 느슨해질 수가 있는 데 쟁선계에서 그런 부분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한 문장 한 문장은 멋있는 데 읽다보면 독자들이 지치는 그런 소설은 아니라는 거죠.
셋째는 전투장면들의 강렬함입니다. 쟁선계에서 가장 깊이 기억이 남는 장면들이기도 하구요. 기억에 떠오르는 장면만 해도 진금영과의 수상전, 왕삼보와 강이환의 대결, 대적용과 과추운의 대결, 제갈휘의 사투, 우근과 남궁월의 대결들, 그리고 석대원과 금청위의 대결까지... (그 외에도 많이 더 있지만 다 주절주절 적을려니 미안해서 그만둡니다.) 그 내용과 함께 마치 눈으로 보는 듯한 강렬한 이미지들. 감탄이 절로 나오더군요. 사실 출판본에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들이 바뀐 전투 장면들이었습니다. 전에 읽었던 기억과 이미지를 그대로 간직한 채로 새로 바뀐 장면들을 보니 웬지 아쉽더군요. 소중한 기억을 뺏겨버린 것 처럼요. 하지만 객관적으로 말하면 바뀐 장면들에서도 여전히 재일님의 글솜씨는 드러납니다. 여전히 강렬해요. 저의 아쉬움을 완전히 없애버릴 만큼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물론 힘든 일이겠죠. 이승엽이 다시 홈런 54개를 친다고 99년 만큼이나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줄 수 있겠습니까? 한 70개 치면 모를까... ^^ 어쨌든 연재본을 안 보신 분들이라면 출판본을 본 후 연재본들에서의 장면을 찾아보고 비교해보시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 될겁니다.
소문 난 집 잔치 먹을 거 없더라는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도 물론,제겐 안타깝지만, 있습니다. 독자들의 취향 차이겠지요. 하지만 누군가 무협소설을 폄하한다면 전 단연코 쟁선계를 권하겠습니다. 이런 소설도 있다라구요.
많은 사람들이 저와 같은 즐거움을 가질 수 있으면 하는 바램에서 몇가지 감상을 주절주절 읊어보았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Commen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