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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추천에 관련된 감상을 쓰는 곳입니다.



작성자
Lv.1 여광여취
작성
03.04.17 09:45
조회
1,586

80년대에 바치는 사랑 고백

  좌백님은 천마군림을 통해 그의 뿌리가 김용 등의 중국무협의 고상한 전통이 아니라 사마달, 와룡강같은 80년대무협임을 고백하는 것 같습니다.

  무협소설이란 장르문학이 보유하고 있는 다양성은 어떤 의미에서는 소림과 하오문 사이의 관계만큼 이질적입니다. 강호의 무수한 방파처럼 무림소설의 종류 또한 그 못지 않습니다. 김용 선생처럼 유불선의 깊은 학문적 바탕 위에서 성스럽고 숭고한 인간미를 보여주는 현문의 작품세계가 있는 반면 고룡이나 와룡생처럼 추리소설로서의 날카롭고 빠른 초식을 구사하는 작품도 있지요. 그리고 그 다양한 작품들 속에 80년대 한국무협의 음탕하고 악랄한 유파가 있습니다.

  음악에서 락 혹은 메탈이란 장르는 인간의 원초적인 성욕과 파괴욕을 발산하면서 인간의 감성을 풀고 보다 높은 단계로 승화시켜 줍니다. 마찬가지로 무협에는 성스럽고 고고한 소림도 있지만 지저분하고 무례한 개방이나 잔혹한 마교도 있습니다. 백상으로 상징되는 구도풍의 작품들이 현화산이나 곤륜 등의 현문으로 묘사 될 수 있다면 엽기적이고 풍자적인 작품들이 개방으로 상징할 수 있고 천마군림은 말 그대로 마교로 상징될 수 있는 작품이라 할수 있겠죠.

  80년대 침침한 형광등 불빛아래에서 숨죽이며 보던 무협지는 칠흑같이 어두운 지옥같은 곳에서 유부의 깊은 밑바닥에서 들려오는 듯한 끔찍한 목소리를 내는 절대 마웅과 살육과 강간을 손바닥뒤집는 것보다 쉽게 하는 악종들이 미쳐날뛰는 세계를 창조해 내었습니다. 출생부터 이미 피와 음욕으로 뒤덮힌 주인공은 다행히 부활을 거듭하며 업그레이드되어서 겨우겨우 해피엔딩을 가져오긴 하지만 언제나 내 기억에는 주인공이 최후에 익히는 소림 무당의 현문정종의 무공보다는 초기에 잡기로서 배운 배교의 사이한 술법과 색마의 섭혼술, 색공들이 더 인상적으로 남았습니다. 그리고, 지옥보다 더 처참하고 악령보다 더 무서운 이런 세계가 영화화된다면 과연 어떤 스타일의 영화가 나올까 궁금해 했었죠.

  소위 말하는 포르노무협은 확실히 얄팍한 장사속이지만, 그렇더라도 성욕과 성생활은 극히 일부의 사람을 제외하곤 목사에서 대통령까지 누구나 영위하는 인간의 가장 보편적인 라이프스타일입니다. 비록 끊임없이 금기시되고 감추어져오지만 대학교수들의 점심식사모임에서 노가다판의 술자리에 이르기까지 가장 흔한 농담거리가 음담패설이란 걸 생각해보면 무협에서 색마가 가장 흔한 소재 중 하나라는 사실이 충분히 이해될 수 있습니다. 천마군림에서는 마도천하를 살아가는 주인공이 색공을 익히는 것을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라고 말하죠.

  '갱스 오브 뉴욕'에서도 묘사되었듯이 원래 우리네 삶은 폭력이 지배해왔습니다. 19세기 중엽의 뉴욕은 칼이 모든 것을 정당화시켜주던 강호랑 크게 다를 바 없었으며 펄벅의 대지에 나오듯이 중국은 20세기초까지도 마적단이 공공연한 지배자인 마을이 흔하던 사회였습니다. 강호란 점잖은 검선들이 도를 닦는 곳이 아니라 돈과 권력에 눈이 뒤집힌 인간들이 힘을 겨루며 그 중에서 협을 찾는 일부 사람들이 있던 곳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사실 그런 사회상을 보여주는 역사적인 작품인 수호지야 말로 최고의 무협소설이죠.

  이제 좌백은 그가 입버릇 얘기하던 80년대 무협(혹은 고전무협)의 계승을 완성시키려하고 있습니다. 이미 금강불괴에서 시작되어 독행표 등을 거치며 천마군림에 이르러 그 꽃을 피운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일찍이 마도천하가 이루어진 속에서 시작되는 주인공의 악전고투는 천신행 등의 작가에 의해 80년대에 이미 몇몇 작품에서 다루어진 적이 있지만 천마군림에서는 그런 전통을 계승하고 그것에 개연성과 뛰어난 문장력을 바탕으로 한 거대한 스펙타클을 도입하여 톨킨의 중간계와도 같은 중원을 만들어내었습니다. 그곳은 동아시아이면서 동아시아가 아니죠. 말그대로 중국과 시베리아와는 전혀 상관없는 환타지의 공간입니다. 그곳에서 강호인들은 사람들을 죽이고 섹스하고 또 죽이고 섹스합니다. 거대한 야만의 세계죠.

  물론 천마군림은 대개의 에피소드가 다 어디서 본 듯한 것입니다. 어쩌면 하품이 나올정도로 전형적입니다. 북해빙궁이니 천마라는 호칭부터가 80년대 선배들의 작품에서 그대로 인용한 것이죠. 마치 장대한 오마쥬같습니다. 그러면서도 천마군림은 좌백이란 작가의 능력이 녹아있습니다. 이 대작이 용두사미가 되지 않길 바랍니다.

덧붙여서 1. 명왕유명종이니 미륵환희종이니 하는 마교의 여러파벌들이 보다 자세히 소개되었으며 하는 아쉬움이... 이화태양종만 집중적으로 나오는 것은 좀 아쉬워요. (물론 지면의 제약이란 문제가 있겠지만...)

2. 절대무경의 계승자 15인과 천적관계인 절대파경의 계승자인 주인공이 대결하는 소설을 인상깊게 본 기억이 있는데 혹시 제목을 아시는 분을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강시등이 나오고 배후조종하는 절대마인이 나오는 걸로 봐서 금강님의 작품인 것 같은 기억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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