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이 밝았다. 이걸로 나는 이제 반오십이 되었다. 새파랗게 젊은 나이지만, 이때쯤 되면 나름대로 내가 걸어왔던 오덕 라이프에 대해서 되돌아볼 시간을 갖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사실 글이 안 써져서...아무튼, 한번 되돌아보고자 한다. 나의 오덕 라이프를.
내가 판타지 소설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마계마인전이었다. 초중고교시절에 동창생이었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기억도 못할 정도로 흐린 나이지만, 그것이 나의 판타지 세계로 이끌었던 시초였다는 것은 확연하게 떠올릴 수 있다. 그것을 추천해준 사람이 다름아닌 나의 다섯살 연상의 형이라는 것도. 그때가 아마 초등학생이었을 것이다. 형은 어디서 책을 들고오더니 나에게 던져주었다. 그것이 마계마인전이었다. 동화에서 갓 벗어나 아직 동심을 간직하고 있던 나에게 던져준 책이 바로 그것이었다. 다들 알겠지만 판타지 소설에서 폭력이 빠질수 없다. 그때 형은 나에게 책을 던져주었을 뿐이었지만, 그때 나는 동심을 유린당했다. 무엇을 바라랴. 나에게 마계마인전을 던져준 형은 그 이전에도 나에게 피아캐롯2를 깨라면서 던져준 적이 있었다. 잠시 주제를 벗어나자면, 피아캐롯은 당시 초등학교 삼학년이던 나에게 지대한 충격을 주기 충분한 것이었다. 피아캐롯의 히로인중 아즈사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진엔딩으로 가면 H씬이 나오지 않았다. 공략본을 보면서 열심히 플레이하던 나는 결국 진엔딩을 보고야 말았고, 형이 진심으로 빡친 모습을 처음으로 보았다. 참고로 형은 모태신앙으로서 신실한 독자요 착한 형이었는데 그전까지 나에게 화를 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나는 형이 말했던 베드엔딩을 보면서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아, 이런 이유였구나. 그 외에도 그는 나에게 건버스터의 주인공이 대차게 상의탈의를 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단지 산만한 꼬맹이었던 나를 에로 꼬맹이로 만들어버렸다. 아무튼 그는 정말이지 선구적인 사람이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좀 증오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마계마인전. 일본의 미즈노 료라는 사람이 쓴 글을 번역해서 나온 글이었다. 무척이나 꾸리꾸리한 표지의 글이었다. 장담하건데 초등학생이 읽을 책과는 거리가 매우 멀었다. 그러나 형의 영향으로 나이에 맞지 않게 매우 조숙했던 나에게는 꽤나 읽을만했을지도 몰랐다. 아무튼 나는 책을 읽었고, 그리고 신세계를 보았다.
낭자하는 선혈과 창과 칼. 그리고 마법의 향연. 그리고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빈약한 슴가의섹시아이콘디트리트는 어린 소년의 가슴에 꿈을 불러일으키게 하기에 무척이나 충분한 것이었다. 고전부심일수도 있겠지만, 요즘 소설처럼 검기검강 하면서 창칼을 휘두르고 혼자서 백만대군을 쓸어버리며 드래곤을 이쑤시게 같은 걸로 무찌르는 주인공이 나오는 현 세태의 판타지만을 보아온 사람들은 그 후진고전적인 멋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시골의 촌뜨기 검사였던 판. 그리고 은인자중하던 슬레인. 그리고 매우 한국스러운 이름을 가진 킴이 성녀의 딸을 찾으러 떠나는 모험. 그 와중에서 만나는 도적과, 회색의 마녀 칼라. 그리고 깊은 숲속의 하이엘프이자 정령사이자 검사이며 무척 아름답던 나이도 많던 디트리트가 펼치는 모험.
일권의 끝 무렵, 성기사의 아들이었던 판은 성국의 왕에게 인정을 받으며 전쟁에 참가하는 원숙한 전사가 되었고, 슬레인은 탑에서 히키코모리지내는 현자 워트에게 인정을 받으며 차기 현자로 부상하게 된다. 디트리트는 이권때부터는 정령왕을 다루더니, 심심하면 판이 디트리트에게 의지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맨 처음에는 별 볼일 없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주변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면서 강해지는 것이다. 정말이지 멋졌다. 그리고 마계마인전을 덮으면서 나는 새로운 소식을 알게 되었다. 마계마인전은 칠권으로 끝이 아니며, 수많은 책들이 더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역시 그 소문도 형을 통해 알았다. 그리고 책은 내가 모으기 시작했다. 책은 형이 더 재미있게 읽었다. 그는 나에게 돈을 주지 않았다.
마계마인전을 보고 난 뒤에 내가 찾았던 것은 로도스 전설이었다. 마계마인전 이전의 영웅들에 대해서 쓰여진 책이었다. 거기에는 무척이나 걸출한 등장인물이 나왔다. 음험한 현자 워트와 젊은 베르도, 후안. 히로인 포스로 따지면 결코 뒤지지 않는 니스. 그리고 고전 무협지에 나온 등장인물을 그대로 판타지 버젼으로 옮겨놓은 듯한 나셀까지. 사실 재미있기로는 마계마인전보다 더 재미있게 보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로도스 전설에 대한 나의 이미지는 별로 좋지 않다. 왜냐하면 내가 결코 죽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여 감정이입을 했던 등장인물이 무척이나 허무하게 죽었기 때문이다. 권 말미에서. 그게 사권째였다. 일본에서는 오권까지 책이 나왔고, 한국에는 영원히 번역되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사실 사권이 완결이긴 했다. 미즈노 료 이 나쁜놈가 책을 사권까지 내고 완결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한 미즈노 료는 결국 오권째를 내놓았고, 나는 아직까지 그 책을 읽어보지 못했다. 일본어도 하고 자금도 나름 있는 지금 읽으려면 못읽을것 없건만 굳이 보지 않고 있는 이유는 추억은 추억 속에 묻어두고 있을 때가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아무튼 소설이 등장인물이 죽음으로서 마무리된 것을 보고 나는 무척이나 충격을 받았다. 똥을 싸고 휴지로 닦았는데 닦아도 닦아도 검은것이 계속 묻어나오는 것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덕분일까. 소년은 무척이나 타는 듯한 갈증에 휩싸였다. 당분간은 괜찮았다. 왜냐하면 그 당시 tv에서는 피구왕 통키, 대운동회, 쥬라기 월드컵, 태양의 기사 피코, 슬레이어즈 등의 걸출한 대작들이 방영되고 있었다. 당시 초등학교 한 반마다 나통키, 백두산, 민태풍, 타이거 등으로 이루어진 드림팀이 있었던 시대였다. 잠시 갈증을 잊기에는 무척 충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이었었고, 그래서 소년은 새로운 성수를 찾았다. 그리고 그 성수는 소년에게 마계마인전 이상가는 울트라 캡숑 펀치를 대뇌 전두엽에 가하기 충분한 것이었다.
그건 바로 아린 이야기였다.
그래, 바로 그 아린 이야기말이다.
그게 두번째 소설이었다. 어느정도 소설을 읽어본 사람은 누구나 알고, 안 이상 차마 까지 않을 수 없다던 그 소설 맞다. 나는 아린이야기를 두번째 나의 독서작으로 선정했다.
지금에 와서야 무슨 이런 소설이 있나 외치며 현 소설계의 실태에 대해 개탄을 마지 않았을 테지만, 그 당시에는 열라 재미있었다. 기억이 무척이나 애매하지만 그때 당시에 내일은 챔피언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호야인지 하는 놈이 “매그넘! 토네이도!”하면 분명 빈사 일보직전의 미니카가 빙글빙글 돌았다. 그것을 보고 있는 소년들의 가슴속에 있는 모터도 빙글빙글 돌았다. 그 당시에 미니카 하나 없는 놈은 시대에 뒤떨어진 놈이었고, 촌놈이나 다를바 없는 취급을 받았다. 그리고 그때 나는 아린이야기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정말이지 재미있게 보았다.
환생! 환생하고 나니까 드래곤이네? 워메 좋은거. 폴리모프하니까 절세미녀야! 존나 쎄에에!
초등학생이라서 그렇게 느낀 것만은 아닐 것이다. 나보다 다섯살 많던 고등학생 형도 다음권 없냐면서 나를 재촉했다. 그리고 나는 대여점의 단골손님이 되었다.
변명을 하자면 아린이야기에 나오던 마법은 마계마인전이나 로도스 전설에서 나오는 허접한 마법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펙트가 끝내줬다. 파이어볼 하면 수백명이 불탔다. 위기에 몰렸을때는 또 어떠한가. 본신으로 현신해서 브레스 한방 뿜어주면 게임 셋이었다. 검사는 어떠한가. 마법에 질수 없다는 듯이 검기를 뽑아올렸다. 판의 마법검따위는 범접할수 없는 힘이었다. 그 반탄력을 받아 나는 아린이야기의 빠돌이가 되길 마다하지 않았다. 아마 미쳐버린 엄마와 싸우다가 무협에 가지 않았더라면 계속 봤었을 것이다.
이제와서 말하는 것이지만 뜬금없이 무협에 간 건 어린마음에도 참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그 당시 작가가 아마 묵향을 보고 몸쓸 영감을 얻은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아린이야기를 보던 중 나는 어떤 이야기를 들었다. 그건 나와 같은 동류들이 모인 곳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 당시의 유조아, 삼룡넷, 라니안 등의 사이트가 그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판타지의 두번째 행보를 걷게 된다.
쓰다보니 지쳐서 일단 여기까지. 개인의 넋두리와 같은 글이어서 굳이 올릴 것은 없을것도 같지만 쓰다보니 왠지 누군가는 보아주었으면 해서 올려봅니다. 재밌게 봐주셨으면 좋겠네요.
Comment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