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하나
역 앞에 며칠 전부터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 가게가 있었다. 건축설계가 직업인지라 남들보다 눈 여겨 본 탓도 있었겠지만, 고급 치장재의 깔끔한 분위기에 자꾸만 눈이 가게 되었다. 무슨 고급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라도 들어오나 보다 했다. 공사는 하루가 다르게 진행되었고 어느 날 가게 앞에는 점포의 오픈을 알리는 플래카드가 붙었다.
“올바른 식품의 선택, 웰빙 라이프의 시작입니다.”
어느덧 성대한 오픈식을 출근길에 보게 되었고, 그 날 저녁에는 부리나케 달려가 매장을 남들과 다른 눈높이로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실은 내부 인테리어에 더 관심이 있었으므로 마감재를 손으로 만져가며 이쪽저쪽 보다가 우연히 눈에 들어온 가격표에 내 눈을 의심했다.
“무농약 복숭아 2개 16,000원.”
# 이야기 둘
일본의 와세다대학교에는 유학생만을 대상으로 하는 ‘다음 세대의 화학’이라는 교양과목이 있다. 이 과목이 인기가 있었던 것은 기말고사가 없다는 것과, 마지막 수업에는 교수님이 저녁을 산다는 것 때문이었다. 이번 학기에는 중국 학생들이 많아서 결국, 신주쿠 뒷골목의 중국식당에서 교수님과 약 10여 개 국에서 온 유학생들이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왁자지껄한 중국인, 기도하지 않은 고기는 먹을 수 없다며 채소만 먹던 아랍인, 나보다 젓가락질을 더 잘하던 미국인이 섞여 정신 없던 시간이 끝나가던 때에 놀라운 일을 보게 되었다. 돼지기름이 둥둥 떠있는 중국음식 찌꺼기를 교수님이 다 긁어 드시는 것이 아닌가!
“선생님 돼지기름은 건강에 좋지 않아요.” 하는 중국유학생의 질문에 대한 노교수의 답변은 간단했다.
“내 전공이 폐수 필터링인데, 아직 인체보다 더 훌륭한 정화장치를 개발하지 못했다. 먹고 소화시키면 비교적 정화하기 쉬운 물질로 변해서 나오니까 될 수 있으면 안 버리고 먹으려 한다.”
# 웰빙
먹고 살만 하면 나 자신에게 관심을 돌릴 여유가 생기는 것은 구태여 누구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쉽게 이해가 가는 말이다. ‘웰빙’은 갑자기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물질적 풍요에 자신의 행복을 중시하는 웰빙족은, 일단 먹고사는 게 해결된 여러 나라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자본주의적 실리와 보헤미안의 정신적 풍부를 즐긴다는 ‘보보스(Bobos)족’, 자신의 건강이 모든 선택의 중심인 일본의 ‘겐코우조쿠’ 등과 달리 우리의 웰빙은 어쩐지 밸런스가 깨어진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기껏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웰빙은 명품 추리닝 입고, 비싼 젠 센터에 가서 요가하고, 피트니스 센터에 가서 ‘몸짱’을 목표로 칼로리를 태우는 것이다. 이러한 혼돈 속에서 우리 소시민들이 겨우 얻어낼 수 있는 웰빙이란 패스트푸드 업소에 들어가도 약간의 돈을 더 지불하면 더 건강에 좋아 보이는 최소한의 ‘차악(差惡)’이라도 선택해야 마음이 놓이는 것이다. 그러니 웰빙문화와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패스트푸드라도 웰빙을 구겨넣어야 안심이 되는 것이다.
‘행복한 삶’이라는 개인가치로부터 출발한 웰빙은 개인의 몸과마음에서 가정과 사회로 연결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런 개인문화가 기업문화로 이어지면서 우리시대 ‘기형적인 웰빙’으로 이어져 버렸다. 자신만을 생각하는 자기 배타적이고 기형적인 우리 사회의 웰빙을 보며 문득, 노 교수의 말 한 마디가 떠오른다.
“행복은 하드웨어(물질)로 되는게 아니고 소프트 웨어(마음)로 완성된다.”
by 정용진 (미디어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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