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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담

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소설같은 삶

작성자
Lv.96 강림주의
작성
13.10.06 23:16
조회
942
제 외할머니는 어릴 때 부모가 이혼을 하면서 아는 한 여자에게 강제입양됬습니다. 아이를 받은 여자는 선천적 불임이였기에 한 일인대 입양이라 하기도 좀 어렵고 그냥 애완동물 버리는 김에 딴집 가져다주듯 딴집에다가 가져다둔 것 뿐이였습니다. 인생을 제법 불행한 방법으로 시작한 셈이지요.

그런대 이 계모가 그래도 친절했냐면 그건 아니고 무슨 이야깃속 계모처럼 아주 깐깐하고 가학적이였다고 합니다. 결벽증 수준으로 깔끔을 떨었는대 그 깔끔을 직접 떤게 아니라 이 여자아이를 시켜서 떨었습니다. 게다가 아주 가학적 기준으로 아이를 평가했으니 그리 행복한 삶은 아니였겠죠.

그러다가 한 교사와 결혼을 했습니다. 교사 역시 좀 깐깐하긴 했지만, 계모와의 본질적인 차이점이 하나 있었는대 바로 이 여자를 인간으로서 대우해줬다는 것이지요. 교사는 여자를 한 인간으로서 존중해주고 인간으로서 대우받아야하는대로 대우해줬습니다. 평생 제대로 된 삶을 모르고 살아오다가 만난 인생의 황금기였다 할 수 있겠습니다.

근대 이 교사가 대장암에 걸렸습니다. 교사는 병에 걸려서 고통속에 세상을 고래고래 저주했습니다. 매일같이 물똥을 쌌고 희번뜩거리는 얼굴로는 사람들을 보이는대로 조롱하고 욕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죽었는대 집에는 딱히 재산이랄게 남지 않았죠. 자식은 딸 셋에 아들 하나, 총 넷이였습니다.

결국 이 여자는 자식들에게 삶다운 삶을 살기 위해 억척스러워졌습니다. 정말 억척스러워졌습니다. 온갖 일을 다 했고 그 과정에 살림살이 팔기도 많이 팔았지만 남편과의 추억이 서린 집만큼은 절대 팔지 않았습니다. 결국 첫째딸은 서울대학교 인류학과에 입학했고 나머지도 제법 괜찮은 직장을 얻어 괜찮은 삶을 살았습니다. 최소한 당장은 그렇게 보였죠.

아들 한명은 사업병에 걸려서 사업을 했다가 말아먹었습니다. 돈이 없고 미래도 없으니 얼마나 절망스러웠던지 목 메달아 자살했습니다. 딸 한명은 이혼을 한 후 자식 둘다 양육권은 얻었지만 돈이 없어서 온갖 일이란 일은 다 하며 힘들게 삽니다. 딸 한명은 부유한 금융업자와 결혼해서 미국으로 자식 유학도 보내며 잘 사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남편에게 얻어맞으며 살았고 미국인과 바람나 이혼수속 밟는 중입니다. 서울대 인류학과에 입학했다고 좋아하던 첫째딸은 결혼한 후에 공무원 시험 준비하려 했지만 아내가 공부를 잘하면 남편 기가 죽는다고 걱정한 친어머니 방해때문에 공무원 시험은 포기하고 집안에는 가정불화가 가득합니다. 이 서울대 첫째딸이 제 엄마인대 다행히도 요즘은 가정불화도 많이 해결됬고 인류학 전공살려 북한학 연구중이며 탈북단체에서 일도 하고 그러며 열심히 잘 살고 있습니다. 사실 집에 일주일에 한두번씩만 들어오시고 잠도 하루에 여섯시간정도만 주무셔서 좀 너무 심하게 열심히 사는게 아닌가하는 걱정도 가끔 듭니다.

그렇게 살다가 나이를 먹더니 치매에 걸렸습니다. 치매라는게 제가 직접 곁에서 살면서 경험하니 경험하지 못했을 때의 배부른 말이 입에서 튀어나오지 않더라고요. 이해할 수 없는 분노와 공격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번은 냉장고를 닫지 않으셔서 계속 삑삑거리는 소리가 나는대, 여섯번 연속으로 들릴 정도면 누구라도 왜 냉장고 문을 닫고 있지 않나하는 의문이 들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다가가서 왜 냉장고를 안 닫으시냐고 물었죠. 평범한 질문이였고 딱히 감정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근대 그 질문을 들으시더니 갑자기 제 정신을 망치처럼 쾅하고 두들기는 아주 원초적인 분노를 불같이 쏟아내는 것이였습니다. 이 원초적인 분노라는게 정말 평범한 분노와는 다릅니다. 그냥 원초적인 힘이 있어서 사람 정신의 가장 깊숙한 곳을 갑자기 두들긴다는 말 밖에 못합니다. 게다가 그런 원초적인 분노를 아주 뜬금없이 들으니 순간 정신이 아찔해왔죠. 저는 그래도 좀 진정시키려고 그냥 질문한 것 뿐이라는 말을 했는대 외할머니는 계속 불같이 화를 내셨습니다. 냉장고 하나 자기 마음대로 못 여냐고요. 당연하지만 저는 냉장고 하나 자기 마음대로 못 열도록 강제한적 없습니다. 그 원초적인 분노와 억울함이 섞이니 순식간에 분노때문에 미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도 할머니한테 언성높이며 그냥 질문한 것 뿐이라고 말하고 그 후에 저랑 할머니랑 대판 다퉜죠. 나중에 알고보니 치매의 증상들중 하나더라고요.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제 외할머니를 기피합니다. 솔직히 기피할만 합니다. 그냥 시작부터 끝까지 계속 불운하기만 해왔던 외할머니 삶이 좀 소설같다는 생각도 들고, 결국 한 사람이 불운하게 살다가 뒤틀어진 인물로 변하고 나면 세상은 그 사람이 어쩌다 그리 뒤틀어졌나는 보지않고 뒤틀어졌다는 사실 하나만 보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서 한번 써봤습니다.

Comment ' 6

  • 작성자
    Lv.69 그믐달아래
    작성일
    13.10.06 23:23
    No. 1

    가까운 사람들일수록 치매 걸린 분들을 돌본다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합니다.
    저희 친할머니도 초기 치매증세에서 시작하여 서서히 진행되어 갔는데, 자식들 집을 이리저리 다니시면서 얼마나 말을 만들어내시고 이간질을 하셨는지... 원래 그럭저럭 괜찮은 관계였던 친척들 간의 관계가 완전히 엉망이 되어버렸죠.
    지금은 친척들이 서로 데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할머니 돌아가시고 나서 서로 진솔하게 대화를 하게 되면서 서로 많은 오해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조금씩 나아지고 있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오랜 세월을 그리해오니 완전히 좋아지지는 않더라구요.
    그래서 전 치매는 가족의 사랑으로 치료하거나 간호할 수 있는 병이 아니라 전문적으로 교육과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전문적인 기관에서 간호하고 치료하는 것이 가장 좋은 치료 방법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96 강림주의
    작성일
    13.10.06 23:37
    No. 2

    저 또한 동의합니다. 다만 지금 상황이 좀 복잡하게 꼬인 것이, 외할머니가 거의 발작수준으로 병원에 계시는 것을 거부하고 계십니다. 그 이유가 참 이해 안 가는 것이, 좋은 성씨와 나쁜 성씨를 정해두고 좋은 성씨를 가진 병원장이 있는 병원에만 있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 이 좋은 성씨를 가진 병원장이 있는 병원이 없는대 병원 말고는 갈 곳이 집 밖에 없습니다. 근대 할머니가 원래 계시던 집이 거의 움막수준으로 더럽고 열악해가지고 그 원래 집으로 돌아가면 안되는대 그곳에 무작정 돌아가겠다고 우기십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방을 하나 따로 구한 후 할머니가 저를 좋아하니 제가 그 집에 먼저 들어가 살며, 제가 살고 있으니 이 새로운 집에 좀 만족하라는 식으로 할머니를 그 집에 살게 하도록 얘기가 됬습니다. 참 정말 복잡하게 꼬였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곁가지옆귀
    작성일
    13.10.06 23:33
    No. 3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답글
    작성자
    Lv.96 강림주의
    작성일
    13.10.06 23:41
    No. 4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3.10.07 01:36
    No. 5

    진심으로 병원에 가시길 추천합니다. 치매 병간호에는 무조건적인 헌신과 사랑이 필요합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96 강림주의
    작성일
    13.10.07 15:43
    No. 6

    ㄴㄴ 병간호 아니에요. 매일 사람이 따로 와서 보살펴드리고 저는 그냥 할머니가 이 집에 계실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종의 나사같은거에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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