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대다수의 분들에게 십자군 하면 떠오르는건 이거일겁니다. 제국주의적 서방 세계가 나약하고 평화주의적이며 착하고 똑똑한 이슬람 세계를 괴롭히는 침략행위. 저번에 아들 부시가 이라크를 후드려 팰 때 반대파가 이라크 전쟁을 십자군 전쟁이라고 까기도 했었죠. 많은 사람들에게 십자군이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지를 잘 상징해주지 않나 싶습니다. 과연 현실도 그럴까요? 현실에 대해 얘기해보자면 필연적으로 종교전쟁이라는 개념을 함께 설명해야합니다. 둘 다 같은 것 같고 실제로도 같지만 따지고 보면 묘하게 다릅니다.
종교전쟁은 무엇일까요? 간단합니다. 다른 종교 믿는 놈을 후드려패고 죽이는게 바로 종교전쟁입니다. 근대 문제는 사람이란 동물이 이해타실을 참 따진단 말이죠. 그래서 대다수의 종교전쟁은 저 기본적인 명제를 살짝 뒤틉니다. ‘다른 종교 믿는 놈을 후드래펴고 죽인 다음 이왕 죽이는거 이것저것 뺏어온다’ 로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이렇게 명제가 뒤틀리고 나니 신을 거의 믿지 않는 사람들도 종교전쟁이 가진 실물적 가치를 서서히 깨닫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신을 믿지 않지만 신의 이름으로 자신의 욕망과 야망을 포장해 이교도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던 사람들을 갑자기 신경쓰며 후드려 패 죽인 다음 가진거 다 뺏어오는 경우가 많이 생기게 됩니다. 대다수의 경우 종교전쟁은 2번째 경우와 3번째 경우가 복잡하게 혼합 된 모습으로 나옵니다. 십자군전쟁도 크게 다를 것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십자군전쟁과 종교전쟁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엄밀히 따지면 없지만, 더 엄밀히 따지면 있습니다. 십자군 전쟁은 종교전쟁에 속하지만, 십자군 전쟁만이 종교전쟁인 것은 아닙니다. 즉, 종교전쟁은 십자군전쟁을 포함하는 더 큰 범위의 전쟁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다른 종교전쟁들도 참 많습니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서기 후 7세기의 이슬람 제국의 발호가 있겠지요. 이슬람 제국은 기독교를 믿는 이단부족들을 처죽이며 조로아스터교를 믿는 이단제국 사산조 페르시아를 처죽이며 기독교를 믿는 이단제국 비잔틴 제국을 빈사로까지 몰아넣었고 기독교를 믿는 서고트 왕국을 빈사로까지 몰아넣었습니다. 명분은 단 하나, 이단의 심판. 사실 끽해야 레반트 지역가지고 깔짝거린 십자군 전쟁은 저 원조 종교전쟁과 비교하면 정말 아가수준으로 자그마합니다.
이슬람의 발호는 필연적으로 타 종교와 문명의 멸망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슬람이 사산조 페르시아를 정복하며 유수한 역사의 페르시아 문명은 이슬람권에 강제적으로 편입됬고, 조로아스터교는 대제국의 국교에서 비참한 마이너 종교로 무자비한 추락을 겪었습니다. 제국의 수도 크테시폰은 불타 아름다운 궁전과 대도서관은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이슬람은 타 종교를 짓밟고 짓뭉갰고 불을 숭상하는 자들의 얼굴 앞에 초승달과 코란을 무자비하게 드리밀었습니다. 그것은 한 문명에 대한 폭력적 모독이였습니다. 그러니 네, 십자군 전쟁은 단순히 제국주의적 서방 세계가 나약하고 평화주의적이며 착하고 똑똑한 이슬람 세계를 괴롭히는 침략행위가 아닙니다. 이슬람 세계도 실컷 무자비한 침략자 놀이 했습니다. 애초에 이슬람세계는 아랍반도를 제외하면 다 그런 침략전쟁으로 얻어냈습니다. 그렇다면 십자군전쟁에 대해 이 정치적이고 프로파간다적인 역사관 대신 어떤 역사관을 가지느냐가 새로운 문제로 대두되겠지만, 그것은 다른 시간에 다른 글로 얘기해볼만한 주제입니다.
하지만 저 주제를 넘긴다 해서 얘기할 주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슬람과 기독교 둘다 종교전쟁 실컷 했다는 역사적 진실을 마주하고 본다면 어느새 새로운 의문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기독교만 종교전쟁 하는게 아니라 많은 다른 종교도 종교전쟁을 한다면, 종교는 전쟁을 불러오는 악의 근원인가? 많은 논쟁과 주관이 충돌할 주제인대, 전 개인적으로 종교가 전쟁에 악용된다고 그것을 악의 근원으로 본다는 것은 너무 비약적인 관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네, 종교가 전쟁에 악용 된 것은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때문에 고통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종교 자체를 본다면 솔직히 말해 그렇게까지 나쁠 것이 없습니다. 전 부모가 양쪽 모두 독실한 기독교도라 어려서부터 강제로 성당 여러번 갔고 한번은 성당 복사가 될 뻔 하기도 했었는데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종교에 대한 지식이 이것저것 생겼습니다. (여담이지만, 지금의 저는 무신론자입니다.) 그리고 종교를 본다면 왜 종교라는 개념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가 이해 됩니다.
종교는 법이 폭력이고 세상은 무질서하며 죽음과 증오가 세상을 가득 채웠던 과거에 탄생해 성장했습니다.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폭력, 죽음, 증오, 분노는 너무나도 익숙하고 당연한 감정이였습니다. 그런대 그런 시대에 사랑, 관용, 용서를 얘기하는게 바로 종교입니다. 사람들에게 어떻게 해야 더 행복해질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고 세상을 어디 한번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보자고 얘기합니다. 현대 관점으로는 오히려 발목을 붙잡고 있는 면도 있지만, 당시 관점으로는 종교는 인본주의란 면에서 아주 비약적인 진보나 다름 없었습니다. 종교가 당시의 복지와 사회질서의 많은 부분을 담당하기도 했다는 면에서 그것을 볼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이슬람교는 지금 관점으로는 여성을 억압하지만 과거 관점으로는 오히려 여성의 복지를 신경씁니다. 아프리카를 보면 여전히 매매혼이 성행하는대 이런 매매혼을 보면 가치가 없어진 여자는 사고 파는 시장경제의 일부에서 가치를 잃습니다. 가치를 잃은 여자는 아무도 원하지 않습니다. 과거 이슬람의 유목민 문화도 크게 다르진 않았습니다. 만약 한 남성이 여성을 강간한다면 그 여성은 가치를 잃고 아무에게도 시집가지 못한채 경제적 능력 없이 거렁뱅이나 됩니다. 그러니 한 남성이 한 여자를 강간했다면 반드시 결혼을 하도록 하는 것은 지금 관점으로는 뭐 이런 미친짓이 다 있나 싶은 비인륜적 행위이지만, 여자가 인간보다 더 낮은 존재로 여겨졌고 가치를 잃은 여자는 모두에게 버림받아 비참한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과거의 관점으로 본다면 반드시 결혼을 하도록 하는 것은 강간 받은 여자가 최소한의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구제방편입니다. 또한, 흔히 편견과 달리 중세 유럽의 종교재판은 봉건재판보다 더 관용적이였고, 많은 수도원들이 여행자나 빈민들을 구제하고 돌봐주는 복지센터로서의 역활을 담당했습니다. 현대는 그것들이 모두 전문화되고 발달되어 오히려 종교가 복지와 인본주의의 발목을 붙잡을 때도 가끔 있지만, 아예 그런 개념이 없던 과거의 관점으로는 아주 대단하고 중요한 역활을 맡았었습니다. 이러한 종교의 순기능을 보지 않고 종교의 악기능만을 보는 것은 오로지 종교의 순기능만을 보고 종교의 악기능을 보지 않는 것과 별반의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종교의 악기능이란 것도 한번 봐보고 싶습니다. 종교가 없다면 종교전쟁이 없었을까요? 그렇다면 종교전쟁 말고는 다른 전쟁은 단 하나도 없었겠지요. 십자군 전쟁, 카타르 십자군, 이슬람의 발호, 레콩키스타, 이러한 종교전쟁들을 모두 본다면 하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종교로 포장됬지만 실질적인 핵심으로 파고든다면 결국 다양한 이해관계와 국제정세가 복잡한 작용을 일으켜 전쟁으로 터져나왔다는 것입니다. 종교가 상당한 역활을 맡았음은 부정할 수 없지만, 동시에 종교는 부수적인 역활만을 맡았습니다. 실질사례를 봅시다.
십자군 전쟁은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로마누스 4세가 대패하고 비잔틴 제국이 동방영토를 이슬람에게 모조리 상실했다는 역사적 배경을 봐야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 세계는 이슬람의 급격한 발호에 위험을 느꼈고, 동방정교는 당장 수도에서 해협 하나만 건너면 적국이니 무지막지한 위협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가장 핵심적으로는, 불가르 슬레이어(농담 아니라 정말 이렇게 불립니다. 그리스어로는 Βουλγαροκτόνος, 불가로토노스라 부르는대 뜻은 동일합니다.) 바실 2세가 정복을 마친 후 동방세계에 자리잡은 힘의 균형이 산산조각나 깨짐으로서 급격한 혼란이 시작됬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이 힘의 균형을 되살리기 위해 비잔틴 황제 알렉시오스 1세는 로마의 교황 우르반 2세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우르반 2세는 무엇인가 업적을 이루고 싶다는 스스로의 공명심과 이슬람 세계의 발호를 막아야한다는 이해관계를 감안해 알렉시오스 1세의 요청을 승낙했습니다. (문제는 알렉시오스 1세가 예상한 것은 바랑기아인 근위대의 전신이 된 러시아로부터의 지원군처럼 대강 부대 하나로 편성해 유용히 써먹을만한 소수의 정예병이였는대, 교황이 보낸 것은 그게 아니였다는 것이지만, 뭐 그거야 그거고 걍 넘어갑시다.) 이해관계의 역학관계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당시 유럽은 제한 된 땅과 제한 된 자원을 놓고 너무 많은 사람이 경쟁하고 있었습니다. 장자상속제는 이미 자리잡아 차남에게는 끽해야 쥐꼬리만한 유산 겨우 받는 정도였고, 많은 귀족은 실업자로 놀고 먹었습니다. 그중에는 대단한 야망을 가진 자들도 여럿 있었죠. 게다가 일반 백성들 사이에도 새로운 땅을 점령하고 약탈해 대단한 부를 얻고자하는 공명심이 제법 널리 퍼져있었습니다. 그런대 동방의 이교도가 땅도 많고 부유하기도 한대 좀 나쁜 놈이라 같이 우르르 가서 레이드한다네요? 같이 가면 뭐 좀 떡고물이라도 얻어 먹을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하로렌 공작 고드프루아나 사자심왕 리차드처럼 정말 특수한 경우도 있고, 정말 순수히 성지순례만 하고 귀환한 자들도 많지만, 동시에 많은 이들이 스스로의 공명심과 욕심을 종교로 포장해 십자군을 떠났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순수히 종교의 악기능만으로 본다는 것은 좀 너무 심한 비약이 아닐까요? 결국 종교가 당시 시대상과 사람들의 이해관계에 얽매여 결국 기존 세계의 일부분으로 변해서 많은 사람들이 야망을 실천하는 도구로서 사용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하고 저는 생각합니다.
정리하자면, 이슬람도 종교전쟁 더럽게 많이 했습니다. 이 한줄을 참 길게 썼다는 생각도 드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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