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랑 형은 흔하게 ‘잘난 형과 그에 비해 많이 부족한 동생’이라는 클리셰를 그대로 따르는 형제였습니다.
친하지도 그렇다고 사이가 나쁘지는 않은 그런 관계였습니다.
형은 그래도 성실한 사람인지라 저에게 알게 모르게 많이 챙겨주는 그런 이상한 형이었죠.
이상한 형이었습니다.
방황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사연을 말하면 꽤 긴 편인데, 간단히 말해서 초등학교에서 중학생 때 까지 약간 트라우마가 생길 일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지금도 친하게 지내는 마음맞는 ‘이 새퀴 뒈져라!’ 이라고 놀면서 지낼 친구들을 만들게 됐고 대학교도 그렇저럭 형보다는 못하지만 못나지는 않은 곳으로 가게 됐습니다.
군대도 말년에 철심 박은 것 빼고는 잘 다녀왔고, 현재는 일본에 교환학생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카톡을 개설하고 형과 연락을 하던 중....
형 : 여친 안 만듬?
저 : 귀찮은 것도 있고, ASKY?
형 : 별로 좋은게 아닌데.
저 : 아무튼, 조카는 언제 보여줄 거임?
형 : 10년은 기다려라. 아니, 결혼부터 해야지!
저 : 애 생긴 다음에 결혼해야지!
형 : X친 X퀴 ㅋㅋ
저 : 조카 생기면 게임기 선물해주는 삼촌 정도나 되고 싶네요.
형 : 난 됐고, 네가 효도해라.
저 : 에이, 그래도 좋은 직장 다닐 수 있는 형이 먼저 해야지. 나보다 학교 생활 잘 했잖아.
형 : 그래도 나도 흑역사가 있어야.
저 : 나보단 나을 거 아냐.
형 : 그래도 내가 널 못 챙겨줬지.
엥.
아무래도 형은 중, 고등학생때 동생을 많이 못 도와줘서 그게 좀 마음에 걸렸던 것 같습니다.
아, 그렇구나.
무적초인 같았던 형도 키가 180이 안 된다고 투덜거리고, 여자 친구는 잘 만들지만 딱히 결혼하고 싶지도 않고, 취업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형이랑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했습니다.
조카 생기면 잘 해주기....
친척복이 없던 저희 끼리는 친하게 지내기.
형 왈, 부모님은 내가 잘 모실테니 넌 부담갖지 말라.
저 왈, 내 몸 챙길 수 있을 정도는 할테니 걱정 말라는 말.
여자 취향이 어쩌네, 여친 안 만드는못만드는 동생을 걱정하는 형....
형과 딱히 싸운 것도 아니지만 대화를 함으로써 서먹서먹했던 사이가 풀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아주 작았을 무렵은 형 뒤를 졸졸졸 따랐던 기억이 나는데, 새삼 그 시절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리고보니 오이가 싫다고 도망가는 저를 형이 도와줘서 살았던 적이 있죠.
역시 형제는 사이가 좋아야 하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형이 있다고 할 때는 ‘잘 난 형이 있다’보다는 ‘정말 좋은 형이 있다’이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았습니다.
애초에 나쁜 사이도 아니었지만, 왠지 형과 화해를 한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이렇게 착한 형도 잘 생각해보면 ‘잘난 형’인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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