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리족의 사회는 매우 엄격한 신분질서로 움직였다. 상위계급에는 족장과 전사들이 있었으며, 여자와 노예는 하위계급에 머물렀다. 그리고 이를 정당화하는 수단은 마나(mana)였다.
마오리족은 모든 이들에게 서로 다른 마나가 존재한다고 믿었다. 이 마나는 마나가 높은 이로부터 물려받거나 - 즉 족장이나 전사의 아들로 태어나거나 - 공을 세워 부족 전체에 도움을 주거나, 아니면 죽은 적의 살을 먹음으로써 마나를 흡수하는 것이다. 마오리족은 의식적으로 식인을 행했는데, 적의 살을 먹음으로써 그의 마나를 흡수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1643년에 네덜란드의 아벨 타스만(Abel Tasman)이 이끄는 탐험대가[4] 뉴질랜드에 상륙했을 때, 마오리족은 이들을 공격했다. 그리고 죽은 선원들의 시체를 먹었다. 이에 질려버린 아벨 타스만은 그대로 철수, 마오리족은 한동안 평화로운 시기를 누렸다고 한다.[5]
마나에 따라서 이들의 행동은 제약이 가해졌는데, 이를 마오리어로 타푸(tapu)라고 부른다. 영어의 터부와 같은 의미이다.[6] 타푸는 조상들의 무덤같은 신성한 장소와 마나가 높은 족장이나 전사들의 집, 티키(tiki)라고 부르는 우상들을 모셔놓은 성소같은 곳의 출입을 제한하는 금기와 특정 음식에 대한 금기, 그리고 행동에 대한 금기로 나타났다. 가령 마나가 높은 이들만이 복잡한 문신을 할 수 있었고, 또 노예와 많은 부인을 소유할 수 있었다. 마오리족의 마을은 파(pā)라고 불리는 요새로, 높은 망루와 목책, 구덩이 등으로 요새화되어 있었는데 마찬가지로 타뿌가 존재하는 조상들의 무덤 또한 파 몫지않게 요새화되어 있었다. 19세기 중엽 영국과의 갈등으로 인해 촉발된 마오리전쟁 당시 마오리족의 풍습에 익숙치 않던 영국군은 마오리족의 무덤을 마을로 오인하고 포격을 가하기도 했는데, 자신들의 마나를 훼손당한 것으로 생각한 마오리족의 분노앞에 전멸에 가까운 패배를 경험하기도 했다.
출처는 엔하위키입니다.
뭔가 소설 쓰는데에 도움이 될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저뿐일까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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