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안정성과 봉급은 반비례해야 맞지 않나요?
비정규직이 잘 짤리는 대신 돈은 세게 주고
정규직이 안짤리는 대신 돈을 박하게 줘야
상식에 맞을 것 같은데...
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원래 안정성과 봉급은 반비례해야 맞지 않나요?
비정규직이 잘 짤리는 대신 돈은 세게 주고
정규직이 안짤리는 대신 돈을 박하게 줘야
상식에 맞을 것 같은데...
기업이 흑자를 보고 있으면 근로임금이 재무재표에 큰 영향은 없지만
기업이 적자로 접어들면 근로임금 유지는 회사경영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합니다.
그냥 쉽게 말해서 망한다인데...
imf이전에도 지금의 비정규직(가령 계약직 같은 경우)은 있었지만 imf 이후로 정부에서 기업을 위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이원화하고, 고용유동성을 제공해 주었지요.
그 당시엔 상황이 상황인지라 근로자도 기업도 정부도 모두 끄덕끄덕하면서 넘어갔었는데, 기업입장에선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갈리는 고용유동성이 짭짤한 재미가 있었고,
여기에 혜택을 본 정규직 또한 고용안정과 꾸준한 노사협정으로 임금향상이 유지되니까 스리슬적 넘어가고
결국 죽어 나는 것은 비정규직화된 근로자만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 버린 것이죠.
현재의 정규직/비정규직 문제를 해소할려면 정부의 강한 간섭과 기업과 정규직이 한발씩 양보를 해야하는데, 현재 산업흐름이 정부의 지나친 간섭 배제와 기업과 정규직의 이권이 걸린문제라 어느 누구도 쉽게 손댈수 없는 문제가 되어 버렸지요.
현재의 구조 {[기업+정규직]+비정규직}를 개혁할려고 손대는 사람은 아마 엄청나게 까여서 18대 조상까지 부관참시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몇년 전에 복지재원(?) 때문에 근로소득 상위 30% 세금인상 문제를 들고 나왔다가 그게 연봉 3500이상 이라는 현실을 보여주니 죽도록 까여 버렸지요.
(연봉 3500이 2011년 기준이든가?)
ㅠㅠ
비밀 댓글입니다.
甲회사가 있습니다. 싼값에 노동자들을 부리고 싶죠. 하지만 직접 고용하게 된다면 회사는 그들의 근로 관계에 대해 지휘 감독 및 온갖 법적 규제를 받게 됩니다.
이에 대해서 부장 A에게 시켜서 유령회사 乙을 만들어 외주 형식으로 근로 계약을 한다리 건너 맺는 것이죠.
이 경우 업무 중에 문제가 생긴다면 이는 회사 乙의 책임이지 甲의 책임이 아니게 됩니다. 경영 사정이 어려워 임금을 주기 싫으면 乙을 파산시켜 버리면 끝날 일이죠. 유한책임이니 乙의 파산에 대해 A가 손해볼 일도 별로 없습니다. 임금을 차별해서 주어도 불만이 없죠. 어차피 남의 회사 사람이니까요.
이런 행태에 대해 수많은 노동 분쟁이 있어왔고 노동법은 업무의 '실질'이 거의 같으냐 '지휘 감독'이 있느냐 등을 요건으로 하여 단속해왔습니다. 법원이 그렇게 판례를 만들면 한국 최고의 지성들이 모인 기업의 변호사들이 '실질'과 '지휘감독 요건'을 분쇄할 새롭고 복잡한 하청 모델을 만들어 옵니다. 그러면 또 대법원의 판결이 날 때까지 무한 연기되는 셈이죠. 그리고 대법원은 바쁘고 판결은 수 년이 지나도 잘 안 나옵니다. 쌍용 자동차 사태가 언제적 일인데 이제 판결 나왔잖아요?
그리고 나와봐야 몇 일 안 가서 파혜법이 뜨고 똑같은 일이 반복됩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요? 생선을 고양이에게 맡겨두고 무슨 해결책을 찾습니까?)
혹자는 이런 모든 죄의 희생양을 노조 탓이라 돌릴 겁니다. 그러니 빨갱이 좌좀을 양성해내는 전교조가 참 대단히 문제죠. 그리고 북괴가 호시탐탐 남침을 노리기에 좌좀을 척결하기 위해선 한나라당을 찍어야만 합니다.
그게 싫어서 다른 걸 찍으려 보면 대부분 삼성 장학생 출신의 부패한 민주당이 기다리고 있지요.
그렇게 다들 냉소주의자가 되어 멋진 척을 하다가 현실충이 되고 어느새 자기는 정규직의 대열에서 이탈하지 않기 위해 아둥바둥 바락바락 애쓰며 경쟁하고 정치질에 상처받고 참된 나를 찾으며 힐링을 하고 보람찬 인생을 살겠지요.
다시 말하지만 이 모든 건 전교조 때문입니다. 삼성 경제연구소 수석 연구원과 한국경제연구소 실장님이 그랬거든요.
비판자들이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비판을 수행하며 비판 대상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거기서 벗어나기란 너무나도 어렵지요.
이른바 '일베충'이나 그들을 비판하는 '좌좀'이나 결국 서로 닮아가게 됩니다. 둘다 조선(한국)놈들은 답이 없어를 외치며 끊임없이 자기보다 약한 외집단을 형성시키고 혐오하려 들지요. 그리고 그것보다 더욱 무서운 것은 위의 과정이 되풀이하다 보면 어느새 비판에는 자기 자신에 대한 비판이 선결되어야 한다는 걸 잊어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끊임없는 비판의 매혹 속에 스스로를 위치시키다 보면 냉소주의라는 안락한 자만감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한국 정치엔 답이 없다며 정치하는 것 자체를 거부하게 되겠지요. 특정 지역과 외국인 및 약자들과 같은 타집단을 혐오하며 자기를 인정받고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높이려는 반대 집단과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에 이르게 되는 겁니다.
그 다음엔 인터넷 환경에서 풍자나 비꼼이나 반어법 같은 걸 쓰는 거 자체를 문제삼을 겁니다. 결코 자기 자신을 문제삼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삶은 힘들고 자기 자신은 스스로 말고는 아무도 보호해주지 않거든요.
그래서 타인의 글을 유심히 살펴보는 것보다 대충 싸잡아 몰아세우는 편이 훨씬 정신 건강에 이롭습니다. 모든 것을 의심하며 심지어 자기 자신조차 의심하고자 했던 좌파 정신은 정치 없는 비판 놀이로 전락하게 되죠. 그렇게 체 게바라는 티셔츠에 그려져 팔리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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