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찮게 학부생들 프리젠테이션을 봐줄 일이 생겼습니다.
근데 이 친구들이.. 다들 글을 써 와서 줄줄 읽더군요. 쩝.
일일이 잔소리 하기도 뭣해서 그냥 읽지 마라 한마디하고 말았습니다.
저도 전문가는 아니지만 푸념 겸 조언 겸 정리 겸 해서 써봅니다. 이런 게 도움 되려면 대학생 정도일텐데 여기는 별로 없을 것 같긴 하지만..
프리젠테이션은 일종의 공연입니다.
양방향 의사소통이지요. 청중은 말은 못 해도 발표자의 호흡, 눈맞춤, 손짓에 동조하면서 반응합니다. 담화문이나 축사 같은 것과 비슷해 보이지만, 이것들은 단순 통보일 뿐이라서 프리젠테이션(이하 발표)과는 성질이 완전히 다릅니다.
그래서 전 대본부터 만드는 걸 싫어합니다. 발표자료를 직접 만들면서 흐름을 짜넣고, 두세 번 리허설하면서 교정하면 일부러 외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어지거든요.
설사 대본을 쓰더라도 "글"이 아니라 "말"을 써야 합니다. 소설과 연극 대본의 차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최악의 발표는, 발표자료 한 장 마다 자잘한 정보를 가득 메워놓거나 온전한 문장을 다 써 넣고는, 정작 발표자는 다른 흐름으로 말을 하는 경우입니다. 그러면 청중은 비슷하지만 다른 내용으로 듣기와 읽기를 멀티태스킹해야 하므로 한마디로 짜증이 납니다.
차악은 위에 말씀드린 것처럼 그냥 책읽기를 하는 경우입니다. 청중은 발표자의 말을 따라가면서 같이 글을 읽습니다. 양측 모두 부담없다는 장점이 있지만 단점은 따분하고 집중하기도 어렵다는 거. 면피로는 이 방법이 최고지만 사실 이건 발표라고 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굉장히 성의 없고 예의도 없는 행동이지요.
그럼 좋은 발표는 어떤 건가?
발표 목적에 따라 다른데 저는 세 가지로 분류합니다. 업무 보고, 단순 정보 교류(예를 들면 실무자 회의 정도), 강연.
정보 전달은 그냥 겉치레 다 빼고 편하게 하면 되고..
업무 보고인 경우에는 당연히 윗사람 취항이 첫째입니다만.. 저는 슬라이드를 좀 빡빡하게 채우고 분량을 늘립니다. 청중이 "뭔가 많이 한 것처럼 보이는데, 큰 줄기는 확실히 알겠지만 자세한 내용은 전문적이라 모르겠다" 는 생각이 들면 성공입니다. 슬라이드만 봤을 때 한 이삼십 퍼센트만 이해하게 하면 딱 좋습니다.
단, 내용이 난잡하지 않고 잘 구조화되어 있어야 하며, 그 중 핵심 내용은 눈을 이리저리 굴릴 필요 없이 보자마자 눈에 뽝! 들어와야 합니다. 발표 시에는 일일이 다 설명하지 말고 핵심과 결론만 정리하되 질문이 들어오면 그때 자세히 설명하면 됩니다.
마지막으로 강연. 강연과 강의로 세분화할 수도 있는데 여기서는 뭉뚱그려 쓰겠습니다.
내용을 발표자료에 다 집어넣는 사람, 갑자기 소녀적인 감성을 발휘해서 꼼꼼해지는 사람은 하수입니다. 발표자료에 정보가 너무 많으면 청자가 말에 집중을 못 하거든요. 주제와 핵심 내용에 한두 개의 그림/사진만 더하는 게 좋습니다. 저는 "Simple is the best"를 신봉하기 때문에 제목 아래 그림 하나만 덜렁 있거나 거기에 짧은 문구(문장 말고) 넣는 정도를 제일 좋아하지요.
저희 문중(?)에 유명한 말로 마무리하겠습니다.
"한 장에 다섯 줄을 넘기지 마라"
"14포인트 이하 글씨는 쓰지 마라"
아, 팁을 하나 더하면
그림이든 수치든 직접 작성하지 않은 자료는 출처를 명시하는 게 기본입니다. 일일이 박아 넣거나, 그게 난잡해 보이면 모아서 참고자료(reference)라고 마지막에 한두장 넣으면 됩니다. 누가 안 가르쳐주면 이걸 잘 모릅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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