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레이드물 자체가 뒤집어져야하기 때문에, 그런건 장르 자체의 특성이라고 관대하게 넘어가도록 하고, 평소에 생각했던 사소한 디테일 몇가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헌터’ 명칭
레이드물은 기본적으로 괴물 잡는 초능력자들 이야기죠.
근데 가끔 특수한 능력을 가진 사람 자체를 ‘헌터’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헌터hunter = 사냥꾼 = 사냥하는 사람, 또는 사냥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
사전적 의미에서 봤을 때 헌터는 능력을 설명해주는게 아니라 직업 분류에 속합니다.
그런데 어떤 소설에서는 이러한 명칭에 대한 구분이 없죠.
주인공이 능력을 각성했습니다.
“드디어 나도 헌터가 됐어!”
는 좀 웃깁니다. 싸울수 있는 능력을 얻은거지, 그 자체로 싸우는 사람이 된게 아니죠.
수영을 배웠다고 해서 수영 가능한 사람 전부를 수영선수나 UDT/SEAL이라고 부르진 않잖아요.
“드디어 나도 각성자가 됐어!”
“드디어 나도 헌터가 될 수 있어!”
는 조금더 논리적으로 타당한 표현이 될 것 같습니다.
플레이어player는.... 도대체 어디서 나온 단어일까요?
1) (게임・운동 경기의) 참가자[선수]
2) (특정 사업・정치 분야에서 활동하는) 회사[개인]
3) (녹음・녹화) 재생 장치, 플레이어
4) 연주자
5) 배우
뭐 설정 상 게임이 현실이 되었다던가, 신이나 초월적 존재가 게임 형태로 만들었다 같은 식이라면 플레이어도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그냥 대뜸 플레이어라고 하면 그 소설속 사람들은 무슨 생각으로 이런 단어를 붙였을까 상당히 의아하죠... 요즘 이 단어가 사용되는 빈도를 생각해보면..
2. 탱딜힐 구분
게임의 폐해가 여기서도 발견됩니다. 현실에서 싸우는데 탱커, 딜러, 힐러의 구분은 참..
많은 문제들이 있지만 몇가지 예만 들어보겠습니다.
딜러는 보통 원거리/근거리로 나뉩니다. 너무 포괄범위가 커요.
군대로치면 소총, 무반동포, 저격총을 모두 하나의 병과취급(원거리 딜러) 하는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근거리도 좀 그렇죠. 칼, 창, 도끼, 플레일 기타 등등 무기들이 모두 근거리로 취급 될 수 있거든요. 각각 특성이 있고 한장소에서 싸우자면 신경써야될것도 많은데 수십명이 달라붙은 레이드에서도 그냥 뭉뚱그려 근거리 딜러...
탱커...는 뭐 판타지 수준의 맷집이나 회복력+‘어그로’라는 아주아주아주 비현실적인 시스템이 전제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는 분류일 겁니다. 그런데 뭐 어쩌겠어요. 작가님께서 살아있는 생물 상대로 어그로가 잡힌다고 하시니 이건 그러려니 해야되는 부분이겠죠...
힐러. D&D의 클레릭도 메이스를 드는데, 사람 한명한명이 아까운 던전환경에서 맨몸 달랑와서 힐만 쓰다 가는 위대하신 분들... 무슨 종교적 제약이 있는 것도 아닐텐데, 총이든 활이든 하다못해 붕대나 식량이라도 좀 들려주면 어떨까요.
3. 소위 말하는 ‘막공’
목숨걸고 싸우러가는데(실제로 많이들 죽어나가는데), 파티 구성을 인터넷 게시판으로 구합니다. 사전 연습, 조사 이런거 절대 안키우고 바로 현장에서 만나서 처음보는 사람들과 괴물 잡으러 갑니다.
다시 군대를 예로 들어봅시다.
특수부대 소대장이 국경을 넘어 적군 대대장을 죽이고 와야하는 미션이 생겼습니다.
소대장은 인트라넷을 접속해서 [국경 대대장 레이드/10인 팟/장비 개인지참] 같은 글을 올리고 지원자들에게 쪽지를 받아 인원을 구성합니다.
국경 바로 앞 GOP에서 처음 만난 공격대는 거기서 서로의 얼굴을 처음 봤습니다.
“어.. 거의다 소총병이시네요. 저격총이 3자루에, 분대 지원화기가 없어서 좀 불안하긴 한데... 나머지는 유탄 많이 싸가니까 그걸로 대응해봐요. 근데 그거 2차대전 소총같은데 잘 나가나요? 뭐 중위 계급이시니 잘 하시겠죠. 보수는 1/n이구요, 돌아와서 뒷풀이로 회식이나 한번 하죠.”
당당히 국경을 넘는 우리 공격대. 혼돈의 카오스...
잠입 루트는 뭔지, 예상 병력과 경계범위는 어떻게 되는지, 아군 능력과 포지션은 어떻게 되는지, 물자 보급이나 그런 문제는 어떻게 하는지, 전혀 무시...
뭐 이런 느낌이겠네요.
자기 생명이 걸려있는데 좀더 자세히 조사하면 어떨까요. 대충 모여서 아무것도 모르는 적과 그냥 맞부딪치는 대신에...
왜 잘 준비된 예행연습도구를 하나도 활용하지 않는지 의문입니다.
헌터 등록하러가면 지부마다 하나씩 있잖아요.
마력 측정 한 다음 순서로, 전투력 테스트 할때 나오는 ‘실제와 같은 몬스터와 가상으로 싸우고 위력 분석까지 되는 증강현실 시스템’이!
무기 방어구 좋은거 맞추는 것보다 저거 양산해서 보급하는게 생존률 한 3배는 더 올라가지 않을까요?
4. 던전 앞에는 전용 숙박시설과 위생시설을 준비합시다.
던전에서 몬스터 수십마리를 썰어버리고 체액으로 떡이 되서 나온 헌터들.
나와서 밥도 먹고 편의점도 가고 버스도 타고 상점도 가고 관공서도 가고...
그 체액 다 어떻게 하셨나요(...)
끈적끈적하고 이상한 냄새도 날꺼같고 여기저기 묻고 옷도 축 늘어지게 만들고있을...
택시기사분들 착한 승차거부 인정합니다.
‘아 그거 뭐 서술로 안되있는거고 알아서 다 씻었겠지?’라고 생각하시죠?
근데 그 다음에 나온단 말이에요. 집에가서 씻었다고..ㄷㄷㄷㄷㄷ
좋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방구석에 엎드려서 있기 심심해서 몇가지 적어봤습니다.
뭐 이러니 저러니 해도 저도 똑같은 레이드물 보고있어요. 몇가지 부분에서 인내심이 요구되기는 하지만요.
크리스마스는... 음...
가족과 함께 보내야죠. 좋은 날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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