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지난 영화니 스포 포함됩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라는 평과 대단히 좋게 평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제 경우엔 좀 다름니다.
관점의 차이겠지요.
열린결말이라고 하지만 사실 후기와 분석을 좀 보다 보면 대부분은 해석이 됩니다. 천우희의 정체 처럼 끝까지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긴 합니다만 그래도 악의 편은 아니라는 건 짐작할 수 있죠.
곡성은 좋게 말하면 열린결말이고 안 좋게 말하면 완결성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열린 결말의 인셉션은 모든 과정을 다 그리고 그 가운에 해석이 다를 수 있게 해두었지만 곡성은 주제에 맞춰 이야기를 진행하다 여러 해석이 가능한 메시지만 남겨두고 이야기를 잘라 버렸습니다.
곽도원은 의심을 하죠. 아니 그런 의심을 하는 마을 사람이 많았습니다.
괴이한 이야기를 듣거나 보고 의심이 싹터 그것이 일광과 일본인에 의해 이용됩니다.
슈퍼내추럴에선 보통의 범주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용당하는 것을 그들의 잘못으로만 돌리진 않습니다. 마을 전체가 악마에게 현혹당하는 경우도 등장합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경우에는 주인공 형제에 의해 바로 잡힙니다.
선택의 여지가 있었던 경우라면 댓가를 치루게 되죠.
곡성의 마을 사람들은 어떤 명확한 선택적 상황에 마주친 적이 거의 없습니다.
그냥 의심할 일이 생기고 어쩌다보니 현혹당합니다.
일광은 잘 빼 입은 정장을 입고 등장합니다.
일본인은 의심스러운 행적을 계속해서보입니다.
대비가 되죠. 그리고 둘은 같이 연극을 합니다.
곽도원을 포함한 마을 사람들은 이 두 악마들에 의해 이용당하지만, 어떤 구체적이고 판단이 가능한 선택적 상황이 아니라 그저 몰리기만 합니다.
몰리다 못해 의심을 하게 되고 현혹을 당하게 됩니다.
정장을 빼 입고 말 잘하는 일광이 천우희보다 믿음을 주도록 하는 연출까진 이해가 됩니다만, 그 정도로 현혹되지 말라 라는 메시지를 던지기에는 장치로서 상당히 부족하다는 생각입니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곽도원은 잘못된 정보를 여러번 접하고 여러번 실수하지만 그것은 어떤 사익과 욕심에 의해서라기보다 그저 딸에 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그나마 딸을 위해 일본인을 해치도록 유도한 일광에 넘어간 부분과 천우희의 말을 듣지 않은 부분 정도가 있는데, 이 것은 균형이 맞지 않는 케이스라 하겠습니다.
왜냐면 유도에 넘어가 일본인을 해치려 하게 된 곽도원은 일단 직접적으로 살해한 것이 아니고, 그 전에 그런 상황으로 몰리기 전에 결정적 실수를 한 적도 없습니다.
즉, 두 악마와 대적하는 천우희의 존재는 너무나 미약하다는 말입니다.
누군가는 수호신이라 하여 믿어야 힘을 발휘 하는 존재라고도 하는데, 그렇게 보기에는 일광이 천우희를 만나자 마자 구역질을 하고 도망간 장면은 해석이 안됩니다.
그냥 대적이 안되죠.
지극히 소극적인 천우희의 존재로는 균형이 맞질 않는다는 말입니다.
제가 슈퍼내추럴을 언급한 이유는 그 중간에 낀 존재로 딘과 샘 형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감독이었다면 영화 곡성에 세가지 다른 진행을 했을 것입니다.
1. 천우희가 영화 중간 중간에 결정적 선택에 대한 언급이나 힌트를 주어, 곽도원이 그것을 의심하고 결정적 실수를 저지른다.
2. 딘과 샘 형제 같은 중간자가 있어 천우희와 일광의 의도를 파헤치려 하다 곽도원과 얽히고, 잘 흘러가다 곽도원이 기존의 결말처럼 닭이 세번 울기 전에 들어가는 실수를 저지른다.
3. 천우희를 믿을 뻔한 상황이 두어차례는 나와줬는데도 불구하고 의심을 키운는 장면을 넣는다.
곽도원은 자기 선택에 의한 피해치고는 과도한 피해를 입게 됩니다.
즉, 이 영화의 메시지는 극단적 방법을 취하고 있습니다.
본래 의도한 메시지는 부차적이고,
작은 잘못이나 의심으로도 예기치 못한 아주 큰 재앙이 닥칠 수 있다 라는 정도.
보이스피싱이나 멀쩡해 보이는 사람에 의해 전재산을 잃는 분들 처럼 말이죠.
현실적으로 악이 득세하지 않는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정도로 많은 생명이 사라질 정도의 극단적이고 큰 사고가 되려면 더 많은 징조와 선택적 상황이 있어야 하는것 아니냐는 생각입니다.
Commen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