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논쟁이 된 소설이었습니다.
이야기 내내 소설의 틀에서 벗어나 있었습니다.
‘고래는 소설도 아니다.’라고 생각했던 분들은 그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겠지요.
우선 작자가 자꾸만 화자로 개입하여 천연덕스럽게 상황에 대해 논하는 모습은 소설의 프레임을 다시 생각하게 했습니다. 난데없는 작자의 목소리가 몰입을 방해하는 것 같은데, 기이하게도 이야기 속에 휘말려 들었지요.
또한 아무렇게나 마음대로 복선을 던져서 김이 새게 만들었으나, 동시에 이미 아는 결말로 치달아 가는 과정이 얼마나 즐거울 수 있는지도 깨닫게 만들었습니다.
인물의 성격을 묘사하는데, 전지적 작가 시점과 관찰자 시점의 중간자적 태도를 취한 것도 인상 깊었습니다. ‘그 인물에 대해 이러이러한 허무맹랑한 소문이 있다.’고 말하고는 ‘믿든지 말든지’라고 눙쳐 버리는데, 믿지 않을 수가 있나요? 판타지의 특성이 일반 소설과 현대적 배경에 어색하지 않게 녹아난 데에는 이 부분도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는 정말 빛나는 명작으로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 감상에 대한 감상 --------------
그런데 저는 읽는 내내 한 번도 고래가 ‘장르 문학’의 특성을 가졌다거나, 일반 소설의 틀을 깨쳤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거 ‘엄청난 소설’ 이라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그렇게 밤새 책을 다 읽고 나니, ‘소설 같지 않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문학 동네에서 인정받을 수 있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잘 썼어요.
구태여 다른 흠을 잡고 싶지 않을 만큼 잘 썼어요.
사실 일견 딱딱하고 고루해 보이는 글의 세계는
‘잘 쓰면 그만’ 이라는 절대적 실용주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 증명 불가.)
잘 쓰면 소재나 세계관은 문제 삼지 않습니다. 오히려 장점이 되겠지요.
결국 판무가 질적으로 높은 독서일 수 있는가
재미만 과도하게 추구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에 대한 답은,
작가와 작품 단위로 따로 내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잘 쓰면 그만!’
저는 그럴 능력이 없으니, 아직도 무관심 속에 열심히 명작을 집필 중인 작가 분들을 열심히 읽으려 합니다^^
------------ 감상에 대한 감상에 대한 망상 ------------
김훈이 레이드물을 쓰면 어떨까요?
그 세상도 개연성이 없다고 비판 받을까요?
아닐겁니다.
강줄기 흐르는 모양과 바람결에 흘러오는 짠내만으로도
던전 출몰의 개연성을 묘사할 겁니다.
판무 작가들의 글보다도 더 짧은 단문체로도 속이 꽉 찬 문장을 쓸 테고
감질나고 안달 나게 재밌게 플롯을 짜면서도 치열한 문제의식이 담길 겁니다.
그런데 겁나게 우울하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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