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2010년... 글쓴다고 깝죽거리다 군대 끌려가서 무릎 작살나고 의병 제대하는줄 알았더니 훈련소에서 박살난 무릎은 공익이라고 공익 끌려가고 어영부영하다보니 어느새 소집해제하고 백수로 장판 긁다가 취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따놓은 자격증 덕분에 서류 통과를 하고 면접을 보게 되었지요.
두 가지 길을 제시하더군요. 제가 두 종류 자격증을 가지고 있었고 회사가 자격증 관련된 업종 두 가지를 하고 있었거든요. 편의상 A와 B라고 하지요.
묻더군요.
A를 할래, B를 할래.
A 하면 울산 공단으로 보내주고 B 하면 아프리카 가야 된다.
10초간 고민하고 B 선택했습니다.
남자로 태어났으면 외노자 한 번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한달 뒤 저는 한달 전 B를 선택한 저 자신을 죽이고 싶었습니다.
한국의 1970년대와 흡사한 아프리카 빈민국에서 하루에 14시간 씩 일을 하며 받는 돈은 한달에 겨우 150 남짓... 사람들이 전부 저한테 너 속아서 여기 왔다고, 해외근로자가 아니라 해외노예 되서 온 거라고 놀렸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저는 고작 23살에 불과했고 주변 사람들은 전부 나이 50, 60 넘어서 저 또래 아들들이 있고 어느 분은 손주도 있으며 급여로 치면 당시에도 한달에 칠백, 팔백, 심지어 천은 우습게 버시는 분들이니 풋내기가 박봉 받고 마소처럼 일을 하니 안타깝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셨겠지요.
처음에는 그만두고 싶었지요. 그데 어느 순간 영어라고는 ABCD 다음에 E인지 F인지 몰랐던 제가 영어로 대화를 나누고(물론 90퍼센트는 바디랭귀지) 몰랐던 일에 대해 하나하나 알아가는 재미에 푹 빠져서 그렇게 쭉... 해외에서 일을 했습니다. 중간에 잠시 6개월 정도 국내에서 일을 했었는데 해외의 자유로운 풍기에 비해 국내는 꽤 빡빡하더군요. 아프리카 찍고 중동 오는데 해수로는 5년차고 만으로는 4년 걸렸네요.
그 와중에 즐거웠던 건 매년 천 단위 숫자가 올라가는 연봉과, 외국인을 봐도 얼음이 되는 증세가 사라졌으며 나름 어디 가서 기술자라고 소개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저 자신을 키울 수 있었다는 것.
그 와중에 슬펐던 건 인생이 재미가 없어졌다는 것... -_- 하루에 14시간씩 일을 하고 노가다 용어로 소위 ‘아도’ 칠 때는 주7일로 일을 하는데 인생에 재미가 어디있나요.
그나마 요새는 글이라도 쓰며 인생의 새로운 재미를 찾았습니다만...
결론요?
결론은 이제 휴가가 2주도 안 남았다는 겁니다! 아유 씽나!
기승전휴가네요. 어허허.
아무튼 취업이 안 되서 고민이신 분, 절망하지 마시고 도전하세요. 어느 순간 기회는 반드시 찾아옵니다. 찾아온 기회가 힘들다고 포기하시는 분들, 비록 지금은 힘들어도 언젠가는 빛을 봅니다. 도전하고 또 도전하세요. 도전에 실패했다고 아파하기엔 우린 아직 젊잖아요.
이 글 보시는 모든 취업 준비생 여러분들, 외노자의 길은 모두에게 열려 있습니다. 오thㅔ요 이라크로! ... 죄송합니다. -_-;
억우였습니다.
퇴근하기 전에 잡담 한 번 나눠봤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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