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강호정담

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희극과 비극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
13.10.17 23:17
조회
1,099

우리는 비극을 보면서 눈물짓고 희극을 보면서 웃음을 터뜨린다.

 

비극의 등장인물에 우리는 감정이입을 한다.
인물들이 겪는 비통한 일을 자신의 일처럼 여기고 함께 슬퍼한다.
희극을 볼 때는 그런 감정이입이 일어나지 않는다.
희극을 볼 때 우리는 거리감을 두고 인물에게 일어나는 불운을 비웃는다.

 

희극은 새디즘에 기반을 둔다.
운명의 악의에 시달리는 가련한 어릿광대는 연민보다는 유쾌한 경멸을 불러일으킨다.
그렇다면 비극은 마조히즘과 관계 있다고 말해도 틀리지 않을 성싶다.
가뜩이나 행복과는 거리가 먼 것이 인생일진대,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도 아닌 타인의 불행까지 자신의 일처럼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말이다.

 

희극을 감상하는 행위 아래 숨어 있는 그런 잔인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연극이라는 것이 원래는 종교 의식에서 비롯되었음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처음에는 문자 그대로 산 제물의 피를 흘려 신에게 바치던 의식이 나중에 완화되어 제물에게 모욕과 폭행을 가하여 마을 밖으로 추방하는 의식으로 바뀌었다.
그 제물의 역할을 처음에는 전쟁 노예나 범죄자들이 맡았을 것이고, 그 추방은 실질적인 추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역할은 동물이나 제물 역을 맡은 연기자에게 주어졌고, 좀더 나중에는 인형으로, 심지어는 아예 인간의 성질이 모두 사라진 물건으로 대체되었다.(큰 나무를 베어 화려하게 장식하여 마을 중앙에 세워 두었다가 '5월의 기둥'이라 이름붙여 강물에 떠내려 보내는 서양의 풍속, 낡은 볏집을 불살라 이듬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우리네 풍속을 보라.)


요컨대 살해되거나 추방되거나 불살라지는 제물은 그 사회의 온갖 불운을 한 몸에 지닌 채 전체 사회의 안녕을 위해 사람들의 삶 바깥으로 제거되는 것인데, 처음에는 사회 구성원들 전체가 참가하였던 그런 의식을 일부 소수의 사람들만이 집행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옆에서 지켜보는 형태로 바뀐 것이 연극의 출발점이다.

전체 사회의 안녕을 위해 사회 바깥으로 추방되는 제물을 조롱하는 심리에서 희극 감상이 비롯되었다면, 그럼 비극 감상은 추방되는 제물과의 자기 동일시 심리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렇게 보아도 될 듯하다.
그리스 비극 '이디프스 왕'의 결말에서 이디프스는 두 딸과 함께 자신이 다스리던 나라 국경 밖으로 추방된다.
게다가 그 후속편인 '콜로너스의 이디프스'에서는 전작에서 그렇게 추방되었던 이디프스의 유해를 차지하는 집단이 전쟁에서 승리하게 된다는 신탁 때문에 전쟁이 벌어지기까지 한다.
추방되었던 자의 시신이 사회의 번영에 필요하다는 기묘한 논리에서 이디프스의 제물적 성격은 더욱 뚜렷해진다.


....이상의 얘기에서 뭔가 멋들어진 결론이 도출될 수 있을 듯싶기도 한데, 유감스럽게도 나의 지력은 여기까지다.


Comment ' 4

  • 작성자
    Personacon ANU
    작성일
    13.10.17 23:47
    No. 1

    사람을 흥분하게 만드는건 적절한 조명(어둠 속 불꽃)과 향기와 마음을 자극하는 음악이지요.
    거기다 춤까지 더해지면...
    그래서 과거 (샤머니즘 시대?) 부터 종교 의식에는 저 네가지가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걸로 알고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3.10.18 00:27
    No. 2

    경건한 마음으로 클럽을 향하여!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 올드뉴비
    작성일
    13.10.18 01:40
    No. 3

    위와 같은 이유에서 예전 모개그맨이 말했던 착한 개그란 말을 좀 비웃었습니다. 기본적으로 개그란 것이 자신이나 타인을 우습게 만드는 것인데 개그맨들이 다루는 웃음이란 본성 자체가 굉장히 공격적이기 때문이죠. 우리가 개콘이나 여타 코미디를 보면서 엄마미소, 아빠미소 짓기 위해 보는 게 아닌 이상 착한 개그란 건 아무 의미가 없지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3.10.18 02:50
    No. 4

    착한 개그라.... 재미없을 것 같아요.^^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강호정담 게시판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 희극과 비극 +4 Lv.1 [탈퇴계정] 13.10.17 1,100
209521 누군가 이렇게 말합니다. +11 Lv.61 정주(丁柱) 13.10.17 1,219
209520 성악설. +9 Personacon 메앓 13.10.17 1,254
209519 배부르네요... +3 Personacon 적안왕 13.10.17 948
209518 월오탱 4티어 찍으면 문상 만원 주는 이벤트 있었는데 +2 Lv.54 야채별 13.10.17 1,192
209517 usb 발열장갑과 관련하여 구입 후기(장갑 안 삼). +14 Lv.12 취준 13.10.17 2,182
209516 진짜사나이 보면서 제일 궁금했던 부분. +11 Lv.36 초아재 13.10.17 1,365
209515 읽을 소설 좀 추천해 주세요. +8 믌고기 13.10.17 1,237
209514 라 만차의 전사 5권 22일에 나온다네요. +7 Lv.91 하늘짱 13.10.17 1,308
209513 요즘 들을만한 애니 음악 있으시면 추천 좀요. +25 Lv.10 환상인물 13.10.17 1,278
209512 드디어 노트3로 갈아탑니다!!!! +17 Lv.25 시우(始友) 13.10.17 1,284
209511 강풀의 마녀 내일 마지막화 입니다 +8 Lv.90 나그네임 13.10.17 1,641
209510 고스톱 만드는 건 관심 없었는데... +6 Personacon 엔띠 13.10.17 970
209509 육사 입학 +11 Lv.4 CJW 13.10.17 1,540
209508 아주머니가 주문을 잘못 받으신 것은 아닌데 좀 난감했네요. +7 Lv.92 파유예 13.10.17 1,358
209507 로맨스 장르는 확실히 연애 많이 해본 사람이 유리한 것 ... +17 Lv.90 부정 13.10.17 1,164
209506 견종과 견성의차이 +5 Personacon 니르바나 13.10.17 1,244
209505 와, 라면 끓이는데 오늘 운이 좋군요. +8 믌고기 13.10.17 1,195
209504 지나친 음주 가무로 인하여 이틀이나 앓아 누웠습니다. +6 Lv.6 신영철 13.10.17 992
209503 로리 이야기를 하면 항상 뜨끔하죠. +7 Personacon 묘로링 13.10.17 1,131
209502 안녕하세요, 기말고사 다 쳤습니다. +9 믌고기 13.10.17 1,097
209501 궁금한게 있는데 신간안내란... +2 Lv.1 [탈퇴계정] 13.10.17 920
209500 이번주 진짜사나이에 진해교육사령부가 나오네요. +11 Lv.1 [탈퇴계정] 13.10.17 1,619
209499 아래 셰퍼드 관련 글이 보이는군요 ㅎ +8 Lv.1 [탈퇴계정] 13.10.17 1,008
209498 그래비티 엔딩크래딧 보지 마세요 +7 Lv.54 야채별 13.10.17 2,427
209497 만세! +4 Lv.1 [탈퇴계정] 13.10.17 870
209496 정담에서의 로리에 대한 시각 +34 Lv.39 청청루 13.10.17 1,568
209495 작가의 자질 문제가 나오길래... +6 Personacon 엔띠 13.10.17 1,834
209494 킥애스2 기대이하... +6 Lv.54 야채별 13.10.17 1,227
209493 진격의 거인 작가 이런놈이었군요.... +39 Personacon 카페로열 13.10.17 2,286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genre @title
> @subject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