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투기, 그 열정의 명 경기①] 척 리델 vs 퀸튼 잭슨
UFC 레전드 '아이스맨' 척 리델(은퇴)과 프라이드 강자중 한명이었던 '늑대인간' 퀸튼 '람페이지' 잭슨을 보고있노라면 파이터들간의 '상대성'이라는 부분에 대해 더욱 실감할 수 있다. 이들은 단순히 '누가 좀더 강하냐'를 떠나 서로에게 '어떤 스타일이 좋고 나쁘냐'를 분명하게 나타내주는 선수들이다. 리델에게 퀸튼은 '악몽'이었고, 퀸튼에게 리델은 '기회'로 작용했는데 이 둘의 관계는 이후에도 한쪽의 일방적인 우세로 이어지고 말았다.
UFC를 대표하는 간판아이콘 중 한명인 리델은 한때 라이트 헤비급에서 '절대강자'로 군림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는 퀸튼에게 타이틀을 빼앗기기 전까지 티토 오티즈, 랜디 커투어, 제레미 혼, 헤나토 소브랄 등 쟁쟁한 도전자들을 물리치며 그야말로 브레이크 없는 전성기를 내달렸다. 특히 2004년부터 챔피언을 빼앗기기 직전까지의 포스는 그야말로 무시무시했다.
연승행진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 기간 동안 단 한번의 판정승부도 없이 모두 TKO 또는 KO로 경기를 끝내는 무서운 파괴력을 과시했었다. 동 체급에서는 더 이상 적수가 없어 헤비급으로 전향하라는 주최측의 압박 아닌 압박(?)까지 들려왔을 정도.
당시의 리델은 UFC에는 적수가 없었고 프라이드의 마우리시오 쇼군, 히카르도 아로나, 호제리오 노게이라 등이 그나마 상대가 가능한 파이터로 손꼽히고 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진짜 리델의 천적은 따로 있었다. 다름 아닌 프라이드 미들급(UFC는 라이트헤비급)이 활성화되던 시절 강자중 한 명으로 군림했던 퀸튼 잭슨이 바로 그이다. 퀸튼은 상대 전적에서 2전 2승으로 압도적인 우세를 점했고 결국 리델이 은퇴한 시점에서 영원한 그의 천적으로 남게됐다. 더욱이 무대를 바꿔가면서 승리를 챙겼던 터라 옥타곤과 링이라는 차이 조차도 변수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둘은 지난 2003년 프라이드 미들급 그랑프리 4강전에서 첫 맞대결을 펼친 적이 있다. 당시 리델은 UFC를 대표해 프라이드에 참전했고 8강전에서 위력적인 펀치연타를 앞세워 '더치 사이클론' 알리스타 오브레임을 넉아웃 시키며 하드펀쳐의 위용을 뽐낸바 있지만, 3개월 후 퀸튼에게 완패를 당했다.
'늑대인간'의 뜨거운 숨결에 녹아버린 '아이스맨'
아나운서의 소개 멘트에 이어 관중들의 함성이 천둥처럼 경기장안에 울려 퍼지는 가운데 척 리델의 얼굴은 잔뜩 상기되어 있다. 당시 뛰어난 태클디펜스에 한 쌍의 기다란 장창을 연상케 하는 펀치, 그리고 원거리로의 이동이 용이한 스텝을 바탕으로 옥타곤 최고의 타격가로 군림하고 있는 리델이었지만 프라이드 강자와의 대결은 적잖은 부담으로 다가오는 듯 했다.
뼛속까지 시리게 하는 '아이스맨'의 섬뜩한 빙백권(氷白拳)은 분명 위력적이었다. 그 가공할 파괴력 앞에 수많은 UFC 파이터들이 옥타곤과 함께 통째로 얼어버린바 있다. 하지만 그와 맞설 퀸튼 잭슨이라는 상대는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파워풀하고 용맹한 광폭한 적수였다.
"크르르…." 가뜩이나 험악한 인상에 양미간까지 잔뜩 찌푸린 퀸튼의 얼굴은 흡사 '늑대인간'을 방불케 했다. 프라이드 미들급의 강자중 한 명으로서 라이벌 단체의 강자를 결코 다음 라운드로 보내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마저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리델의 명성은 당시에도 유명했지만 그는 어떤 면에서 퀸튼에게 그다지 위협적인 상대가 아닐 수도 있었다. 동급에서의 파워대결이라면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 퀸튼인지라 단순히 정면에서 치고 받는 스타일이라면 두려운 상대가 없었기 때문이다.
공이 울리고 경기가 시작되자 그러한 분위기는 그대로 경기에서 반영됐다. 자신의 스트레이트성 펀치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특유의 궤적 큰 훅으로 맞받아치는 퀸튼의 대응에 리델은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 더욱이 다소 어정쩡하기는 했지만 옥타곤에서는 누구도 잡기 힘들었던 스텝마저 퀸튼의 활발한 움직임에 막혀 별다른 강점으로 작용하지 못했다.
리델의 펀치는 자꾸만 허공으로 빗나갔고 이따금씩 안면 쪽으로 들어가는 공격마저 두터운 가드에 막혀 정타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되려 퀸튼의 주먹이 간간이 리델에게 먹혀 들어갔다.
이렇게 되자 리델은 곤경에 몰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주특기가 전혀 통하지 않는 상대에게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자꾸 태클을 시도하며 그라운드로 전환하려는 퀸튼의 클린치를 뿌리치며 방어를 하는 정도로는 승부의 추를 바꿀 수 없었다.
1라운드 종료 공이 울리고 자신의 코너로 돌아간 리델의 얼굴은 난감함으로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하지만 퀸튼 역시 '하드펀처'인 리델을 상대하느라 거칠게 호흡을 뱉어내며 숨을 고르고 있는 모습이었다.
2라운드에 접어들자 퀸튼의 동작은 더욱 빨라졌다. 퀸튼은 리델과의 타격전에 자신감을 얻은 탓인지 훅은 물론 어퍼컷도 자신 있게 뿌려대며 승부의 페이스를 틀어쥐었다. 늑대인간의 발톱은 아예 대놓고 아이스맨을 두들겨댔고 충격을 받은 리델은 투지마저도 잃어갔다.
그 순간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퀸튼의 어퍼컷이 폭발했고 리델은 밑동이 부러진 고목 마냥 링 바닥에 나가떨어졌다. 연거푸 달려드는 퀸튼을 피해 재빨리 일어섰지만 이미 풀려버린 다리는 이후의 테이크다운에 속수무책이었고, 계속되는 파운딩 연타에 결국 버티지 못하고 TKO로 무너지고 말았다.
옥타곤을 호령했던 '아이스맨'이 만월(滿月)로 가득 찬 링 안에서 '늑대인간'의 뜨거운 숨결에 녹아버리는 순간이었다.
-윈드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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