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연치 않게 정담에 놀러와 글을 눈팅하다보니 제가 좋아하고 즐기던 삼국지에 관한 이야기가 올라와 있어 기분 좋은 마음으로 글을 읽다보니 정말 사람과 사람은 서로 의견이 다르고 견해차가 크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뭐 어떤 면에선 기분도 좋았구요. 다만 가끔씩 나오는 부분에 대한 오류들(물론 제 주관적인 판단에 의한)을 논하고 싶어서 이렇게 글을 따로 빼서 쓰게 되었습니다.
모쪼록 삼국지에 관심이 없으셨던 분들이라면 양해 부탁 드리겠습니다.
제가 동탁에 관한 글을 읽다보니 대체적인 의견이 동탁은 천운을 타고나서 기회를 얻었음에도 스스로의 능력 부족과 욕심으로 인해 몽땅 깎아 먹고 죽임을 당하였다 라는게 대세더군요.
물론 삼국지연의상에 표현된 동탁은 무능의 극치, 악랄한 군주의 표상이라 보여질 수 있지만, 실상 제가 알고 있는 동탁이란 군웅은 매우 정열적이고 진취적이며 시대를 앞서간 정치가라고 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동탁의 실패를 논하기 앞서, 그의 전체적인 생애와 시대적 배경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가 활약한 시기는 후한 말, 청류와 탁류가 얽히고 얽혀 서로간의 정쟁이 계속 되고 있을 무렵입니다.
청류의 대표적인 인사로는 당인들을 제외하고 권문세족들의 일부인 원소, 원술등을 들 수 있겠고 탁류의 대표적인 인물들로는 악명 높기로 유명한 십상시등을 들 수 있겠죠.
물론 탁류 출신의 하진이 청류의 대표가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연출됩니다만, 어찌되었든 당시 상황은 그야말로 혼란의 혼란을 거듭하던 정국이었습니다.
제 2차 당고지화 이후에 평민, 하급 출신의 관료들이 사라지고 권문세족들과 환관들의 정쟁이 펼쳐지던 시대였습니다.
당시 동탁은 관서지방의 오지출신의 일개 무장에 불과했습니다. 뭐 후한 말 상황은 어느 나라든 나타나는 현상처럼 문이 무보다 숭상되는 시대 였습니다.
사서를 봐도 오랜 세월 군에 종사하여 공을 이룬 단경, 황보숭 등의 무장 출신은 의외로 천대받고 실질적인 권력을 취하지 못합니다.
어찌되었든 군에 입문한 동탁은 나름 청류파 출신이라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중앙과 관서를 오가며 꽤나 많은 군공을 세웁니다.
그러던 도중, 역시 그 시대에 알맞게 동탁은 줄을 섭니다. 바로 사세오공 명문가인 원씨에 기대지요. 원씨에 기댄 동탁은 승승장구합니다.
관서지역의 이민족들을 다스리고 정토하며 상당히 많은 군공을 세우고 나중에 이르러서는 노장 단경을 제외하곤 군공면에서 동탁을 앞서는(관서지역에 한정하여) 무장은 몇 없게 되지요.
물론 그의 상관으로 장온 등의 무리들이 있었으나, 동탁은 별 개의치 아니합니다. 실질적인 실무나 인망 면에서 관서 지역 지휘관 중에 그를 따라올 자가 없었기 때문이죠. 그렇게까지 오기엔 수 많은 노력이 있었을 터인데 그 이유는 공을 세워서 입신양명하는게 목표였으니까요.
명문가의 자제가 아니라는 불리함, 중앙에서 멀리 떨어진 미천한 오지 출신의 불편함을 능력과 수 많은 공이라면 분명 덮을 수 있으리라 믿었을 겁니다.
물론 그로인해 손견과 약간의 의견 차가 있었고 그 것을 몇몇 역사가들은 동탁의 무능함을 증명하는 것으로 판단했죠. 허나 손견의 그 모습은 사실 동탁에게 있어서 정말 어처구니 없는 것이었습니다. 현대로 예를 들어서 이야기하면 10년 이상 군에 머문 장교를 향해 입대 한지 2-3년도 안된 젊은 장교가 손가락질 하는 것이었으니까요.
그 시기는 꽤나 오랜 시간 군에 종사하여 수 많은 군공을 세운 동탁에게 새파랗게 젊은 무장이 손가락질 한 것이나 다름 없기에 동탁은 무시합니다. 그 당시 상장인 장온도 함부로 동탁을 뭐라 하지 못하구요.
청류와 탁류로 대변되던 낙양 정치세도가 점차 심상치 않게 변해갑니다.
관서지역의 이민족들을 다스리던 동탁에게 있어서는 중앙으로 진출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지요.물론 다른 군웅들에게도 동등한 기회였구요.
그동안 동탁의 수족으로 열심히 싸워온 이들을 모집합니다. 그리고 중앙에서 명령이 떨어집니다.
각기 전국에 퍼진 군장들은 모두 중앙으로 모여라.
이민족들 사이에서 나름 명성도 쌓았고 인망도 있었던 동탁은 가히 10만에 이르는 군대를 모집합니다.
아시다싶히 관서지역 출신의 10만 군대면 천하무적이라 할정도로 강력합니다. 훗날 마초가 조조를 궁지에 몰수 있었던 것도 관서지역의 힘이지요.
그 군대가 중앙으로 가던 도중,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됩니다.
탁류출신 청류대표자 하진이 목이 떨어지고, 탁류 대표자 십상시들이 몰살당합니다. 원소와 원술 등의 청류파 인사들이 재빠르게 움직였으나 황제의 신변은 오리무중. 10만 대군을 이끌고 온 동탁에게 있어서는 절호의 기회 였을 겁니다.
만약 자신이 권문세족들의 세력을 제치고 황제를 먼저 찾아내어 모신다면?
자신을 보호하고 있는 10만 대군의 세력도 있겠다. 명분도 생기겠다.
이건 분명한 기회였던 겁니다. 그야말로 어부지리라 칭할만 하지요.
사실 다른 이들이었다면 그 시기에 그 10만 군을 이끌고 바로 낙양에 입성하여 대신들의 명에 따라 행동하거나, 자신이 모시던 상관 가문이었던 원가에 복속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동탁은 일생을 건 도박을 하지요.
실종된 황제의 신변을 찾기로 결정했죠. 낙양으로 돌아가지 않은 채, 하루종일 주변을 샅샅히 수색한 동탁은 원가의 무리나 대신들의 행보보다 빠르게 황제를 찾아냅니다.
황제를 앞세워 낙양 황도로 복귀한 동탁은 다시 한번 모험을 단행합니다.
10만명이 넘는 관서지역의 이병이 황도로 한꺼번에 들어올 수 없으니 그의 사위 우보에게 군대를 맡겨 놓고 호위병 백여명과 함께 황제와 황도로 들어가죠.
만일 동탁의 행동을 치죄하려하는 대신이나, 무리 혹은 그를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이들이 그 순간 그를 공격했다면 동탁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하고 몸과 목이 분리되었겠지요.
그정도의 담대함을 지닌 이는 많지 않습니다. 또한 추진력과 결단력은 손에 꼽을 정도로 대단하죠.
더욱 대단한 것은 황실안에 들어가 접수하는 즉시, 그는 수 많은 혼란에 겹친 정쟁의 원인과 대응책을 단숨에 마련합니다.
이미 청류파로 대표되는 원소등의 세력이 하진을 대신하여 세력을 형성한다면 그의 수족이었던 동탁은 결국 원가나 양가 밑으로 들어가야하는 신세가 될 것이 분명한데, 그렇다고 탁류쪽과 손을 잡기엔 환관들의 무리가 너무 세력이 약했습니다.
하지만 대신들과 명문세가들이 모두 청류 출신인 이 때에 외지의 무장 출신인 자신이 그들의 대표가 되기엔 무리라고 생각한 동탁은 곧장 동태후와 자신이 같은 성씨임을 강조하며 스스로 탁류에 발을 들여놓습니다.
탁류출신으로 청류대표가 된 하진과 반대로 청류출신의 탁류대표가 된 것이지요.
그러면서 그는 청류출신들의 지지로 황제 직에 오른 소제를 폐하고 자신의 뜻과 과거 탁류파들이 지지하던 진류왕 유협을 황제에 올리려 합니다.
이 것은 정치적인 행보에 있어서 상당한 과단성이 돋보이는 면모였는데, 동탁이 절대권력을 구사하는데 있어 반대파인 청류파를 억압하는데 황제를 바꾸는 것만큼 확실한 것은 없었지요.
이미 밖에서 대기중이던 10만 대병중 일부가 황도로 들어오고, 그를 따르는 무장들과 무리들이 늘어납니다. 성문교위 주비를 비롯한 이들을 받아드린 것도 동탁의 인재보는 눈이 나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주지요.
황제를 바꾸려는 자리에서 수 많은 반대에 부딫칩니다.
청류파의 대표자가 된 원소와 명문세족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던 정원 등과의 마찰이었죠. 허나 군사적으로 우세한 동탁이 두려워할 것은 없었습니다. 어차피 원소는 아직 대신들을 이끌기엔 경력이나 나이가 미천한 경우였고 정원 같은 경우는 흉노와의 혈전에서 살아남은 많은 강병들을 거느리고 있었으나, 이 들의 수장인 여포를 꼬드김으로 인해 정원은 자멸하고 맙니다.
이 점에서 동탁의 뛰어난 면모를 볼 수 있는데, 사실 여포는 동탁과 비슷한 일개 무장으로 청류 문신출신의 정원을 양아버지처럼 모시고 있었으나 벽이 있는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동탁은 그 점을 파악하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고 유목민족들에겐 최상의 선물이라 할 수 있는 명마를 선물함으로서 여포라는 인재를 얻게 되지요.
그 결과 외부에서 동탁을 견제할 무리와 내부에서 동탁에 대항할 이들은 모두 사라지고, 동탁의 뜻대로 황제가 바뀌고 탁류의 대포가 된 동탁은 가히 무소불위의 권력을 소유하게 됩니다.
그와 동시에 관제를 재정립하기 시작합니다. 과거에 폐지되었던 상국제도를 부활시켜 실질적으로 명예 뿐이었던 삼공제도를 완전히 파괴시켜버리며 강력한 중앙집권제도를 구축하기 시작합니다. 물론 그 중심이 황제가 아닌 상국이라는 것이었지만요.
또한 그는 청류파들을 무조건 적으로 견제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청류파들의 우두머리가 되는 이들만 숙청해버리고(예로 원가몰살) 몇몇 이들을 자신 곁에 남겨둡니다. 사대부들의 지지 역시 필요 했으니까요.
조조나 왕윤 같은 경우가 바로 그 경우였지만 결국 동탁은 그들에 의해 멸망하게 되니 뭐... 아이러니할 따름이지요.
또한 원가몰살등의 청류파와 명문세족 숙청으로 인해 외지에 나가있던 군웅들이 분노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명문세족과 청류파들은 모두 여러가지로 연결되어있는 경우가 많았고 그들의 죽음은 결국 군웅들의 할거를 불러오지요.
그 것이 반동탁연합입니다. 관동지역의 군웅들이 원소를 수장으로 모시며 공격을 하게 되지요.
다만 손견을 제외한 대부분의 군웅들이 동탁군에게 패배합니다. 이유는? 관서지역의 군대의 막강함이랄까요.
그야말로 반동탁연합은 동탁에게 그렇게 커다란 위협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탁은 장안으로 천도를 결심하는데, 많은 이들이 그 것은 동탁이 반동탁연합이 두려워서라고들 이야기하지만 제 생각에는 좀 다릅니다.
아무리 무소불위의 권력을 얻고 대항할 세력이 없다 할지언정, 언젠간 반대파들에 의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것, 동탁은 정치의 생리를 잘 알고 있는 자였습니다.
사실 낙양은 오랜 시간 도읍으로 정해지면서 온갖 명문세가들과 유명인사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고, 비록 동탁의 힘에 의해 잠시 굴복하고 있는 듯 싶었으나 만일 동탁이 약간의 틈만 보인다면 기습을 당할수도 있는 입장이었죠.
그렇기에 동탁은 장안 천도를 결심합니다.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자는 의미로서. 그리고 그 것은 수 많은 반대에 부딫칩니다. 헌데 재미있는 것은 그 것을 반대한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모두가 낙양을 근거지로한 명문세가 출신의 대신들이었지요.
그러거나 말거나 동탁은 천도를 실행합니다. 무서울정도의 추진력이었지요. 그러면서 한 가지 더 행합니다.
낙양 명문가 약탈. 이 것은 사실 동탁을 욕먹게하는데 일조한 사건이었지만, 정치적인 입장에서 보았을때 그보다 확실하게 명문세족들과 반대파를 제압할 수 있는 방법은 없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동탁의 행동은 매우 고단수적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장안으로 천도한 이후, 동탁은 자신만의 궁전을 건설하는 등의 진정한 절대권력을 휘두르지요. 그리고 그의 군권 역시 매우 강대했습니다. 장안은 관서지역과 바로 연결되는 통로로서 수 많은 군대들이 오고가며 고향에 갈 수 있는 위치였으니까요.
동탁의 세력은 날이 갈수록 강력해져만 가지만, 다른 관동지역의 군웅들은 지네들만의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사실 동탁이 죽기 이전까지 관동지역의 군웅들은 감히 자신에 정해진 영토를 벗어나려 하지 않았습니다. 막말로 동탁이 맘만 먹으면 관동지역은 다 쓸어버릴 수 있었으니까요.
과거 한 고조 사후 오초칠국의 난이 일어났을 무렵, 중앙에 소속된 정규군이 지방군을 학살해대며 진압한 것처럼 사실 정규군과 일반 군웅의 사병은 상대가 되지 않기 때문이죠. 전투력이든 뭐든 말입니다.
하지만 동탁은 그 쯤에서 모든 이들이 빠지는 병에 걸립니다. 내가 최고다 병. 이제 반대파도 사라지고 위험한 세력인 명문세족들도 싸그리 잠재웠고 관동세력 군웅들은 뭐.. 맘만 먹으면 쓸어버리니.. 점점 사치해지고 점점 병들어갑니다.
사실 이러한 병은 조조 역시 말년에 들었던 병인데요. 그 때는 그가 이미 모든 것을 안정적으로 이루어놓았고 친위세력도 강대했으며 그가 만들어놓은 법제도 덕분에 그는 동탁과 같은 최후를 맞이하지 않습니다.
그에 비해 동탁은 친위세력이라는 것은 대체적으로 무장들에 불과했고 특히 이각 곽사 우보 장제 번주 등의 상장들과 자신을 지키는 여포등이었습니다, 뭐 동탁 자신은 왕윤 마일제 양표 등의 명문세족 출신의 청류파 대신들도 자신을 지지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아니였죠.
왜냐, 그들은 절대 동탁에게 굴복할 수 없는 입장입니다. 근본 없는 오지 출신의 미천한 놈이 감히 내 위에서? 명문세족의 자존심이었죠.
결국 그들은 동탁을 배신합니다. 여포를 이용해서 말이죠. 사실 여포도 저평가된 인물 중 하나입니다.
삼국지 연의나 다른 곳에서 보면 동탁 옆에 있는 여포가 정말 대단한 위치에 있다고 보여졌으나 실상 보면 그냥 일개 경호대장이었습니다. 실질적인 권력은 이각, 곽사, 우보 등이 가지고 있었을 뿐이고 그는 단지 동탁을 호위하는 경호원의 역활이었죠.
후한의 대표 구신들은 여포를 포섭하려합니다. 여포는 이미 동탁에 대한 불만이 많았겠지요. 정원 밑에서 대군을 호령하던 장군이었는데 자신을 고작 경호원으로 쓰고 있으며 같은 이민족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가 청류파 출신의 위대한 자수성가형 영웅으로 생각한 동탁이 매번 여포를 무시했으니까요.
여포 역시 동탁의 시비와 정을 통하여 뭐 죄책감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포섭됩니다 후한 대표 구신들에게 말입니다.
그리고 그는 동탁 가장 가까이 있을 수 있는 최고의 자객이 되어 동탁을 살해합니다. 그 것 역시 후한 구신들이 시도한 일종의 도박이었는데요.
만일 그 당시에도 동탁을 대신할만한 후게자나 제대로된 이들이 남아 동탁의 세력을 규합했다면 구신들은 말살당했을 것입니다.
근데 멍청한 동탁의 잔류무리들은 두려워 도망가지요. 이각 곽사등의 무리들이 말입니다.
나중에 이각과 곽사가 다시 돌아와 장안을 점령했을 때, 왕윤이 목숨을 구할 방도가 있었습니다.
왕윤이 직접 임명한 좌풍익과 우부풍이 반기를 들고 싸웠다면 이각과 곽사는 감히 장안을 지키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동탁 역시 마찬가지였죠. 동탁 자신은 목숨을 잃었으나, 장안 주변인 하남윤 좌풍익 우부풍은 모두 동탁쪽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들은 모두 도망칩니다. 훗날 왕윤이 임명한 이들이 그랬듰이..
몇몇 이들은 이러한 악당 동탁을 죽인 왕윤을 선량하고 착한 사람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 이후 그의 행적을 보아하면 그도 동탁과 별 다를바 없는 자입니다.
명문세족과 청류파 출신을 제외하고 동탁이 중용한 인재들을 싸그리 죽여버립니다. 그리고 자신의 뜻대로 조정을 이끌어가지요. 이 점을 몇몇 이들이 충고했으나 왕윤은 고치지 못합니다. 그 역시 한낱 정치인이 불과했던 거지요.
여포 역시 왕윤에게 무시를 당합니다. 동탁에게 당했던 그대로..
그 이후 역사는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이각과 곽사 등의 무리가 동탁의 복수를 위해 대군을 이끌고 장안으로 쳐들어오면서 진정한 군웅할거의 시대를 맞이합니다.
이게 전체적인 동탁의 생애와 시대적 배경인데요.
이 것을 바탕으로 보게 되면 동탁의 새로운 면모가 보일것 입니다. 그는 철저하게 시대와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사용한 전략가였으며 치밀한 정치가 였습니다. 또한 실제로 당시 후한황실의 권위가 잠시 순간이나마 가장 강력하게 적용되었던 시대였지요.
이렇게 보면 동탁이 천운을 타고나서 지배자가 되었는데 스스로 망쳐버린 무능한 인물이라 보기엔 어려우리라 생각합니다.
좋지 않은 글솜씨로 이야기하려니 어려운 면이 많았지만, 정말 삼국지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제가 생각하는 동탁에 대해 설명하려 애썼습니다.
이 글을 통해서라도 동탁에 대한 시선이 조금이나마 바뀌었으면 좋겠군요.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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