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는 한국인들
- 영성의 「알면서도 모르는 척」- 사대주의에 푸우욱 젖은..
영성
1.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 하나.
우리나라 어느 지방대학의 중국학과 교수가 자매결연을 맺은 중국의 어느대학을 방문했다. 그 대학의 중국인교수는 중국의 북경학회회장이었는데 그는 우리나라교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북경학회의 창립멤버로서 10년째 회장직을 맡고있는데 아직도 우리 북경학회의 연구범위조차 못정한 상태에 있다. 귀하는 북경도 아니고 중국전체를 연구하는 학자라고하니 어떻게 그런 연구가 가능한지를 아르켜주시면 내연구에 많은 도움이 될것같다."
이에 그 우리나라교수는 장황하게 중국학의 연구에 대해 한 수 아르켜주었다고한다. 중국인교수의 말은 두가지중 하나로 해석될수있다.
첫번째해석
그 중국인교수가 매우 겸손한 사람이어서 중국학의 "선진국"인 우리나라교수에게 지도를 요청했다고 보는 해석.
두번째해석
"중국인들인 우리도 중국의 일부분에 불과한 북경을 연구하는데있어서 10년째 그 연구범위조차 정하지 못할정도로 북경의 문화유산은 방대하다. 그런데 중국말도 제대로 못하는 당신들이 중국의 일부분도 아니고 중국전체를 즉, 중국의 언어,역사,풍습,정치,경제,문학...등등을 모두 합쳐 하나의 학문으로서 연구하고 가르친다는것이 말이 되느냐. 그럴바에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을 모두 몽뚱그려 세계학이란 학문을 한번 만들어 연구해보지 그러느냐."
어느 해석이 맞을까.
중국학이 우리나라에만 있는것은 물론 아니다. 미국등지에도 sinology란 이름으로 존재하기는 한다. 그러나 그것은 60,70년대 중국이 죽의 장막에 갇혀있을때, 즉 중국에 대한 연구자료가 턱없이 부족할때 있었던 일이다. 철의 장막에 갇힌 쏘련을 연구하는kremlinology와 함께 60,70년대의 Time, Newsweek에는 sinology, sinologist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지금은 틀린다. 거의 쓰이지않거니와 쓰일경우에 그에대한 중국인들의 반응은 결코 우호적이지않다. 기본적으로 중국을 비문명국으로 전제하고 쓰는 말이기 때문이다.
영국에 영국학은 없으며 프랑스에 프랑스학은 없고 독일에 독일학은 없다. 그런 학문, 그런 학문을 연구하는 연구소도 물론 없거니와 도대체 그런 낱말이 없다. 의심스러우면 사전을 직접 찾아보라.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를테면 독일의 어학, 역사, 경제, 문학, 음악, 철학, 법학...중 한분야만 하더라도 하나의 학문이 되고도 남기 때문이다. 평생을 연구하고도 모자랄만큼..
독일인들에게 '나는 독일학을 연구하는 학자다."라고 말해보라. 그들은 아마도 당신을 정상적인 인간으로 간주해주지 않을것이다.
국립 서울대학교에는 이른바 한국학연구소가 있으며 이른바 한국학중앙연구소에는 한국학대학원까지 있다.
일제시대에 국학(지금으로 치면 한국학)을 연구했던 위당, 호암등 선열들의 뜻은 높이 기려야 마땅하나(이삭줍는 심정으로 우리 문화유산을 지켜야했던 시대이므로) 우리시대에 우리 스스로 한국학을 거론하고 연구하는것은 우리에게 잠재해있는 사대주의의 발로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은 banana republic이 아니다.
반만년동안의 우리의 언어, 역사, 문학, 민속, 경제,사상...등이 하나의 학문으로 통합될수 있을 정도로 비문명적인 국가가아니다.
한국사상의 일부분에 불과한 퇴계의 사상이 국제학계에서 별개의 독립된 학문으로 취급받고 있을만큼 한국문화의 폭과 깊이는 결코 만만치 않다.
이른바 한국학자인 하바드의 와그너교수도 스스로를 한국족보학연구자라고 겸손해하건만, 외국인들이 감히 한국학이라는 용어를 쓸경우 그에 대해 분개하고 나아가 시정을 요구해야 마땅하건만, 분개하고 시정을 요구하기는 커녕 스스로 한국학을 연구한다고 간판을 내걸고 더 나아가 제돈들여 한국학 세계대회(4년전에 서울대 주최로 열렸음)를 개최하는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것이 부끄러운 일이라는것을 인식조차 못하고있는것은 부끄럽다못해 서글픈 일이다.
2.
70년대말 아프리카의 G국에 가서 근무하다 돌아온 어느 외교관 친구(당시 최하급외교관인 3등서기관)는 그나라에서의 자기의 카운터파트는 외무차관이며 대사는 외무장관만 상대한다고 했다. 그러면 그나라의 미국대사는 누구를 상대하느냐고 물었더니 대통령만 상대한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한참 웃었다.
웃고나니 씁쓸했다. 그것은 바로 지난날 우리들의 모습이었으므로...
정상적인 국가의 정부수반이 자국주재 외국대사관에 찾아가는 법은 없건만 민주당시절 장면총리는 수시로 미국대사관을 찾아갔다. 60년대 대통령비서실장 이동원(장관급)은 미국대사관의 일개참사관인 하비브(과장과 사무관의 중간급이었슴)와 카운터파트가 되어 어울려다녔다.
많이 나아지긴했으나 그런 비루한 모습의 외교관행이 아직도 남아있다. 국장급인 미국대사에게 장관급예우를 해주고, 엄연히 국장급인 힐을 차관보라 칭하고 예우해주는 모습들... 오죽하면 국무부 북한담당관을 지낸 케네스 퀴노네스가 2002년 1월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외교의 가장 큰 문제점은 사대주의라고 했을까.
기왕에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사대주의를 추방하는데는 나라의 실력을 늘림과 함께 외교관들의 실력도 늘릴 필요가 있다고본다. 국제회의에서 침묵은 금이다라는 격언을 가장 충실히 지키는 세계唯二의 나라들이 한국과 일본인데 이들 두나라는 공히 외무고시에서 영어회화시험이 없다. 임용후 2년간의 영어연수에서 격조높은 고급영어가 연마될 수는 없다.(머리 굵어지고 난다음에는 어학연마가 그리 쉽지않다.) 일본제도를 본받지말고 어학능력에 촛점을 맞춘 고시제도의 변경이 필요하다고 본다.
3.
"피난민사이에 북한군이 섞여 있을수도 있으니 피난민을 죽이는데 망설이지 말라"는 지시를 6.25당시의 주한미군사령관 워커가 내렸고 미군은 그의 지시를 "매우" 충실히 이행했음이 몇년전 KBS보도를 통해 나갔었다.
미군은 피난민을 싣고 달리는 기차와 폭격을 피해 굴속에 숨은 무고한 민간인들을 상대로한 무차별사격및 폭격을 짐승사냥하듯이, 즐기듯이 했고 그렇게 하라고 명령을 내린자는 워커였다.
워커는 천벌을 받았는지 6.25동란중 죽은 유일한 미군장성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 워커를 기념하고 추모하기위해 워커힐이란 이름이 지어졌으며 한국인들은 오늘도 그 어느누구도 워커힐이란 이름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
<출처 : 노하우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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