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닥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거실에 혼자 상을 폅니다. 오늘은, 네. 그게 좋겠네요. 화랑. 작고 흰 자기 술잔을 꺼냅니다. 화랑이란 술은 독하지는 않지만, 향이 좋습니다. 은은한 그 맛도 참 좋지요. 반주로도 굉장히 어울리는 술이죠. 전 이 화랑이란 술을 참 좋아합니다. 우선, 아무것도 없는 상에 술과 잔을 올립니다. 뭔가 허전하네요. 하지만 그 전에, 한잔 마셔봅니다. 부드럽게 넘어가는 술. 그리고 의외로 풍부한 질감과 단맛. 즐거운 맛입니다.
안주도 필요하겠죠. 화랑이라는 청주는 역시 향이 강하지 않고 기름지지 않은 안주가 어울립니다. 개인적인 기호지만, 맛이 강한 안주 또한 선호하지 않습니다. 냉장고를 열어봅니다. 냉장고 안에는 별게 없네요. 우유, 계란, 멸치볶음... 좋은게 있네요. 시금치 무침이 있었어요. 시금치 무침을 작은 그릇에 옮겨 담습니다. 시장표 메추리알 조림이 보이네요. 그것도 조금 옮겨 담아 둘까요. 이거로는 좀 모자라다 싶네요. 찬장을 뒤져보던 중, 눈에 매생이 블럭이 들어오네요. 보지 못하던 건데... 아무래도 어머니께서 사두신 것 같습니다.
잠시 술 마실 시간을 미루어 두고 물을 끓입니다. 똥을 뺀 멸치와 건새우, 다시마를 넣고 가볍게 국물을 우려냅니다. 국물이 우러나면 멸치와 다시마를 뺴줍니다. 건새우는 그냥 그대로 둬도 좋아요. 매생이 블럭을 2개 까넣어 줍니다. 굴을 넣으면 더 좋겠지만 아쉽게도 굴은 없네요. 이제 천일염으로 간을 맞춰 주면 끝.
이젠 술을 마실 준비가 되었습니다. 제 앞의 작은 상에는 술과 시금치, 메추리알과 매생이국이 있습니다. 우선 다시 술을 한잔 마십니다. 행복감에 미소를 짓습니다. 창밖으로 들리는 빗소리에, 술만 있었어도 괜찮았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젓가락을 들어 시금치를 한점 입에 넣습니다. 담백한 맛과 함께 시금치를 무칠때 쓴 들기름의 향이 구수하게 올라옵니다. 마늘의 맛이 조금 나네요. 나쁘지 않습니다. 한참을 우물거리다가 목으로 넘깁니다. 잠시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빗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다시 술을 한잔 마십니다. 이번엔 메추리알을 입에 넣습니다. 짭쪼름하면서도 고소한 메추리알의 맛이 참 좋습니다. 하지만 역시 노른자때문인지, 입안이 텁텁해지네요. 차라리 계란으로 계란말이를 만드는게 나았을까요. 아니면 계란찜이라던가...
또 술을 한잔 마십니다. 노른자의 텁텁함과 느끼함이 씻겨 내려갑니다. 이번엔 숟가락을 들어 매생이국을 한술 뜹니다. 뜨끈뜨끈한 매생이국은 아직 식지 않았습니다. 바다의 향이 물씬 나는 매생이국은 이 술과 정말 잘 어울리는군요. 행복합니다.
한잔 술을 마시고 가벼운 안주를 한점 집어 먹고. 혼자서 마시는 술이지만, 꽤나 정취가 있습니다. 비가 내리는 밤이라 그런지 더더욱요. 집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오직 창문을 때리는 빗방울만이 타닥거립니다. 좋은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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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저러고 있진 않구요, 저러고 싶은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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