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만 들여다 보고 있다가, 드디어 읽었습니다.
상식의 속도에 대한 해석을 말하지는 않을 거예요.
해석은, 독자마다 다른 법이니까요.
이야기를 하기 전에 앞서, 저 또한 작가처럼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음을 밝힙니다.
순수문학을 전공했고, 주 전공은 시 입니다.
그리고 덧붙여 몇 가지를 더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장르문학을 좋아합니다. 읽는 것보다, 쓰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 가벼움, 호쾌함, 상상력과 가독성 등의 모든 장점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문단에서는 장르문학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가볍고, 호쾌하고, 상상으로 가득 차 있고, 가독성이 높기 때문이죠.
순수문학 또한 가벼울 수 있고, 호쾌할 수 있고, 상상으로 가득 차 있을 수 있고, 가독성이 높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문예창작학과에는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섞여 있습니다.
순수문학 수업에서는 순수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이 빛을 발하지만,
장르문학 수업에서는 장르문학 을 사랑하는 이들이 빛을 발합니다.
저울의 양편에 이 두 개의 장르를 올려두는 것은 위험한 것입니다.
마치 서로 다른 두 개의 종교를 가진 이가 나누는 날이 선 대화처럼요.
접점을 찾기가 힘들죠.
아주 단편적인 예로,
순수문학의 소설에서는 방점 여섯 개에 온점 한 개를 말줄임표로 씁니다.
여기에서 읽을 수 있는 글들의 대부분은 일곱 개의 점을 사용하지 않죠.
순수문학을 전공했지만, 저는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지적할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음은 물론, 틀렸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일곱 개의 점을 사용합니다.
순수문학에 바탕을 두고 있으니까요.
제가 쓰고 있는 소설에는 이름을 가지지 못한 주인공들과 이름을 가지지 못한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시간은 되풀이됩니다.
루프물, 이라는 분류를 가질 수 있는 것이더군요.
어느 정도의 공부가 필요한 것인지는 모릅니다. 공부할 생각은 없습니다.
차차 알아갈 생각입니다. 저는 루프물이 아닌, 제 글을 쓰는 것이니까요.
모든 창작자의 손끝에서 탄생한 창작물은 창작물이라는 그 자체만으로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혹평이든 호평이든, 존중 위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는 자신의 세계를 만듭니다. 분류는 그 후에 오는 것이지요.
물론, 과학이 등장하는데 과학적 오류를 범했다면 그것은 작가의 잘못입니다.
상식의 속도라는 작품을 발표하며 ‘SF라는 장르에 새 획을 긋겠어!’라고 했다면 잘못이겠죠.
글이 길었습니다.
순수문학 전공자로서도, 장르문학을 사랑하는 자로서도 아닌 오롯이 저로서 말씀드리자면 결론은 이렇습니다.
충분히 잘 쓴 글. 새로운 시도와 해석이 반짝이는 글. 하지만 읽기에 어려운 글. 색다른 글. 다소 지루한 글. 상식의 속도를 배반하는 상식들을 늘어놓아 오히려 흥미로운 글. 너무도 많은 것을 꽁꽁 숨겨두고 있는 글. 두 번 읽으면 재미있는 글. 정독하여 그 재미를 캐치하지 않는 한 읽기 싫어질 정도로 어려운 글.
순수문학의 입장에서는 분명한 환상문학이고,
장르문학의 입장에서는 환상문학이기 어려운 글.
그러니, 환상문학이면 환상문학이고 환상문학이 아니라면 환상문학이 아닌 글.
순수문학의 시선으로 작품을 선정하는 신춘문예에서,
순수문학의 시선으로는 환상문학인 글이 당선된 데에 대해 이견은 없습니다.
잘, 공들여 썼네요.
* 덧. 순수문학을 전공하고 순수문학 또한 사랑하는 저이지만,
순수문학은 그 불필요하게 보일 수도 있는 권위와 가독성의 문제 등으로 대변되는 진입장벽 때문에 대중적으로 사랑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문에 저는 순수문학 작가로 서는 일을 포기했죠! 제가 좋아하는 글을 쓸 거예요! 그렇다고 순수문학을 버린 것도 아닙니다. 시도 꾸준히 써요. 시도 제가 좋아하는 글이니까요 :)
어제 새벽에 처음 이 게시판에 들어온 사람 치고 말이 너무 많았나요?
여기까지 쓰고 보니 뒤로 가기를 누르기도, 등록을 누르기도 조금 무섭네요.
(사실 조금 많이...)
저는 그저, 모든 창작물이 존중받고 사랑받았으면 해요.
그 존중과 사랑의 무게를 달리 두더라도요.
상식의 속도를 쓴 작가님도, 그저 자신의 글을 썼을 뿐일 거예요.
제가 제 글을 쓰고, 여러분이 여러분의 글을 쓰듯 말예요.
아.. 두려움에 등록 누르는 일이 점점 늦어지고 있네요.
그냥 눌러버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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